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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9월 29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9-29 조회수 : 644

9월 29일 [연중 제26주일] 
 
연중 제26주일 
 
아모스 6,1ㄱㄴ.4-7
티모테오 1서 6,11ㄱㄷ-16
루카 16,19-31  
 
<​ 말씀 공부의 목적은 무덤에서 죽기 위함이다 > 

전 세계의 존경을 받는 남아프리카의 첫 흑인 대통령 넬슨 만델라는 백인 정부에 의해 26년간 감옥살이를 했었습니다.  
 
그가 출옥할 때 사람들은 그가 아주 허약한 상태로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70세가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아주 건강하고 씩씩하게 걸어 나왔습니다. 
그래서 80세 넘어 대통령까지 될 수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5년 만 감옥살이를 해도 건강을 잃는데 어떻게 26년 동안 옥살이를 했는데도 그렇게 건강한 상태로 출옥을 할 수 있었냐고 사람들이 질문했습니다. 
 
“나는 감옥에서 하느님께 감사했습니다. 
하늘을 보고 감사하고 땅을 보고 감사하고 강제노동을 할 때도 감사하고, 늘 감사했기 때문에 건강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가 생활했던 감옥은 시멘트 바닥이었고 겨울에도 작은 담요 하나로 버텨야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매일 새벽에 일어나 제자리 달리기를 45분, 손가락 짚고 팔굽혀펴기 200회, 윗몸 일으키기 100회, 허리 굽히기 50회 이상을 했습니다. 
 
하느님께 감사하다면서 왜 이렇게 몸을 괴롭힌 것일까요? 
몸이 미워서였을까요? 아닙니다.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몸을 괴롭히라는 것입니다. 
건강해질 수 있도록 몸을 괴롭히라는 것이 하느님의 메시지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부자는 바리사이, 율법학자의 상징입니다. 
반면 거지 라자로는 예수님 제자의 상징입니다.
둘 다 성경말씀으로 양식을 삼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다만 한 사람은 그 말씀을 자기를 괴롭히려는 목적으로 사용하였고, 한 사람은 자신을 배불리려는 용도로 사용하였습니다. 
같은 이슬을 뱀과 젖소 두 부류가 먹은 것입니다. 
 
거지 라자로는 말씀으로 자기를 죽인 사람입니다. 
오늘 복음의 거지 라자로는 예수님의 친구 베타니아의 라자로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친구가 죽어서 무덤에서 썩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래야 믿지 않는 이들에게 표징이 되기 때문입니다.  
 
유다인들은 죽은 사람을 부활시켜보라고 청할 때는 언제고, 라자로를 부활시키자 그들은 예수님은 물론 라자로까지 죽이기로 협의합니다. 
 
반면 말씀으로 자기 배만 불리려고 했던 사람들이 바리사이, 율법학자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지식으로 장사를 하여 배를 불렸습니다. 
 
예수님은 왜 부자가 지옥가고, 거지 라자로가 천국 가는지 이렇게 아브라함의 입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얘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부자는 혀를 만족시키는 사람이었습니다. 자아를 만족시키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영혼을 망가뜨린 사람입니다. 
부자와 부자의 형제들도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부자는 자신의 형제들이 지옥에 오지 않게 해 달라며 이렇게 청합니다.
“그렇다면 할아버지, 제발 라자로를 제 아버지 집으로 보내 주십시오. 
저에게 다섯 형제가 있는데, 라자로가 그들에게 경고하여 그들만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다섯은 ‘오감(五感)’, 즉 육체의 욕구를 의미합니다. 
육체의 욕구를 채우느라고 정신없는 그들이 지옥에 오지 않는 방법은 성경을 믿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래서 이렇게 말해줍니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성경말씀을 아무리 읽어도 몸을 괴롭힐 마음이 없다면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그런 이들에게 라자로가 부활하여 나타나봤자 믿지 않을 것을 미리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말씀을 받아들이는 모델은 그 말씀을 통하여 자기 자신을 무덤에 들어가게 만들려는 의도가 있어야합니다.
성공하려면 배의 80%만 채우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절제의 성공학’을 쓴 미즈노 남보쿠입니다.  
 
그가 19세기 초 국가로부터 ‘대일본(大日本)’이란 칭호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절제의 습관 때문이었습니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싸움과 감옥살이를 일관했던 그가 어떻게 변할 수 있었던 것일까요?  
 
한 관상가가 “당신은 1년 안에 칼에 맞아 죽을상이니 1년 동안 보리와 흰콩으로만 
식사를 하고 다시 돌아오라.”고 한 것에서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말년에 상당한 부와 명성을 쌓았지만, 그의 음식은 항상 보리 1홉 반, 술 1홉, 반찬은 1탕 1채의 간소한 식사를 했다고 합니다.
몸을 건강하게 하려면 ‘혀’를 괴롭혀야합니다.
혀를 만족시키다보면 건강을 잃습니다.  
 
피자나 햄버거나 치킨은 몸이 원하는 음식이 아니고 혀가 원하는 음식입니다. 
몸을 건강하게 하려면 또한 ‘게으름’과 싸워야합니다.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운동을 해야 건강해집니다. 
나와 싸워야 건강하여 타인도 도와줄 수 있습니다. 
나를 괴롭히지 않으면 타인을 괴롭히는 사람이 됩니다. 
 
영혼에도 ‘혀’가 있습니다. ‘자아’라고 합니다. ‘육체의 욕구’라고 합니다. 
영혼도 건강하고 싶다면 육체의 욕구와 반대되는 것을 먹어야합니다.  
 
영혼이 먹어야하는 것은 ‘말씀’입니다. 
그런데 말씀은 우리 몸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않고 더 배고프게 만듭니다. 
육체의 욕구와 거꾸로 가라는 것이 말씀의 요지입니다. 
나를 죽여야 이웃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이 말씀의 핵심입니다.  
 
그러니 말씀이 영혼을 건강하게 하고 영원한 부활을 약속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건강에 유익한 말씀을 찾는다면 자아를 괴롭히려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몸이 건강하기를 원한다면 육체가 괴로운 것을 선택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성경의 모든 내용이 내가 죽어야만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도 성경을 공부하면서도 자기를 괴롭히기를 원치 않는다면 오늘 복음의 부자의 결말을 맞게 될 것입니다.  
 
음식을 먹는 것이 다가 아닌 것처럼 말씀을 공부하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자기만족이 아니라 자기를 죽이려는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들여야합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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