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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0월 2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10-02 조회수 : 660

10월 2일 [수호천사 기념일] 
 
탈출기 23,20-23
마태오 18,1-5.10 
 
<​ 나를 수호천사로 만드는 ‘바라봄의 법칙’ > 

선조 16년 율곡 이이는 외세의 침입에 대비해 십만 명의 군사를 양성해야 한다는 개혁안을 내었습니다. 선조는 이를 묵살하였습니다.
덕분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여 수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를 고스라니 받아야했습니다.
물론 자신은 도망 다니기 급급하였습니다. 
 
선조는 조선건국 이래 처음으로 적통 출신이 아닌 왕이었습니다.
중종의 후궁인 창빈 안씨가 낳은 덕흥대원군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니 끊임없이 자신의 불안한 왕권을 지키기에 급급하였습니다. 
 
선조는 자신의 왕권을 위협할 수 있는 모든 이들을 제거하려 했습니다.
우선 선조는 임진왜란 때의 영웅 이순신을 역사에서 지우려고 하였습니다.  
 
이순신만이 아니라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류성룡 등도 은근히 미워하였습니다.
전라도의 탁월한 의병장 김덕령 장군도 미운 털이었습니다.  
 
어쩌면 이순신이 전쟁에서 죽지 않았어도 선조에게 죽었을 것입니다.
선조가 육전의 영웅 김덕령을 이몽학의 역모에 엮어 사형에 처해 버린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왜 나라를 보호하고 이끌어야 하는 왕이 오히려 그런 도움을 주는 사람들을 제거하려 했을까요?
자기 걱정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불안하면 누구도 도울 수 없습니다.
자신도 바로 서지 못하는 아기가 어떻게 남을 잡아줄 수 있겠습니까?  
 
비틀거리면 잡히는 무엇이나 자신이 설 수 있게 만드는 도구로 만듭니다.
이런 사람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오늘은 우리 각자를 지켜주시는 수호천사님들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안위를 잊고 우리 안위를 위해 희생 봉사하는 이들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작고 힘없는 사람들을 업신여기지 않도록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여기서 관심을 가져야하는 것은 수호천사들의 시선입니다.
수호천사의 시선은 자기 자신에게 있지 않고, 또 자신이 보호해주어야 하는 사람들에게
있지도 않습니다.  
 
수호천사들의 눈은 하느님의 얼굴을 향해있습니다.
우리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려면 이와 같아야합니다.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성모님은 누구를 바라보고 있었을까요?
포도주가 떨어져 쩔쩔매는 혼인잔치를 준비한 이들을 바라보고 있었을까요?  
 
아닙니다.
그것은 흘깃 보는 것으로 족합니다.
그 포도주를 채워줄 분을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을 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러니 부족한 포도주가 채워졌습니다. 
 
마찬가지로 가족을 지키고 싶다면 가장은 가족의 부족한 것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하느님을 한없이 바라봐야 합니다.
참으로 가족을 보호하고 싶다면 누구에게서 도움이 올 수 있는지를 알아야합니다. 
 
선조처럼 정작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을 내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바라봄의 법칙’의 저자 주대준씨는 거제도 섬 소년이었다가 청와대경호실 차장을 지낸 인물입니다.
정보화 불모지였던 청와대에 들어가 경호 시스템을 IT로 변화시켰고, 탁월한 리더십으로 경호실 사람들의 학업 수준을 엘리트로 바꾸어 놓은 업적이 있습니다. 
 
그가 이런 꿈을 이루게 된 것에는 ‘바라봄의 법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경남 산청군 산골마을에서 태어나 부모님의 갑작스런 사업실패로 거제도로 가게 된 저자는,
아버지의 병치레와 죽음으로 초등학교 때부터 고학을 해야만 하는 처지에서도 결코 좌절하지 않고 긍정의 모터를 단 사람처럼 늘 탱크같이 전진했습니다. 
 
그가 그렇게 전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바로 ‘주 씨 아저씨’가 있었습니다.
저자는 처음 교회에 갔을 때 교회 문 위에 걸려 있는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현판을 보고
예수님의 성이 자신과 같은 주 씨 인 줄 알고 단번에 친근감을 느꼈고,
주 씨 아저씨를 평생의 멘토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평생의 멘토를 만난 저자는 늘 하느님을 바라보고 전진해, 마침내 바라보고 바라봤던 청와대에 입성하게 된 것입니다. 
 
선조는 자신만 바라봤습니다.
그 이유는 누구도 자신을 지켜줄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바라보면 자신에 대해 걱정하지 않게 되고 그 에너지를 이웃을 위해 쏟을 수 있게 됩니다.  
 
주대준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을 바라보며 기도하면, 내 안에 있는 ‘안 된다’,
‘어렵다’, ‘불가능하다’, ‘포기하고 싶다’는 부정적인 생각들이 달아났다.
그분은 사막에서도 강을 내시고 광야에서도 물을 내시는 분이 아니던가.
내가 요행을 바라지 않고 그분의 뜻대로 한 걸음 한 걸음 살아갈 수만 있다면, 내 가 품은 꿈도 반드시 이루어지도록 그분이 도와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 확신은 현실로 이루어져 나갔다.
이른바 ‘입을 벌려 기도하고 바라보면 바라보는 만큼 채워주시는 하느님’을 체험을 통해
‘바라봄의 법칙’을 확립하게 된 것이다.” 
 
주님만을 오로지 신뢰하는 마음으로 바라봅시다.
그러면 나에 대한 걱정이 사라집니다.
나에 대한 걱정이 사라질 때 이웃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수호천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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