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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9월 30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9-30 조회수 : 640

9월 30일 [연중 제26주간 월요일] 
 
즈카르야 8,1-8
루카 9,46-50 
 
<​ 지옥까지 포용할 수 있는 사람 > 

돈멀루의 ‘붐비는 우회로’라는 책에는, 부정한 방법으로 자기 회사의 자금 중 수천 달러를 몰래 빼돌린 한 젊은 회사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행위는 적발되었고, 젊은이는 사장실에 가서 그 경위를 보고해야 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내려질 법적 조치가 두려웠습니다.
그의 행위가 모두 사실이냐는 질문에 그는 그렇다고 답변했습니다.
그러자 사장은 깜짝 놀랄 만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내가 자네를 지금 그대로 일하게 해 준다면, 앞으로 자네를 믿을 수 있겠는가?”
젊은이의 얼굴이 환해지면서 대답했습니다.
“예, 사장님. 여부가 있겠습니까? 저도 이 일로 인해 깨달은 바가 있습니다.” 
 
사장이 말했습니다.
“나는 자네에게 책임을 묻지 않겠네. 가서 일을 계속하게.” 
 
젊은이와 대화를 끝내면서 사장은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들려주었습니다.
“하지만 자네가 알아야 할 것이 한 가지 있어.
이 회사에서 유혹에 넘어갔다가 관용을 받은 사람은 자네가 두 번째 사람이야.
첫 번째 사람은 나야. 나도 자네와 같은 짓을 했었지. 자네가 받고 있는 자비를 나도 받았다네.” 
 
사장은 또 배신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받아들일 수 있으니 대인(大人)인 것입니다.
사장이 용서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이전에 용서 받았기 때문입니다.  
 
아담이 하와에게 자신의 죄에 대한 핑계를 댄 것은 용서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그를 책망할 마음이 없었지만 아담 스스로 하느님을 무자비한 분으로 보고 죄책감을 없애기 위해 하와를 심판한 것입니다.  
 
따라서 남을 심판하지 않으려면 하느님의 자비를 믿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입으면 이웃도 심판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그래서 ‘포용력’이 커지는 것입니다.  
 
용서받은 사람만이 용서할 수 있습니다.
용서하지 못한다면 용서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의 핵심은 겸손한 사람은 포용력이 크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누가 서로 큰 사람이냐를 따지며 논쟁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하늘나라에서 어떤 사람이 큰 사람인지 말씀하시기 위해 어린이를 세우십니다.
어린이는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의 대명사입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이 어린이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이런 포용력의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간음한 여자를 다른 사람들은 다 판단하여도 예수님은 심판하지 않으시겠다고 보내주십니다.
그러나 그런 여자를 받아들임으로써 예수님은 죽음의 위협을 받으셔야하셨습니다.  
 
또한 가리옷 유다도 사도로 뽑으셨습니다.
당신이 가까이하기 좋아하는 사람만 뽑으신 것이 아닙니다.
가장 마귀 같은 인간도 당신 곁에 두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께 오기를 바라는 이는 누구나, 심지어 마귀 같은 유다까지도
받아들이셨기 때문에 하느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 되셨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며 더 꼬장꼬장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혹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 온유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은퇴하신 신부님들 중에서도 그런 분들이 계십니다.
어떤 분들은 더 비판하시고, 더 나무라십니다.
그러나 또 어떤 분들은 이전에 그런 분이었을지라도 매우 온화하게 변하신 분들이 계십니다. 
 
큰 사람이 되려면 내 안에 받아들이는 사람이 더 많아야합니다.
하느님은 끝까지 당신을 거부해서 멀어지려는 이들을 제외하고는 좋은 사람, 나쁜 사람 할 것 없이 모두 받아들이십니다.  
 
우리도 자신해서 나와 멀어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마귀까지도 받아들일 마음으로 살아야합니다.  
 
마귀는 주님이 심판하실 것입니다.
마귀까지 받아들이면 지옥까지도 자기 마음을 넓힌 사람이 됩니다.
지옥까지 마음을 넓힌 사람만큼 큰 사람은 없습니다. 
 
지옥이 하느님의 영향 하에 있어도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영향을 받지 않으십니다.
다만 지옥까지 마음을 넓히셨기 때문에 하느님보다 큰 존재가 없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지옥에 있는 마귀들이 회개한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하느님 나라에 받아들이실 것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큰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까?
부모는 마귀 같은 자녀도 사랑합니다.
그러니 그 사랑이 큰 것입니다.  
 
혹시 나는 사람을 분별하지 않습니까?
지옥까지 품을 수 있어야 진정으로 큰 사람입니다.  
 
지옥과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지옥과 같은 유다도 제자로 받아들이셨습니다.
나는 어디까지 포용할 수 있습니까?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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