12월 18일 [대림 제3주간 수요일]
< 아기 예수님께 합당하려면 말구유처럼 돼라 >
예레미야서 23,5-8
마태오 1,18-24
옛날에 세 자매를 둔 사람이 있었습니다.
세 자매는 모두 예뻤으나 그들은 제각기 한 가지씩 결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큰딸은 게으름뱅이이고 둘째딸은 훔치는 버릇이 있으며 셋째 딸은 험담하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한편 아들 삼형제를 둔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세 딸을 모두 자기네 집으로 혼인시키지 않겠느냐고 청해 왔습니다.
세 자매의 아버지가 자기 딸들이 가지고 있는 결점을 그대로 말하자 부자는 그런 점은 자기가 책임지고 고쳐가겠다고 장담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세 자매는 시집을 가게 되었는데 시아버지는 게으름뱅이 첫째 며느리에게는 여러 명의 하녀들을 고용해 주었고, 남의 것을 훔치는 버릇이 있는 둘째 며느리에게는 큰 창고의 열쇠를 주어 무엇이든지 갖도록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남을 헐뜯기를 좋아하는 셋째 며느리에게는 매일같이 오늘은 험담할 것이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어느 날 친정아버지는 딸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여 사돈집을 찾아갔습니다.
큰딸은 얼마든지 게으름을 피울 수 있어 즐겁다고 말했고, 둘째딸은 갖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가질 수 있어 좋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셋째 딸은 시아버지가 자기에게 인간관계를 꼬치꼬치 묻기 때문에 귀찮다는 대답을 했습니다.
여전히 셋째 딸만은 부잣집의 며느리로 들어가서도 행복할 수 없었습니다.
남을 험담하는 버릇은 인간관계 자체를 부정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그것이 고쳐지기 전까지는 절대 행복한 며느리가 될 수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요셉은 약혼자인 마리아가 잉태한 사실을 세상에 드러내지 않으려고
남몰래 파혼하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렇게 되면 마리아는 버림받은 여자가 되고 요셉은 임신시켜놓고 약혼자를 버린 몹쓸 인간으로 낙인찍힙니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 이 결단의 순간에서 요셉은 자신을 배신한 마리아를 위해 자신이 죽는 것을 선택합니다.
남의 죄를 대신 뒤집어 쓸 수 있어야 ‘의로운 인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다 뒤집어쓰고 돌아가셨기에 우리도 그분 덕분으로 죄를 용서받은 입장에서 이웃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야 의로운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의로운 요셉에게 선물을 주십니다.
하느님의 아드님과 하느님의 어머니를 모실 수 있는 특권을 주신 것입니다.
의로움이 곧 사랑이기에 의로운 사람에게만 사랑 자체이신 분을 모실 수 있는 영광이 주어집니다.
얼음을 벌겋게 달궈진 프라이팬에 보관할 수 없고 따듯한 밥을 냉장고에 보관할 수 없습니다.
어떤 것을 보관하려면 그 받아들이는 것의 본질을 깨뜨리지 않는 그릇이 필요합니다.
하느님께 합당한 그릇이란 요셉처럼 누구도 심판할 수 없는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아기 예수님께서 말구유에 놓인 것은 어쩔 수 없어서가 아닙니다.
처음부터 계획된 하느님의 선택이었습니다.
말구유처럼 보잘 것 없는 사람이 되어야만 당신께 합당한 사람임을 알려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말구유가 어떤 요람을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에 말구유만큼 아기가 놓이기에 비천한 것이 없습니다.
하느님은 그렇게 자신을 낮출 수 있는 인간에게 머물고 싶으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본성이 겸손이시기 때문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뒷담화만 하지 않아도 성인이 됩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탄이 되기 전에 이웃을 험담하거나 판단하는 마음부터 버립시다.
우리 죄를 대신 뒤집어쓰신 분을 맞이하는데 내가 타인의 잘못을 꼬집는 사람이라면 따듯한 밥을 냉장고에 보관하겠다고 말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의로우신 분은 의로운 사람만 모실 수 있습니다.
내가 누구도 판단할 자격이 없는 말구유와 같은 처지의 죄인임을 깨달아야합니다.
이것을 회개라고 합니다.
먼저 회개하고 복음을 받아들여야합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