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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1월 4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11-04 조회수 : 706

11월 4일 [연중 제31주간 월요일] 
 
로마 11,29-36
루카 14,12-14 
 
<​ 보상을 바란 자선은 변화의 힘을 잃는다 > 
 
12세기 유대 철학자 마이모니데스는 자선의 등급을 8단계로 나누었습니다. 
 
1단계 : 억지로 베푼 자선(마지못해 주는 것; 주고 나서 후회하는 것; 보상을 바라는 선행)
2단계 : 즐겁게 베풀지만 충분하게 주지 않는 자선
3단계 : 즐겁게 베풀고 양도 충분하지만, 부탁을 하는 경우에만 베푸는 자선
4단계 : 즐겁게 베풀고 양도 충분하고 자발적으로 주지만, 받는 사람이 열등감을 느끼도록 행하는 자선(자신을 과시하며 주는 것)
5단계 : 받는 사람은 누구에게 도움을 받는지 알지만, 주는 사람은 누가 받는지 모르는 자선
6단계 : 베푸는 사람은 누가 받는지 알지만, 받는 사람은 누가 준 것인지 모르는 자선
7단계 : 베푸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서로 상대방이 누구인지 모르는 자선
8단계 : 불우한 사람이 일어서고, 생계를 벌고, 자존심을 회복하고 그 사람도 자선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자선 
 
자신을 드러내거나 자신의 공로를 인정받기 위해 하는 자선은 낮은 수준의 자선입니다. 
누가 주는지 모르게 하는 자선은 높은 수준의 자선입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높은 수준의 자선은 그 사람도 자선하는 사람으로 이끄는 자선입니다. 
상대의 변화를 이끄는 자선이 가장 완전한 자선인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이런 자선을 하라고 권고하십니다.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 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


왜 보답을 바라지 말고 자선을 하라고 하시는 것일까요? 
보상을 바라며 하는 자선은 상대의 변화를 이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상대가 내가 준 것을 되갚을 능력이 없을 때 양심이 있다면 다른 방법이라도 찾게 됩니다. 
나를 위해 기도해준다던지,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를 결심합니다.


그런데 그 자선에 대한 보답을 할 수 있다면 그 자선 때문에 상대가 변하는 일은 없습니다. 
가장 높은 수준의 자선은 누군가를 변화시키는 자선입니다.


한 양치기가 양을 몰고 집으로 가던 중 사자 한 마리가 어슬렁어슬렁 걸어오는 것을 봅니다. 
너무 놀라 도망치려 했는데 사자는 앉아서 발만 앞으로 내미는 것이었습니다. 
두려움을 무릅쓰고 사자의 발을 보았는데 커다란 가시가 박혀있었습니다. 
양치기는 가시를 빼내어주었습니다.


얼마 뒤 양치기는 모함을 받고 원형 경기장에 던져졌습니다. 
그 안에서는 사자가 사람을 잡아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사자가 그에게 달려오더니 그를 보호하는 것이었습니다.


간수가 아무리 채찍으로 사자를 내려쳐도 사자는 그 양치기를 보호하였습니다. 
양치기도 그 사자가 자신이 도와준 사자임을 알아차렸습니다.


이 이야기를 간수에게 하고 간수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자 사람들은 사자와 양치기를 풀어주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렇게 사자는 정글로, 양치기는 양치는 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아무리 사자라 하더라도 절뚝이며 걷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사자는 자신의 방법으로 은혜를 갚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을 우리는 되갚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 은혜에 보답할 길이 없습니다.


하느님은 필요한 것이 없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다만 은혜를 되갚으려는 마음을 이웃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으로 보여주라고 계명을 주셨습니다. 
되갚을 수가 없기에 우리는 우리 방식으로 이웃을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모습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그리스도의 되갚을 수 없는 자선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처럼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도 가난한 이웃에게 그러한 자선을 해야 합니다. 
가장 완전한 자선은 자신처럼 다른 사람도 되갚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풀 줄 아는 사람으로 만드는 자선입니다.


가장 완전한 사랑은 사랑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되갚을 능력이 없는 이들에게 자선을 베풀어야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러 오신 것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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