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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2월 5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12-05 조회수 : 659

12월 5일 [대림 제1주간 목요일] 
 
이사야 26,1-6
마태오 7,21.24-27 
 
< 사람을 심판하면 믿으나 마나다 > 

강사 김창옥씨의 강의 중에 어떤 부부가 감자 때문에 이혼한 사연이 나옵니다.
어느 날, 이혼재판소에 한 부부가 찾아왔습니다.
판사가 물었어요. 왜 이혼을 하려고 하냐고.
그랬더니 ‘감자’때문에 이혼을 한다는 것입니다. 
 
“먹는 감자요?”
“네!” 
 
어리둥절한 판사가 자세한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사연은 이렇습니다.  
 
어느 날 아내가 감자를 삶아서 내왔습니다.
그리곤 감자에 찍어 먹으라고 설탕을 줬습니다.
그랬더니 남편이 “누가 감자를 설탕에 찍어 먹냐? 소금 가져와 소금.” 했습니다.
아내가 그냥 설탕 찍어먹으라고 했지만 남편은 소금 가져오라고 계속 말했습니다.
아내는 짜증난 목소리로 투덜거렸습니다. 
 
“당신은 손이 없어, 발이 없어?
그렇게 소금 찍어먹고 싶으면 당신이 가서 가져와!
손가락 하나를 까딱 안 해요. 이놈의 집안은.” 
 
그러자 남편도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해버렸습니다.
“그래, 장모도 감자에 설탕 찍어먹더라.
감자에 설탕 찍어먹는 집안. 에휴.” 
 
남편의 말에 아내가 화가 많이 나 소리쳤습니다.
“뭐? 집안? 당신 집안 뭐가 그렇게 잘났는데, 뭐가 그렇게 잘났기에 지랄이야!”
“뭐? 지랄? 에잇!” 
 
남편이 아내의 뺨을 치고 말았습니다.
아내가 째려보자 남편이 소리쳤습니다. 
 
“뭐, 어쩌라고? 어쩌고 싶은데? 어?”
아내가 차가운 말투로 또박또박 말했습니다.
“이. 혼. 해.”
“뭐, 이혼? 감자가 이혼할 이유냐? 이게?” 
 
남편이 당황했지만, 아내는 나지막이 말했습니다.
"나, 생각한지 오래됐어.”
그렇게 두 분이 재판소에 오게 된 것입니다. 
 
아내가 뾰로통한 표정으로 판사님께 물었습니다.
“판사님, 판사님께서는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셔서 좋은 교육 받으시고 판사 되셨잖아요?
판사님 댁에서는 감자에 설탕 찍어먹나요, 소금 찍어먹나요?” 
 
당황한 판사가 몇 초 후에 대답했습니다.
"우리 집에서는 감자에 신김치를 올려먹습니다.” 
 
과연 이 부부는 감자 때문에 이혼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서로를 심판하는 버릇을 무시했기 때문에 이혼하게 된 것입니다.
배우자를 평가하고 그 배우자가 자란 집안까지 심판하니 그 관계가 오래 유지될 수 없는 것입니다. 
 
모든 것엔 ‘기본’이 있습니다.
기본이 무시되면 더 이상 노력하는 모든 것이 한 순간에 무너집니다.
기본에 충실히 하지 않으면 다른 노력은 아예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누가 기반도 다지지 않고 건물을 짓겠습니까?
흔들리는 바탕 위에 노력하는 모든 것은 한 순간에 무너져 내립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의 기본이 있습니다.
그 기본에 충실하지 못하면 오늘 복음의 비유말씀처럼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습니다.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면 그 집은 완전히 무너져 내립니다.
예수님은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그러므로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모두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마태 7,1)라는
말씀의 결론부분입니다.
그러니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은 “남을 심판하지 마라.”로 바꿀 수 있습니다.  
 
남을 심판하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사람과 같습니다.
남을 심판하지 않는 것을 배우려는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시작하고
아무도 심판이 되지 않을 때 다른 덕도 쌓아가는 것이 좋습니다. 
 
일본 납세자 1위인 사이토 히토리씨가 결혼에 대해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결혼이라는 것은 빨리 하고 후회하느냐, 늦게 하고 후회하느냐 둘 중의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결혼은 수행이니까요.
생판 남과 생활하는 수행입니다.  
 
결혼하면 행복해질 것이라든지 상대방이 행복하게 해줄 거라는 망상을 하니
실패하는 거예요.
수행은 그런 것까지 다 포함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나를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면 남편의 이상한 말 한마디에 싫어지겠지만, 수행이라고 생각하면 ‘이 사람이 아니면 이런 수행을 할 수 있었겠어?’ 하고 생각하겠지요.  
 
그리고 결혼하는 상대방은 이미 정해져 있어요.
그래서 만나게 되면 반드시 결혼해야 해요.
정해진 운명이니까요.  
 
그렇게 수행이 시작되는 것이지요.
운명의 상대라고 부르지 말고,
수행의 상대라고 하세요.”
[출처: ‘돈을 부르는 말버릇; 운명의 상대? 수행의 상대’, 미야모토 마유미, 비즈니스북스] 
 
신앙도 이웃과의 운명적인 수행의 시작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운명적으로 사람들을 만나게 해 주십니다.
그들을 자기 행복을 위해 이용하는 대상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판단하지 않는 연습을 하는 수행대상으로 보아야합니다.  
 
신앙생활이 남을 심판하는 버릇을 고치려는 노력으로 시작될 때 반석 위에 집을 짓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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