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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1월 19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11-19 조회수 : 555

11월 19일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마카베오 하 6,18-31
루카 19,1-10 
 
< 그리스도처럼 되고 싶은 마음이 구원의 시작이다 > 

많은 대중들이 선호하는 유명 연예인을 광고 모델로 내세우는 것은 ‘나도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욕구를 활용해 소비를 촉진시키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따라하고 싶게 만드는 것입니다.  
 
마틴 린드스트롬(세계적인 브랜드 컨설턴트)의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광고 모델을 보면 그 사람과 동일시하고, 그 사람이 되고 싶어 하죠.
판매나 광고에서 모델을 내세워 ‘나도 저 사람이 될 수 있다’라고 느끼게 만듭니다.
그러면 소비자는 꿈을 꾸는 상태가 되죠.  
 
이렇게 꿈꾸는 상태가 되면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춰서 보는 게 아니라 그 모델을 통해서 봅니다.
저 사람이 곧 자신으로 믿으면서요.”
[출처: ‘자본주의; 제2부 소비는 감정이다’, EBS] 
 
사람은 닮고 싶은 사람이 있어야 변하게 됩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결국 자신이 아니라 자신이 닮고 싶은 대상입니다.  
 
아기가 늑대에게 키워지면 사람으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이는 인간이 스스로는 변화할 힘을 지니지 못함을 말합니다.  
 
변화가 타자에 의해 이루어지는 이유는
변화하려는 욕구는 타자에 의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자아라는 욕구의 지배하에 태어났습니다.
자아는 생존욕구입니다.
자아의 욕구가 사라지면 생존할 수 없어 인간도 흙이 되어버립니다.  
 
물론 자아의 욕구대로 살아도 결국엔 흙이 됩니다.
조약돌이 언젠가는 모래가 되는 것과 같고 나무가 언젠가는 흙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나무가 건축가를 만나면 수백 년이 흘러도 무너지지 않는 집의 일부가 되기도 하고 예술가를 만나면 수천 년이 지나도 가치 있는 조각품으로 새로 태어나기도 합니다.  
 
인간도 하느님을 만날 때야만 하느님께서 영원한 집을 지을 재료로 사용됩니다.
하느님 나라는 영원하기에 하느님 나라의 재료가 된 이들도 영원히 존재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자캐오가 그런 변화를 원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자캐오는 자신의 욕구를 죽여주고 영원히 살게 할 새로운 욕구를 찾고 있었습니다.  
 
자캐오는 자신의 힘으로는 존재의 변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인간으로는 자신이 변화될 수 없음도 알았습니다.  
 
같은 본성끼리는 변화를 일으킬 수 없습니다.
나무가 나무를 만난다고 조각품으로 새로 태어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자캐오는 나무 위에 올라가서 자신을 영원한 조각품으로 만들어줄 하느님을 찾은 것입니다. 
 
자캐오는 돈을 좋아하는 자신의 욕구를 버리고 예수님의 사랑의 욕구를 선택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은 내어놓으라는 욕구이고 인간은 소유하려는 욕구입니다.
하느님은 다 빼앗겨도 감사하라는 욕구이고 인간은 더 가져야 감사하겠다는 욕구입니다.  
 
오직 자신의 소유욕이 고통임을 아는 사람만이 자캐오처럼 자신의 소유욕을 꺾어줄 새로운 욕구를 맞아들이기를 원합니다.
새로운 욕구가 들어오면 필연적으로 이전의 욕구는 죽어야합니다.
나비의 욕구가 들어오려면 애벌레의 욕구는 버려야합니다. 
 
영원한 삶은 내가 나로 사는 것이 싫어서 그리스도처럼 살고 싶을 때 시작됩니다.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십자가 사랑의 욕구를 지니셨던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모든 인간이 자아에 지배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누구도 하느님의 본성으로 새로 태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리스도 외에는 구원의 길이 없습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처럼 되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변화도 일어나지 않고 구원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나로 사는 것에는 한계가 있고 그것이 고통임을 알기에 예수 그리스도처럼 살고 싶다는 마음이 바로 구원의 시작인 것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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