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8일 [연중 제31주간 금요일]
로마 14,7-12
루카 15,1-10
< 당연하다 여기면 부족해진다 >
제가 유학할 때 학교에 가는 길에는 항상 구걸하는 행려자들이 줄지어 있었습니다.
저도 십일조를 내야했기에 거의 매일 행려자들에게 천 원 정도씩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러다보면 당연히 더 받아야한다고 믿는 사람들은 벌떡 일어나서 저를 따라옵니다.
그리고 돈을 더 받아내기 위해 이런저런 사정 이야기를 합니다.
사정이 딱해서 만 원도 주고 심지어 몇 십만 원을 줄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고마워해야 할 텐데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지 이젠 아예 거액의 돈을 꾸준히 주지 않으면 미워하겠다는 눈초리를 보냅니다.
그러면 저도 무서워서 다시는 그 길로 다니지 못하게 됩니다.
다른 길로 다니면서 또 돈을 나누어줍니다.
그러다보면 천 원을 주던, 만 원을 주던 항상 감사해하는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 사람은 절대 따라오지 않고 주는 것에 만족해합니다.
그 사람이 돈을 청하는 것은 대부분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가족을 위하고 이웃을 위해 청합니다.
거저 받은 것이라 그런지 거저 내어주려는 마음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아무리 큰 액수의 돈을 주어도 아깝지 않습니다.
어떤 때는 돈이 없어 눈인사만 하고 지나쳐도 그 사람은 저의 사정을 이해해주며 미소로 화답해줍니다.
그러면 나중에라도 돈이 생기면 또 그 사람에게 주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우리가 지닌 것들 중에 당연한 것이 있을까요?
만약 내가 버려져 동물에게 키워졌다면 나는 두 발로 걸을 수도 없고 말을 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내가 숨을 쉬는 것도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오늘 하루도 허락해주지 않으셨다면 나는 어제 죽었어야 합니다.
모든 것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은총이요, 선물입니다.
더 많은 은총을 받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감사해 해야 하고 주님 말씀대로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려는 마음을 가져야합니다.
더 받고 싶으면 이미 받은 것을 감사한 마음으로 나눌 줄 알아야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집사 한 명이 등장합니다.
그는 처음에 주인의 재산을 자신의 재산처럼 낭비하며 살았습니다.
주인의 것이 곧 자신의 것이니 당연히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주인이 이 사실을 알고는 당장 집사 일을 정리하라고 말합니다.
그제야 자신이 가지고 누리던 모든 것들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 주인의 것임을 자각합니다.
이때부터 그는 정리하는 척 하면서 쫓겨날 자신을 받아줄 사람들을 만듭니다.
기름 백 항아리를 빚진 사람에게는 쉰 항아리로 탕감해주고 밀 백 섬 빚진 사람에게는 여든 섬으로 깎아줍니다.
자신이 받은 권한으로 이웃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들이 자신이 쫓겨났을 때 받아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인은 이 약삭빠른 종을 칭찬해줍니다.
그리고 이렇게 결론을 맺습니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들을 만들어라.
그래서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거처로 맞아들이게 하여라.”(루카 16,9)
불의한 재물은 부당한 재물입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이 내가 가지기에 합당해서 가진 것들이 아님을 알 때 그 재물들은 나에게 부당한 재물이 되고 불의한 재물이 됩니다.
부당한 재물인줄 알아야 나눌 줄 알게 되고
나눌 줄 알게 되어야 친구가 생기며 그 친구들이 내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보증이 됩니다.
내가 지닌 모든 것들에 항상 감사합시다.
머리카락 하나까지 당연히 받아야 해서 받은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그런 것을 당연히 주셔야 할 의무는 없으십니다.
더 받으려면 받은 것을 감사하게 나눌 줄 알아야합니다.
우리가 받은 것 중에 가장 부당한 재물은 ‘복음’입니다.
내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복음만큼 가치 있는 재물이 없습니다.
그러니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내가 가진 복음까지 잃게 될 위기에 처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러면 큰일입니다.
구원의 복음은 내가 가진 재물과 함께 이웃에게 나누어져야합니다.
이렇게 약삭빠른 집사가 될 때 하느님나라에서 가장 충실한 집사로 그분의 모든 재산을 맡아 일할 수 있게 됩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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