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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2월 1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12-01 조회수 : 570

12월 1일 [대림 제1주일] 
 
이사야 2,1-5
로마 13,11-14ㄱ
마태오 24,37-44 
 
<​ 깨어있음은 사랑을 삶의 유일한 원칙으로 삼는 것이다 > 

늑대가 양 무리의 어린양을 자신의 저녁식사로 정했습니다. 
그러나 어린양이 무리에 끼어 있으면 그 양을 잡아먹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양 인척 흉내 내며 늑대 무리에 잠입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린양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너, 지난 해 내 욕하고 다녔지?”
어린양이 대답합니다.
“그럴 리가 있나요. 그때 전 태어나지도 않았는걸요.” 
 
그러자 늑대가 말합니다.
“그러면 네 형이었나 보지.”
“전 형이 없는데요?”
“그러면 네 가족 중에 누구였을 거야.”
“저희 가족은 남의 험담을 하지 않아요.” 
 
이런 대화를 하는 중에 어린 양인 자신이 무리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결국 늑대는 양에게 이렇게 말하고 잡아먹었습니다. 
“어, 상관없어. 이젠 저녁시간 다 됐거든.” 
 
우리 안에 우리를 깨어있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나에게 자꾸 말을 시키면 나는 정신없이 그것과 대화하다가 무리를 이탈하고 맙니다. 
이것이 자아입니다.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한 체로키 인디언 노인이 손자에게 삶에 대해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마음속에서는 늘 싸움이 일어난단다.”
그는 손자에게 말했습니다. 
 
“너무 끔찍한 싸움이어서 마치 두 마리 늑대가 싸우는 것과도 같단다. 
하나는 악마 같은 놈인데 분노 질투 슬픔 후회 탐욕 교만 분개 자기연민 죄의식 열등감 거짓 허영 잘난 체하고 자신의 거짓자아를 나타낸단다.  
 
다른 놈은 선한 놈이지. 
이놈은 기쁨 평화 사랑 희망 친절 선의 고요함 겸손함 동정심 관대함 진실 연민 신뢰를 나타낸단다. 
이 같은 싸움이 네 안에서도 일어나고 모든 사람의 마음에서도 일어난단다.” 
 
손자는 잠시 동안 그 말을 생각하다가 할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그럼 어떤 늑대가 이기나요?”
체로키 노인은 간단하게 대답했습니다.
“네가 먹이를 주는 놈이 이긴단다.” 
 
우리 안에는 항상 두 목소리가 있습니다. 
한 목소리는 나를 죽이고 이웃을 살리라는 것이고, 한 목소리는 이웃을 죽여 나를 살리라는 것입니다.  
 
한 목소리는 나의 생존을 위해 이웃을 이용하라는 것이고, 다른 목소리는 이웃이 나를 이용해 이득을 보게 하라는 목소리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한 목소리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고 다른 목소리는 자기만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자신만을 위하라는 목소리와 대화한다면 자신도 모르게 이웃을 사랑하라는 목소리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에서도 벗어나게 됩니다. 
결국 그 목소리를 내는 것에게 영원히 잡아먹힙니다. 
그 상태를 지옥이라고 합니다. 
이 모든 것은 늘 깨어 있지 못한 것의 결과입니다. 
 
오늘은 전례력으로 새해의 첫 날입니다. 
깨어있지 못하면 예수님께서 지금 나타나도 깨닫지 못합니다. 
하느님 말씀이 아니라 다른 목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알려주러 오신 목소리입니다. 
그 목소리를 따라가는 사람들이 교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보고도 사람들은 그 목소리를 따르지 않습니다. 
깨어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 사람만이 예수님의 목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1924년 파리올림픽 육상 400m에 출전한 에릭 리델은 예선에서 최고의 기록으로 수립, 금메달 획득이 유력했습니다.  
 
그는 예선 때 출발선에서 흑인 선수와 악수를 나누는 등 숱한 화제를 뿌렸습니다. 
인종차별이 심한 당시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대망의 결승전이 주일에 열리기로 결정됐습니다. 
그러자 리델은 주저 없이 출전을 포기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몇 가지 원칙을 지키며 살아왔습니다. 
그것은 주일을 거룩히 지내는 것과 인간 평등의 정신입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원칙으로 삼고 살면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지 못할 리가 없습니다. 
 
오늘 복음엔 예수님께서 오심이 곧 심판이 될 것임을 알려줍니다. 
마치 노아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고 방주를 만들었는데 다른 이들은 그 목소리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배를 짓지 못한 이들은 심판 때 모두 죽음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영원한 심판에서 죽음을 맞이하지 않으려면 다른 이들과 함께 사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하느님은 당신을 아버지, 성모님을 어머니로 하는 가족공동체를 꾸리실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만을 위해 이웃에게 해를 끼치며 살아온 사람은 마지막 때에 그 나라에 합당하지 못하다는 결론이 내려질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 안에 태어납니다. 
매 순간이 작은 심판인 것입니다.  
 
내가 어느 목소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하느님 나라의 백성이 되기도 하고 지옥의 백성이 되기도 합니다. 
 
깨어있음이란 원칙이 있는 삶을 말합니다. 
그 원칙이란 사랑이 아니면 아무 것도 하지 않겠다는 마음입니다. 
이 원칙을 깨고 누군가 미워지는데도 용서하기 위해 아무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잠자고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배를 만들지 못해 결국 물속에 잠기고 맙니다.  
 
노아가 하느님의 계명을 지켜 배를 만든 것처럼, 
우리는 그리스도의 계명인 사랑을 지켜 마지막 심판을 이기게 될 방주를 만들어야합니다.  
 
사랑의 계명을 삶의 원칙으로 삼고 사는 사람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맞아들일 수 있습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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