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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1월 18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11-18 조회수 : 605

11월 18일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마카베오 상 1,10-15.41-43.54-57.62-64
루카 18,35-43 
 
< ​믿음은 하느님의 좋으심을 묵상함으로써 커진다 >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여기저기 버려진 시체들이 있었습니다.  
 
한 들판에 유난히 코스모스가 응집되어 피어있는 곳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가까이가보니 코스모스들은 어떤 병사의 몸에서 피어난 것들이었습니다.  
 
군번줄로 신원을 확인해보니,
그 병사는 전쟁터에서 아무도 묻어줄 수 없는 병사들을 위해 아름다운 꽃의 향기가 휘날렸으면 하는 생각으로 자신의 몸에 한 움큼의 코스모스 씨를 안고 전쟁에 출전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그런 처지가 되어 썩어진 몸에서 코스모스가 피어 바람에 향기를 휘날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묵상해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썩은 시체처럼 보여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랑 가득한 사람의 모습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묵상할 때도 이러한 자세로 해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공부를 한다는 분들에게 아담과 하와가 왜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느냐고 물으면 많은 경우에 선악과를 따먹어서 그랬다고 대답합니다.
그러면 자녀가 여러분 가방에서 돈을 훔쳤다고 호적에서 파버릴 것이냐고 물으면 웃습니다.  
 
자신들은 그렇게 자비로우면서도 하느님은 과일 몇 개 먹었다고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쫓아내는 모진 분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성경은 하느님의 자비를 더 잘 알기 위해 묵상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쫓겨난 것은 선악과를 먹어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를 믿지 못해서였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믿지 못하고 옷을 만들어 입고 숨었기 때문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살게 하신 모든 은혜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선악과를 바치라고 한 것 하나에만 집중하며 하느님을 무자비한 분으로 판단해버렸습니다. 
 
달란트의 비유에서도 하느님을 위해 아무 일도 하지 않은 몹쓸 종이
하느님을 무자비한 분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주인님, 저는 주인님께서 모진 분이셔서,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려운 나머지 물러가서 주인님의 달란트를 땅에 숨겨 두었습니다.”(마태 25,24-25) 
 
성경공부를 하더라도 하느님을 무자비한 분으로 여긴다면 공부만 한 것이지 기도를 한 것은 아닙니다.
말씀은 묵상하는 사람을 통해 하느님이 자비로운 분이시라는 믿음을 줍니다. 
 
저의 어머니도 저에게 매우 모질게 대하신 적이 있습니다.
혼낼 필요가 없는 것도 혼내시고 학용품 살 돈도 안 주셔서 울려서 보내셨습니다.  
 
어머니는 저를 붙잡고 부모는 자녀를 일곱 살까지만 키워주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어머니는 자녀의 교육을 위해 엄한 훈육을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에 집중하면 어머니에 대한 믿음이 사라집니다.
그러면 그분과 사는 것은 고통 자체가 됩니다. 
 
저는 어머니가 저의 어머니인 것을 믿기 위해 어머니의 손과 발을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를 위해 굳은살이 박이고 관절이 휘어져 있었습니다.  
 
생선의 어느 부위를 드시는가도 살폈습니다.
언제나 머리 부분만을 드셨습니다.
몸통을 드시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맛있는 것을 나에게 먼저 주시는가도 살폈습니다.
새참으로 받으신 우유와 빵을 당신은 안 드시고 저녁 때 저에게 가져다 주셨습니다.  
 
이렇게 어머니께서 좋으신 분임을 묵상할 때
어머니가 나의 참 어머니가 맞는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하느님 자비에 대한 믿음을 성장시키지 않는 성경공부는 무익함을 넘어서 해를 끼칠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한 소경이 사람들이 조용히 하라는 데도 큰 소리로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부르짖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다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하십니다.
그는 비록 소경이었지만 하느님께서 너무나 좋으신 분이시기에 자신에게 좋은 것만을 주실 것임을 오랜 시간 묵상해온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통해 묵상해야 하는 유일한 것은 ‘하느님의 자비’입니다.
그 믿음만이 구원의 길입니다.  
 
기도가 끝나건, 성경 읽기가 끝나건 항상 하느님의 자비를 찬미하며 끝나야합니다.
그래야 믿음이 증가한 것입니다.  
 
하느님 자비에 대한 믿음이 증가하지 않는 그 어떤 것도 유익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모든 에너지가 하느님은 좋으신 분이라는 믿음을 증가시키는 데 쓰이도록 합시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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