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1일 [대림 제2주간 수요일]
이사야 40,25-31
마태오 11,28-30
< 손오공을 만드는 것은 여의봉이 아니라 금고아다 >
영화 ‘곤지암’(2016)은 CNN이 선정한 세계 7대 소름 끼치는 장소인 대한민국 공포체험의 성지라고 불리는 곤지암 정신병원에서 벌어지는 공포영화입니다.
유튜브 조회수를 높여 순간적으로 많은 돈을 벌려고 하는 젊은 청년들이 곤지암에 있는 폐정신병원에 잠입하여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작품입니다.
처음엔 그들이 유튜브를 시청하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가상으로 무서운 사건들을 연출하여 조회수를 올려나갔습니다.
그런데 그 곳에는 실제로 예전에 생체실험을 당해 죽은 유령들이 있었습니다.
그 안으로 들어간 청년들이 하나둘씩 죽어가지만 그것이 조회수를 급격하게 올려 수억 원의 돈을 벌 수 있게 되자 담당자들은 그들을 그 곳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합니다.
귀신이 있는 것이 확실한 줄 알면서도 돈에 눈이 멀어 친구들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본다는 것이
진짜 공포로 다가옵니다.
영화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가장 공포스러운 것은 귀신이 아니라 자기의 이익을 위해 남을 이용하는 인간의 마음이란 것입니다.
결국 그들을 이용해 돈을 벌려고 한 이들도 귀신들에 의해 죽음을 당하고 맙니다.
사람은 돈에 대한 욕심, 쾌락에 대한 욕심, 힘과 권력, 혹은 명예에 대한 욕심에 사로잡혀 그것의 노예생활을 하면서도 다 자신을 위한 일이라고 착각합니다.
노예생활을 한다는 것은 그것들의 종이 된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파라오 밑에서 종살이를 하고 있었듯이 인간들은 각자의 욕구에
종살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결국엔 자신의 삶을 공포영화로 만들어버립니다.
자신들이 가졌다고 착각하는 작은 것들을 잃게 될까봐 두려움에 떨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자아의 욕구의 종살이를 하며 자기 삶을 공포로 만들어버린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당신께서 주시려는 삶으로 초대하십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이 얼마나 위안이 되는 말씀입니까?
그런데 그 안식이라는 것이 결국 또 목에 멍에를 메는 것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멍에는 주인이 소를 부리기 위해 목에 짊어지게 하는 도구입니다.
멍에를 두른다는 것은 그분의 노예가 됨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당신의 노예가 되는 것이 자아의 욕구의 노예가 되는 것보다 더 편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어차피 인간은 무언가의 노예로 살아갑니다.
자기 자신의 노예생활을 하거나 하느님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노예가 되면 자신의 욕구를 통제하는 멍에를 메야합니다.
멍에는 자아의 돈에 대한 욕심, 육체를 만족시키려는 욕심, 더 높아지려는 마음을 묶어놓는 오랏줄과 같은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멍에에 자신의 욕구를 통제시킬 때 비로소 ‘자아숭배교’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게 됩니다.
‘서유기’의 주인공 손오공은 본래 원숭이입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힘이 세고 난폭해서 금방 원숭이의 왕이 됩니다.
돌원숭이에 불과했던 손오공은 자신이 타고 날아다니는 근두운과 무적의 무기인 여의봉을
가지게 되어 점점 더 무서운 것이 없는 존재가 됩니다.
결국 석가여래에게도 반항을 하게 되는데 석가에게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어
도망치게 됩니다.
그러나 석가의 손바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벌을 받아 500년 동안 오행산에 갇히게 됩니다.
그에게 그런 벌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데 바로 삼장법사를 도와 인도에서 불경을 가져오는 것이었습니다.
삼장법사는 손오공이 하도 천방지축이라 그를 통제하기 위해 머리에 ‘금고아’를 씌웁니다.
손오공이 육체의 본성대로 나가려고 할 때 삼장법사가 기도로 그 금고아를 줄입니다.
그러면 손오공은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게 되고 비로소 정신을 차려 본래의 소명으로 돌아와
요괴를 무찌릅니다.
그렇게 서유기는 손오공이 악의 존재인 돌원숭이로 태어났지만 자기 본성을 죽이고
신의 소명을 따를 때 참으로 선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원숭이가 ‘하늘과 어깨를 나란히 견주는 자’란 뜻의 ‘제천대성’이 된 이유는 구름을 타고 여의봉을 휘두를지를 알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자기 욕구를 통제할 수 없는 상태에서 얻어지는 힘은 끊임없이 산 밑으로 자신을 가둬 인생이 공포영화가 되게 만듭니다.
원숭이가 손오공이 되게 만든 것은 삼장법사가 그의 머리에 씌워준 머리띠인 ‘금고아’때문이었습니다.
우리로 말하자면 예수님께서 메어주시는 멍에, 즉 십자가 때문에 우리가 원숭이인 인간에서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비록 십자가를 메고 하느님의 소명을 따라야만 하지만 그것이 원숭이로 날뛰는 것보다 행복하고 편안한 삶입니다.
이것을 받아들인다면 자신의 욕구를 죽이는 멍에인 십자가가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선물로 보이게 될 것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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