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8일 [연중 제27주간 화요일]
요나 3,1-10
루카 10,38-42
< 누구나 자신을 닮으려는 사람을 가장 사랑한다 >
옛날 중국 정(鄭)나라 왕 무공(武公)이 호(胡)나라를 점령하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먼저 자기 딸을 호나라 왕에게 시집보내, 그의 환심을 샀습니다.
그리고 신하들에게 의견을 물었습니다.
“내가 군사를 일으키려 하는데, 어느 나라를 치면 좋겠는가?”
신하 관기사(關其思)가 임금의 뜻을 알기에 호나라를 공격할 수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정무공은 “호나라는 내 딸이 살고 있는 형제 국가인데 어떻게 점령할 수 있겠는가?” 라고 화를 내며 그를 죽여 버렸습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호나라 왕은 정나라가 진정한 형제 국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경계심을 풀고 방심하며, 정나라를 무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를 기다린 정무공은 호나라를 공격할 구실이 생겼고, 시기도 무르익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신하들을 불러놓고 다시 물었습니다.
“호나라 왕이 우리를 무시해서 혼내주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한 신하가 이전 관기사의 일을 기억하며 왕에게 잘 보이기 위해 “형제 국가인 호나라를 어찌 공격할 수 있습니까?”라고 말하자, 정무공은 화를 내며, “형제 국가라고 해서 우리를 무시해도 되는가?”라며 그 신하를 죽여 버렸습니다.
신하들은 이를 보고, 모두 호나라를 공격하는데 찬성하였습니다.
정무공은 두 명의 신하를 고의로 죽이는 쇼를 연출함으로써, 호나라를 안심시키고 민심을 얻는데 성공하였습니다.
그렇게 호나라를 점령하였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는 잘 보여야합니다.
그래야 생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생존하기 위해 타인에게 잘 보이려면 타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야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워낙 잘 변하기 때문에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자신을 맞추려다가는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가기 어렵습니다.
이 세상에서 생존할 수는 있겠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맙니다.
그래서 타인에게 잘 보이려하기보다는 우리를 심판하실 분께 잘 보이려 노력하는 것이
이득일 것입니다.
하느님께 잘 보이면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저절로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 잘 보이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그분께서 원하는 일을 해 드려야할까요?
그분께서 우리에게 어떤 일을 하기를 원하실까요?
소와 호랑이가 있었습니다. 둘은 죽도록 사랑해서 결혼해서 살게 되었습니다.
소는 최선을 다해서 맛있는 풀을 날마다 호랑이에게 대접했습니다.
호랑이는 싫었지만 참았습니다.
호랑이도 최선을 다해서 맛있는 살코기를 날마다 소에게 대접했습니다.
소도 괴로웠지만 참았습니다.
참다 참다 드디어 소와 호랑이는 다툽니다.
결국 둘은 이혼하게 되었습니다.
소는 소대로, 호랑이는 호랑이대로 헤어지면서 서로에게 한 말은, “난 최선을 다했어.”였습니다.
최선은 다 한 것은 맞습니다.
소와 호랑이라는 틀 안에서는 최선을 다 한 것입니다.
다만 호랑이가 소가 되려하고 소가 호랑이가 되어보려 하지 않은 것이 문제입니다.
사람은 자신에게 무엇을 해 주느냐보다는 자신을 닮으려는 사람을 제일 사랑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마르타는 예수님께 먹을 것과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분주히 일했습니다.
마르타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최선을 다하는 마르타에게 마리아는 게으름을 피우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예수님 옆에만 꼭 붙어서 그분의 말씀만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은 식모를 원한 것이 아니라 순결한 신부를 원하셨습니다.
일 잘 하는 사람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닮으려는 사람을 원하셨습니다.
마리아는 이것을 알았고 마르타는 몰랐습니다.
모든 인간이 그런 것처럼, 예수님도 당신과 같아지려는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그런데 누구와 같아지려면 그 사람을 배워가야 합니다.
마리아는 그 길을 택한 것이고 예수님은 그것만 필요하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되려면 예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아야하고 예수님으로부터 배워야합니다.
이 시간을 ‘기도’라 합니다.
필요한 것은 한 가지 뿐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