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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1월 10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11-10 조회수 : 654

11월 10일 [연중 제32주일] 
 
마카베오 하 7,1-2.9-14
2테살로니카 2,16─3,5
루카 20,27-38  
 
< ​하느님 자녀의 유일한 신분증은 자신의 십자가뿐이다 > 
 
어느 시골에 사는 자매가 몹시도 힘들게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며 믿음으로 이겨가고 있었지만 너무도 힘들었습니다. 
“주여, 너무도 힘듭니다. 주여 너무 힘듭니다.” 라고만 기도할 정도였습니다. 
 
어느 날 꿈을 꾸는데 그녀가 커다란 십자가를 질질 끌고 가고 있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주님 너무 힘듭니다. 주님은 목수이시지 않습니까? 이 십자가를 잘라주세요.”
이에 주님은 빙그레 웃으시면서 잘라 주셨습니다. 
 
자매는 꿈속에서 세 번씩이나 자기의 십자가를 잘라달라고 하였습니다. 
한결 가볍고 편안한 듯했습니다.
그런데 눈앞에 절벽이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커다란 십자가를 절벽에 턱 놓더니 그 십자가를 다리 삼아 건너 하느님나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자기 십자가는 이미 손 안에 들어올 정도로 너무 작았습니다. 
자매는 털썩 주저앉아 서럽게 울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각자 다리로 사용한 자신의 십자가를 하늘나라까지 가져가야 했기 때문에 누구도 그 자매를 도와줄 수 없었습니다. 
 
그 때 그 자매가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주님의 음성이 다시 들려왔습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루카 9,23) 
 
십자가를 질 수 있다는 것은 부활에 대한 믿음이 있다는 반증입니다. 
살이 빠져 건강한 몸매를 갖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없다면 음식을 절제하는 십자가는 지지 않을 것입니다. 
십자가는 부활과 동전의 양면과도 같습니다. 
 
오늘 복음은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파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부활이 있어야만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부활신앙은 하느님의 본성이기 때문에 하느님의 자녀라면 당연히 그 세포마다 부활신앙이 새겨져 있어야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또한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부활이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것입니다. 
 
부활이 있다고 믿는다는 것은 지금 죽음을 살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없습니다. 
십자가는 자진해서 자기를 죽이는 도구입니다. 
예수님께서 타인에 의해 십자가에 달리신 것 같지만 실제로는 부활을 사시는 분이기 때문에 자진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입니다.  
 
지금 십자가를 살고 있다면 부활신앙이 있는 것이고, 
부활신앙이 있다면 하느님의 자녀인 것입니다. 
 
십자가의 삶은 미래에 벌어질 일이 아닙니다. 
매일 자신을 죽이고 있어야합니다. 
 
미국에서 지금 가장 뜨거운 인기를 누리고 있는 사람이 드웨인 존슨입니다. 
프로 레슬러로 활동하다가 영화배우로 활동하는데 차기 대통령감이라고 말할 만큼 인기가 좋습니다.  
 
그는 나이 50을 바라보는데도 강한 근육과 몸매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운동을 멈추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가 영화촬영을 위해 이동할 때는 엄청난 크기의 차량들이 함께 이동하는데 그 안에는 드웨인 존슨의 헬스장이 있습니다.  
 
남에게 방해를 받지 않고 운동을 하기 위해 많은 비용을 들여가면서까지 움직이는 개인 헬스장을 동반하는 것입니다. 
 
러닝머신은 처음에 범죄자를 고문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것입니다. 
운동은 그야말로 몸에 고문을 가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우는 것입니다. 
그렇게 고문을 가하지 않으면 그런 몸매가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고통이 없으면 얻어지는 것도 없습니다. 
이것이 부활을 믿는 삶입니다. 
지금 육체를 죽이고 있다면 부활을 믿는 증거입니다. 
 
기러기는 태어날 때부터 어디로 날아가야 하는지 압니다. 
마찬가지로 송어가 어디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지 아는 것처럼 십자가의 삶은 하느님의 자녀라면 유전자속에 새겨진 자연스러운 삶입니다. 
 
육체를 즐겁게 해주면 긴 고통이 오지만 육체를 고통스럽게 하면 긴 평화와 행복이 옵니다.  
 
육체적 만족은 나를 죽이는 십자가를 내려놓는 것입니다. 
부활의 기쁨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은 만족스러울지라도 오랜 불쾌감 속에서 살아야합니다. 
부활이 없는 인생입니다. 
 
‘최강의 인생’이란 책에 저자 데이브 아스프리는 창피를 무릅쓰고 스스로 자신에게 한 실험을 
공개하였습니다. 
부부관계와 삶의 만족도와의 상관관계를 밝혀내고 싶었던 것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 부부관계를 할 때의 일상에서의 행복도는 어떤가,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부부관계를 할 때의 행복도는 어떤가를 체크해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래프로 나타냈습니다. 
 
그런데 예외 없이 부부관계를 한 직후 삶의 만족도가 뚝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하루하루 조금씩 증가하다가 또 부부관계를 하면 다시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짜증과 화와 불만이 많아졌습니다.  
 
한 달 동안 부부관계를 하지 않을 때는 그 만족도가 끊임없이 증가하였습니다. 
예외가 없었습니다. 
부부관계를 하지 않으면 한 달 동안 매일 더 행복해진 것을 스스로 체험한 것입니다. 
 
인생을 성공적으로 마치려면 반드시 절제해야합니다. 
십자가의 삶을 살아야합니다. 
몸무게를 조금씩 줄이고 운동을 조금씩 늘리며 기도와 성경 읽는 시간을 늘려나가야 합니다.  
 
TV나 인터넷 하는 시간을 줄이고 책 읽는 시간을 늘려야합니다. 
점점 더 지루한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이것이 십자가 뒤에 반드시 부활이 있음을 믿는 하느님 자녀의 삶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들은 그 부활을 위해 끊임없이 자신의 육체의 만족을 죽여 나가고 있어야합니다. 
부활이 없다고 믿는 이들은 육체의 행복을 추구하는 이들이었습니다. 
죽고 난 다음의 행복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자녀가 아님을 스스로 증명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을 죽여 가는 것이 참 행복임을 믿기에 십자가의 삶을 삽니다. 
내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증명해 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매일 나를 못 박는 내 등 뒤에 십자가뿐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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