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6일 [연중 제32주간 토요일]
지혜서 18,14-16; 19,6-9
루카 18,1-8
< 죄송하지만 청하는 것을 멈출 수 없을 때 믿음의 기도가 된다 >
어제 젊은 나이에 암으로 세상을 떠나신 최 루카 형제님이 스테파니아 반장님께 카톡으로 보낸 글들을 소개시켜 드렸습니다.
오늘은 그분이 병자성사를 받으시며 느낀 ‘기도에 대한 체험’을 함께 나누어보고자 합니다.
“오늘 병자성사 시작 직전에 문득 제가 저지른 잘못이 제 머리를 스쳤습니다.
저는 영과 혼과 육을 포함하여 제게 있는 모든 것을 주님께 봉헌하였고, 늘 그렇게 되새기며 지냈습니다.
불면의 밤이 계속되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지쳐갔을 때, 또는 참을 수 없을 만큼의 통증이 왔을 때 ‘주님, 저는 모든 것을 주님께 드렸고, 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물론 이 몸뚱이도 당연히 제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일 뿐이요, 저는 살아가는 동안 그저 주님의 것을 선량하게 관리할 뿐입니다.
그러니 제가 잠을 못자거나, 참기 어려운 통증이 오면 그것은 주님께 큰 손해(?)입니다.
그러니 주님 뜻에 다 맡기니 알아서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라며 투정(일종의 항의??) 섞인 기도를 하곤 했습니다.
(‘이런 기도를 해도 될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초심자이니 감안해 주실 것이고, 저의 깊은 속마음까지 꿰뚫는 분이시니, 무슨 기도를 못하겠냐는 마음으로 고했습니다)
그러면, 주님은 저를 재워주셨고, 통증을 없애주셨습니다.
물론 저의 기도에 대한 응답은 언제나 저의 잘못에 대한 가슴 깊은 회개가 있었을 때에만 그러한 응답이 있었습니다.
오늘 병자성사 전, 갑자기 제가 주님께 봉헌한 저의 육신을 그리고 영과 혼을, 그동안 너무나 소홀히 다루었다는 생각에 눈물이 흘렀습니다.
조금 피곤하다는 핑계로 운동을 소홀히 하였고, 특히 기도와 성경읽기를 최근 들어 너무나 소홀히 하고 있는 제 모습을 깨닫고는 참회의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또 다시 제 기도에 바로 응답을 주신 것 같습니다.
제 왼쪽 복부에 기분 나쁜 통증(?) 같은 것이 있었는데,
성사 중에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한 일이지요.”
루카 형제님은 세례 받으신 지 얼마 안 된 분이지만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참으로 잘 아시는 분이셨습니다.
주님께 기도로 무언가를 청할 때 그분이 당연히 그런 은총을 주셔야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분께서 이미 많은 은총을 주셨음에도 감사하지 못한 자신을 먼저 회개합니다.
이미 너무 많이 받았기에 더 청하기 민망하고 죄송하지만 청하지 않을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청하니 주님은 이런 경우엔 들어주지 않으실 수 없으십니다.
제가 강론을 공유하게 된 것도 유학 때에 저에게 강론을 원했던 몇 분들 때문이었습니다.
해외에서는 특강 같은 것이나 다른 신부님의 말씀을 들을 기회가 적기 때문에 몇 번 저를 만나신 분들이 귀찮더라도 메일로 강론을 보내주기를 청하셨습니다.
만약 그분들이 “당신은 사제이니까 당연히 목마른 양들에게 양식을 보내주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라고 말했다면 묵상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들은 제가 공부하러 나온 입장에서 매일 묵상을 써서 보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청하면서도 매우 미안해 하셨습니다.
그러면서도 청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저도 사제로서 당연히 강론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힘든 일이긴 했지만 기꺼이 매일 강론을 올려드렸습니다.
공부를 하면서 강론을 매일 쓰는 것은 마치 피를 말리는 것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피의 값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기꺼이 흘리고 싶었습니다.
하느님께서도 우리에게 그런 마음이실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청하는 것은 성령의 은총입니다.
성령은 하느님의 피입니다.
우리는 그 피를 청할 때 죄송한 마음이지만 그것이 없으면 안 되는 것을 알기에 어쩔 수 없이 청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청할 때 은총을 충만히 받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한 과부가 재판관을 귀찮게 하는 비유말씀을 해주십니다.
그 과부처럼 지치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당신께서 세상에 오실 때 그 과부와 같은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며 가슴 아파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당연히 주셔야 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없는 성령을 주시고자 하십니다.
기도는 그 성령을 달라고 청하는 것이고, 하느님은 그 성령을 주실 때 죽을 듯한 고통을 당하십니다.
그래도 그 가치를 알고 청하는 사람이라면 언제든 내어주실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기도로 받는 은총은 하느님의 피입니다.
이미 받은 것에도 너무 감사하지만 그 은총이 조금이라도 끊기면 살 수가 없기에 청할 수밖에 없을 때 성령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 은총의 필요함이 절실할 때 청하는 것을 멈출 수 없습니다.
그런 죄송하면서도 멈출 수 없는 기도가 은총을 얻게 하고 우리의 믿음을 증명합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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