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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0월 3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10-03 조회수 : 662

10월 3일 [연중 제26주간 목요일] 
 
독서 : 느헤미야 8,1-4ㄱ.5-6.7ㄴ-12
복음 : 루카 10,1-12 
 
< 하느님 특사의 품격 > 

헨리 나우엔 신부는 예일대학과 하버드대학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1985년 초에 불란서에 있었던 정신지체아들을 돌보는 라르쉬라는 공동체에 
한 지도자가 예일대학으로 헨리 나우엔을 방문합니다.  
 
헨리 나우엔은 그 공동체의 지도자로부터 처음으로 정신지체아들의 세계에 대한 얘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아, 그렇구나.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 있구나. 
또 정신지체아들을 섬기면서 이렇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구나.’ 
 
그 날은 그들이 사는 얘길 감동적으로 듣고 그냥 헤어졌습니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그 공동체의 지도자로 있었던 장 바니에 신부로부터 편지 한 장을 받습니다.  
 
그 편지의 내용은 
“자기의 공동체에서 정신지체아들의 피정이 열리는데 거기에 왔으면 좋겠다.”는 글이었습니다. 
헨리 나우엔은 처음에 자신을 강사로 초청한 줄 알고 있었는데 막상 가보았더니 
“우리 피정은 침묵 피정입니다. 이 피정은 사흘 동안 열리는데 
기도만 하고 행동으로만 사람들을 돌봐주고 섬기는 피정입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특이한 피정을 참석하면서 헨리 나우엔 신부는 이상하게 마음이 끌렸습니다. 
사흘 동안 아무 소리 안 하고 정신지체아들을 돌봐주고 발도 씻어주고 밥도 해주고 같이 식사하고, 그들을 쳐다보면서 그는 처음으로 정신지체아들의 세계를 경험합니다. 
 
침묵피정을 마치고 돌아온 후 또 한 장의 편지를 받게 되었습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있었습니다. 
 
“신부님이 함께 있어서 축복이었습니다.
신부님이 우리 같은 정신지체아 공동체의 지도자가 되어 주신다면 얼마나 커다란 하느님의 선물일까요.” 
 
그 당시 헨리 나우엔 신부는 예일대학에서 하버드대학 교수로 이제 막 옮겨 한참 할 일이 많을 때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버드대학에서 교수로 일하면서 얼마든지 불쌍한 사람들을 도울 수가 있는데, 그 편지 한 장이 이상하게도 그의 마음을 끌었습니다. 
 
‘주님이 나를 하버드대학을 떠나서 정신지체아 공동체의 지도자로 부르신다.’
그의 마음에 자꾸 그런 부르심이 느껴져 갈등하기 시작합니다.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할까.’
그는 매우 갈등했지만 주님의 강렬한 부르심이라는 사실을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버드대학 교수직을 포기하고 1985년 가을에 캐나다의 토론토 근처에
‘데이브레이크 커뮤니티’(Day Break Community)라는 정신지체아를 위해 
새로 생긴 공동체의 지도자로 떠납니다.  
 
그 곳에는 단 6명의 정신지체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단 6명과 함께 살기 위해 하버드대학의 교수직을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의 일기에 이렇게 기록합니다. 
 
‘이상하다. 이것은 희생이고 이것은 지금까지의 삶을 뒤엎는 나의 새로운 삶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웬일인가! 이상한 마음의 평안이… 이 놀라운 평안이여, 자유여, 자유여.’
[‘주님의 강렬한 부르심: 소명편’, 한태완 목사 예화 모음] 
 
예수님은 오늘 일흔두 제자를 파견하시며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심정은 어떤 것일까요? 
예수님께서 세상 속으로 가는 제자들을 향해 당부하고 싶으셨던 것은 “조심하라!”는 것일 겁니다. 
절대 세상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호의적일 것이라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미 세상이 제자들에게 호의적이라면 복음을 전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세상으로 나아가며 이리들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예수님께서 먼저 당부하시는 것은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부유해지면 아무래도 세상 유혹에 빠지기 쉬워집니다. 
또한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말라는 말씀은 세상 애정이나 애착에 사로잡히지 말라는 뜻입니다.  
 
마치 그들의 호의를 얻으려고 복음을 전하는 것처럼 보여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항상 ‘갑’의 위치를 유지하라고 하십니다.
이는 교만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나누어주려 하는지 잊지 말라는 뜻입니다.  
 
만약 임금이 주려는 보물들을 나누어주러 가는 사람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굽실거리고 세상 것이나 사람에게 애착을 느껴 휘둘린다면 임금이 준 특권의 가치를 떨어뜨리게 됩니다.  
 
하물며 임금 중의 임금이신 하느님께 영원한 생명의 은총을 받아 세상에 파견된 자라면 그것에 합당한 품격을 지녀야 할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일꾼이 품삯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시며 차려주는 음식을 먹고 그 집에 머물라고 하십니다. 
그 집은 그것으로 이미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발에 묻은 먼지까지 털어버리고 소돔이 그 고을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라는 것은 말하라고 하십니다. 
 
이 모든 말씀을 정리해보자면 복음을 전하는 자가 재물이나 먹고 마시는 것이나 애정에서 세상 사람들에게 휘둘리게 되면 결국 그들에게 잡아먹히게 된다는 뜻입니다.  
 
하느님의 특사는 특사로서의 품위를 지켜야합니다. 
맹수는 약해 보이는 것부터 잡아먹습니다. 
헨리 나우엔 신부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세상 명예를 쓰레기처럼 버렸습니다. 
이것이 파견된 자의 품격입니다.  
 
이 품격이 세상 사람들에게 주님께서 주시는 은총의 가치를 증명해줍니다. 
세상 가치들이 나에게 의미가 있는 것처럼 휘둘려서는 복음전파자의 품격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이리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오늘 제자들을 파견하시며 당부하신 하느님 은총의 분배자로서의 품격을 잃지 않으려 노력해야겠습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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