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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1월 25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11-25 조회수 : 589

11월 25일 [연중 제34주간 월요일] 
 
다니엘 1,1-6.8-20
루카 21,1-4 
 
< 봉헌은 자기 자신에게 하는 것이다 >

40세에 천억 부자가 된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 그 젊은 나이에 천억이나 벌게 되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40세 천억 부자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3가지만 철저하게 지키며 살았습니다.
첫째 약속은 꼭 지켜라.
둘째 사람들에게 신용을 얻어라.” 
 
그러자 사람들은 “그런 건 누구나 다 아는 교과서적인 이야기인데?”라며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때 그는 3번째 습관을 이야기했고 사람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셋째, 저는 ‘거래하는 파트너가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을까?’
이것만 연구했습니다.” 
 
논어에도 “내가 일어서고자 하면 남을 먼저 일으켜 세우고 내가 성공하고자 하면 먼저 남이 성공하도록 돕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참조: ‘천억을 부르는 3가지 습관’, 북올림, 유튜브] 
 
어떤 조리사가 사장에게 앙심을 품고 가게를 망하게 하려고 조미료를 과하게 사용하였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오히려 더 몰려드는 것이었습니다.
망하면서까지 더 퍼주려고 하면 자기가 더 잘 되는 것이 세상 이치입니다. 
 
이 법칙을 안다고 다 베풀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믿어야합니다.
오늘 과부는 어떻게 자기 생활비의 전부를 하느님께 봉헌할 수 있었을까요? 믿음 때문입니다. 
 
믿음은 봉헌에 의해 측정됩니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봉헌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에덴동산을 전부 주셨는데도 하느님의 자비를 믿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니 자신의 것은 자신의 힘으로 챙겨야했습니다.
그렇게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없으면 소득의 십분의 일도 바치기 어렵습니다. 
 
과부가 가진 전 재산을 봉헌했다는 말은 그만큼 하느님의 자비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받으시고 그냥 계시지 않으실 것을 안 것입니다.  
 
하느님은 광야에서도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을 굶기신 적이 없으십니다.
그러니 다 믿고 맡길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믿는다는 것은 또한 하느님을 남으로 보지 않는 것입니다.
자신이 가진 것을 다 내어줄 수 있는 사람들은 가족입니다.  
 
서로서로 다 내어줄 수 있을 때 남남이 부부가 됩니다.
인간관계의 친밀도는 내가 사람들을 얼마나 자비롭게 보느냐에 의해 결정됩니다.
하느님을 자비롭게 볼수록 하느님과의 관계가 친밀한 것입니다.
남남이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자비로우신 하느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내어놓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당신 안에 계시고 당신이 아버지 안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럴 수 있는 근거는 아버지께서 당신에게 모든 것을 주시고 당신도 아버지를 위해 생명을 바치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십니다.
그러니 내가 봉헌하는 것이 남인 그리스도에게 봉헌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품고 계신 그리스도께 봉헌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니 믿음을 가진 사람은 봉헌하면서도 자기 자신에게 주는 것 같아 아깝지 않습니다. 
 
봉헌하는 것이 십자라가 하면 되돌려 받는 것이 부활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이 하나로 이어지기에 결국 내가 하느님께 봉헌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나에게 봉헌하는 것이 됩니다.  
 
자비를 믿는다는 것은 부활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믿으면 부활시켜 주실 것도 믿기 때문에 더 많이 봉헌하게 됩니다.  
 
봉헌을 통해 부활을 체험하지 못하면 신앙이 깊어질 수 없습니다.
우리 신앙을 키우는데 봉헌만큼 큰 도구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헌금통을 바라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더 많이 바치는 과부를 찾으십니다.
당신을 더 내어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봉헌은 관계의 친밀성과 직결되기에 결국 사랑으로 바치는 봉헌은 자기 자신을 위해,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하는 것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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