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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2월 12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12-12 조회수 : 600
12월 12일 [대림 제2주간 목요일] 
 
이사야 41,13-20
마태오 11,11-15 
 
<​ 나에게 폭력을 쓰지 않으면 남에게 쓰게 된다 > 

인도 영화 ‘당갈’(2016)은 한 때 인도의 레슬링 전국 챔피언이었던 아빠가 두 딸을 레슬링 선수로 키운 이야기를 그렸습니다.

아들을 낳아 세계적인 레슬링 선수를 만들고 싶었던 아버지는 그만 줄줄이 딸 넷을 낫게 됩니다.
아버지는 첫째와 둘째 딸에게 레슬링을 가르치고 싶었지만
여성이 레슬링을 한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사회 분위기상 공식적인 레슬링교육을 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딸들이 14살이면 팔려가듯 시집을 가야하는 인도 여인의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버지의 뜻을 따르기로 합니다.  
 
아버지는 논 위에 모래사장을 만들고 딸에게 직접 레슬링 훈련을 시킵니다.
머리가 길면 모래가 모리에 박히기 때문에 삭발까지 시켰습니다. 
 
첫째 딸 기타는 실력이 매우 뛰어나서 몇 년 뒤 전국대회 우승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올림픽 대표팀에 들어가 국립체육학교에서 훈련을 받아야했던 기타는
새로운 코치의 말에 따라 그동안 배운 것들을 모조리 버립니다.
그리고 그 새롭게 배운 기술들로 아버지까지 이겨버립니다.
그러면서 아버지의 구식 기술을 비웃고 지금까지 자신을 혹독하게 훈련시킨 것에 대해 원망합니다.  
 
머리도 기르고 화장도 하고 세속에 물들어갑니다.
물론 세계대회에서 기타는 매번 예선탈락을 합니다. 
 
패배의 쓰라림에 고통스러워하며 기타는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하고
초심으로 돌아갑니다.
머리를 다시 삭발하고 아버지식대로 자신을 혹독하게 다룹니다.
그리고 아버지 가르침에 따라 방어가 아닌 공격위주로 경기를 합니다.
그리고 승리를 이어갑니다.  
 
이에 코치는 분노합니다.
기타가 모든 공을 아버지에게 돌렸기 때문입니다. 
 
기타는 2010 영연방 경기대회 55kg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고 동생 바비타는 51kg에서
은메달을 획득합니다.
인도 역사상 국제대회에서 여성이 메달을 획득한 것은 그들이 처음이었습니다.
이후 두 자매는 국제대회에서 총 29개의 메달을 따며 인도 여성도 하면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실화입니다. 
 
아버지는 딸에게 혹독한 훈련을 시켰습니다.
이에 딸도 더 이상 아버지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방법으로 아버지에게 폭력을 가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그동안 수고한 아버지에 대한 배신입니다.  
 
그렇게 자신을 믿고 자신에게 잘해줬음에도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하게 됩니다.
사랑을 폭력으로 착각했기 때문입니다. 
 
딸은 나중에서야 아버지가 자신에게 가한 폭력이 좋은 것이었음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더 혹독하게 대합니다.
이것이 자신을 키워준 아버지에게 보답하는 길이고 세상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길이었습니다.  
 
인간은 자신에게 폭력을 가하지 않으면 하느님과 이웃에게 폭력적인 사람이 됩니다.
오직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만이 세상에 유익을 줍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나라는 폭행을 당하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늘나라는 당신 자신을 가리킵니다.
하늘나라는 하느님께서 주인이신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 하늘나라가 어디 있는지 알려주는 표지판이 세례자 요한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하느님의 어린양만이 우리의 행복이 될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세례자 요한만이 하느님 나라를 알아볼 수 있었으니 예수님께서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은 너무나 혹독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광야에서 자신에게 폭력을 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낮엔 뜨겁고 밤엔 추운 곳에서 생활하며 짐승의 가죽을 입고 메뚜기와 들꿀로 허기를 채웠습니다.
옷을 지어입거나 곡식을 경작하지 않은 극기의 삶을 살았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집에서 좋은 음식을 맛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그의 말을 들을 리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가르침을 버렸기 때문에 그 파견한 분에게 폭력을 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께 폭력을 가하려면 그리스도께서 파견하신 새로운 요한인 교회의 말을 따르지 않으면 됩니다.
그러나 폭력의 결말은 결코 좋을 수 없습니다.  
 
교회가 가르치는 것이 비록 극기의 삶이고 자신을 죽이는 삶일지라도 그 가르침을 따르는 길이 하늘나라에 당도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십자가 외에는 영광의 길이 없습니다. 
 
세상의 어떤 분야에서든 자수성가했다는 사람들은 다 자신에게 폭행을 가하는 사람입니다.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항상 5시에 일어나고 7시에서 9시까지 강의를 하고 이후 12시 45분까지는 집필활동을 하였습니다.  
 
하루 한 끼의 식사를 했는데 정확히 오후 1시에 의사나 상인 등을 초청해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3시 30분에 산책을 하며 다리를 건넜는데 사람들은 칸트가 다리를 건널 때
시계를 맞출 정도였습니다.
산책 후 다시 연구에 몰두하다 밤 10면 정확하게 침대에 누워 하루를 마감하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런 삶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라며 자신을 혹독하게 다루는 칸트를
어리석게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사는 모든 사람들을 비웃는 꼴이 됩니다.  
 
자신을 사랑해야 하는데 왜 폭행을 가하느냐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분명 자신을 만족시키기 위해 누군가에게 폭력을 행사하며 살고 있을 것입니다.  
 
나에게 폭력을 가해 하느님과 이웃을 만족시킬 수 있을 때 십자가에 자신을 죽이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행복과 영광을 함께 누리게 됩니다.  
 
나는 누구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습니까?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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