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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0월 24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10-24 조회수 : 627

10월 24일 [연중 제29주간 목요일] 
 
로마 6,19-23
루카 12,49-53 
 
< 사랑은 하는 것보다 받는 것이 더 중요하다 > 

인도의 빈첸시오회 수도사제이자 유명한 피정 강사인 안토니오 사지 신부님의 이야기입니다.
그분의 어머니가 그분을 잉태한 상태에서 교통사고를 당했었습니다.
당시 임신 7개월이었습니다.  
 
사고 후 아기의 움직임이 사라졌습니다.
의사들은 사고 후에 아기가 죽었거나 혹시 태어나도 장애아로 태어날 것이기에 낙태를 권유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배 속에서 아기가 자라게 해 주십시오. 장애아라도 좋습니다.
아기를 돌보기 위해 제가 있습니다.” 
 
그렇게 아기가 태어났고 건강하게 자라 약 한 번 안 먹어보고 사제가 되었습니다.
신부님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은 이 때문에 지극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제가 된 후 어머니가 위암에 걸려 위의 90%를 절제하는 수술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의사들은 3개월 정도 살 것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신부님은 미사 때마다 기도했습니다. 
 
“주님, 어머니의 삶에서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해 주소서!
어머니께서 사시든 돌아가시든 오직 당신 뜻대로 해주소서!” 
 
어머니는 수술 후 7일 만에 완전히 치유되셨고
몇 년이 지나서도 계속 건강하게 사십니다.
어머니는 신부님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아들아, 네가 위험에 처했을 때 나는 너를 보호했었다.
이제는 네가 나의 치유자가 되었구나.
처음에는 내가 너의 치유자였다. 그런데 이제 네가 나의 치유자다.” 
 
[출처: ‘아주 특별한 순간’, 안토니오 사지, 바오로 딸] 

만약 아들이 어머니의 사랑을 먼저 받지 못했다면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그만큼 클 수는 없을 것입니다.
사랑은 받은 만큼 할 수 있습니다.
불이 저절로 붙여지지 않는 것처럼 사랑도 받아야만 그것이 나를 태워 이웃을 따듯하게 합니다.
사랑은 그래서 하는 것보다 받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려면 사랑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그 사랑을 받아야만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오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불은 하느님의 종으로 살게 하는 힘입니다.  
 
예수님은 깨어있음에 대해 말씀하시고 깨어있으려면 주인이 항상 함께 있는 것처럼 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려면 성령의 불을 받아야만 합니다.
사랑은 성령의 불로 나 자신을 태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주님의 뜻이 서로 사랑하라는 것임을 알아도
성령께서 도와주시지 않으시면 미워하는 사람이 반드시 생깁니다.
사랑은 피흘림입니다.
어머니의 피흘림이 자녀를 탄생시킵니다.
피흘림 없는 사랑은 없습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사랑이신 성령은 그리스도의 피입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지 않으실 수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 
 
세례는 죽음과 부활입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보내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실 수밖에 없으셨습니다.
죽을 줄 알아야 새로 태어날 수 있기에 성령을 보내는 십자가의 죽음이 곧 세례인 것입니다.  
 
죽을 줄 모르면 사랑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이것을 배운 사람들만 하느님 나라에 살 자격을 주십니다. 
 
가진 것만을 줄 수 있습니다.
사랑도 그렇습니다.
사랑하려면 먼저 사랑을 가져야합니다.  
 
이 사랑을 받는 시간을 ‘기도’라 합니다.
그래서 기도 없이는 사랑이 불가능합니다.  
 
만약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용서하고 사랑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진정 기도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동물들에게 키워진 아이들을 보여준 ‘서프라이즈: 모글리 현상’에서 아이들의 표정을 유심히 본 적이 있습니다.
보통 아이들의 표정이 100이라 하면, 동물들에게 자란 아이들의 표정은 10정도밖에 안 되었습니다.  
 
웃고 울고 화내는 표정조차도 누군가의 표정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자녀들의 표정은 대부분 부모들이 넣어준 것입니다. 
 
사람은 받지 않으면 아무 것도 내어줄 수 없습니다.
하물며 사랑이야 어떻겠습니까?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해야 행복한 것을 안다면 어떻게 기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사랑은 하는 것보다 받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겨야합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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