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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9월 8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9-08 조회수 : 568

9월 8일 [연중 제23주일] 
 
지혜서 9,13-18
필레몬 9ㄴ-10.12-17
루카 14,25-33 
 
<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 
 
1940년 독일의 폴란드 침공과 더불어 유태인 학대를 피해 수많은 유태인들이 리투아니아로 몰려듭니다. 
구소련은 리투아니아내의 각국 대사, 영사관의 폐쇄 명령을 내리지만 마지막 일본 영사관만은 문을 닫지 않고, 피란민들은 마지막 희망을 일본영사관에 걸게 됩니다. 
 
주 리투아니아 일본 대사 스기하라 지우네는 일본외무성에 문서를 보내 유태인에 대한 비자발급을 허용해달라고 요청하지만 일본 외무성은 그의 3번이나 반복되는 요청을 묵살합니다.  
 
일본 외무성은 대외적으로는 유태인 난민에 대하여 중립적인 입장이라 표명하고 있지만 사실 독일과 협력관계였던 탓에 비자 발급 자격 조건을 다른 난민들에 비해 까다롭게 함으로써 사실상 유대인들에 대한 비자 발급을 제한한 것입니다. 
 
영사관을 둘러싼 수많은 유태인들을 보며 스기하라는 결국 결심을 하게 됩니다. 
물론 이 일이 불러올 파장과 다가올 파면, 불명예, 경제적 궁핍, 가족의 고통이 눈에 선하지만 수많은 생명을 살리는 일이 더 중요한 일이라 판단합니다. 
 
그는 자격조건을 크게 완화하여 무자격에 가까운 사람들마저도 비자를 발급합니다. 
물론 일본외무성의 허락 없이 발행하는 것으로 당연히 문서위조이나 그런 것쯤 상관하지 않습니다. 
겉으로 봐서는 위조라 할 만 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1940년 7월말부터 9월 초까지 매일 비자를 발급하였으며 막바지에는 거의 하루 300장 정도를 발급합니다. 
거의 한 달에 발행하는 분량을 하루에 발급했다 합니다. 
2000번대 이후로는 연번호도 적지 않습니다.  
 
영사관이 폐쇄될 때 까지 연번호가 지정되지 않은 비자까지 포함하여 수천 장 이상 발행되었으리라 보고, 비자 한 장으로 한 가족 전체의 입국이 허가됐던 것으로 보면 대략 6천명 이상의 유태인이 비자를 얻었으리라 예상됩니다. 
 
그는 영사관이 폐쇄된 날 리투아니아를 떠나기 위한 열차 안에서까지 비자를 발급합니다. 
이후 독일과 소련과의 전쟁이 발발해 리투아니아는 독일군의 수중으로 들어가며 이 기간 동안 리투아니아에서 희생된 유태인들은 20만 명이상입니다. 
 
리투아니아에서 탈출한 스기하라는 1941년 체코영사관서 근무하였으며 소련의 체코 점령 때 체포되어 수감생활 후 일본으로 송환됩니다.
이후 자국에서 1947년 외무성으로부터 면직됩니다.  
 
전쟁 후 이스라엘 측에서 일본외무성에게 요청한 그의 행방에 대하여 “‘스기하라’라는 외교관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답변한 사실로 미루어 괘씸죄가 적용되었으리라는 추측도 있습니다. 
 
이후 그는 1986년 7월 31일 영면에 들기까지 일본에서 전구를 팔면서 소박하게 여생을 보냈습니다. 
스기하라의 이야기가 알려졌을 때, 기자 한 사람이 그의 아들을 찾아가서 외교관으로서 출세의 길을 버린 아버지의 선택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했습니다. 
그러자 그 아들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저는 아버지가 성공한 인생을 사셨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저의 아버지를 필요로 하셨을 때 아버지는 옳은 일을 택했으니까요.” 스기하라는 동방정교회 신자로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참조: ‘생명의 비자: 양심의 법을 존중한 스기하라 지우네’, 아시아뉴스] 
 
하느님 나라는 소유욕을 버린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마치 층층계단식 논과 같아서 내가 받은 것을 흘려보내주지 않으면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이 목이 마르게 되어있습니다. 
세포가 각자가 가진 것을 옆의 세포에게 전달해주지 않으면 함께 죽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내어줄 줄 모르면 암세포가 됩니다. 
본인은 소유하며 살고 싶겠지만 결국 본인도 죽고 이웃도 죽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남에게 좋은 일을 해야 하는 줄은 누구나 다 압니다. 
그러나 그런 일을 함으로써 나에게 닥쳐올 가난과 고독, 멸시 등의 어려움이 두렵기 때문에 내어주지 못하게 됩니다. 
내어주는 만큼 생기는 결핍에 대한 불안함이 모아들이게만 하는 것입니다. 
내어주어 남을 살리는 사람이 되려면 먼저 결핍을 인내할 능력부터 키워야합니다. 
 
예수님처럼 내어주는 존재가 되기 위해 모든 상황에서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친구가 없어도 행복하고 친구가 있어도 행복하며 부유해도 행복하고 부족해도 행복할 줄 아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필요할 때 힘들이지 않고 내어줄 수 있습니다. 
내가 힘들면 아무 것도 내어주기 싫습니다.  
 
저도 처음 유학 가서 말을 배울 때 무척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소유욕이 엄청 증가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행복하지 않은 마음을 물건으로라도 채우고 싶어지기 때문입니다. 
 
인도와 아프리카 친구와 함께 같은 방을 썼는데, 그들 특유의 냄새는 참아내기 쉽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정말 네 것 내 것의 분별이 없었습니다.  
 
저의 것을 마구 가져다가 쓰고 마치 자신의 것처럼 계속 사용하였습니다. 
뭐 그런 것들이 없다고 특별히 불편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분별이 없는 그 친구들의 행동에 속이 상하였습니다.  
 
그래서 저의 물건을 찾아서 다시 가져온 적이 있습니다. 
그들보다 더 잘 산다는 것으로라도 만족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고 하십니다. 
미워하라는 말씀은 신경 쓰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신경 쓰지 않아야 내어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경 쓰지 않으려면 다른 아무 것도 필요한 것이 없이 지금 이 순간 행복할 수 있는 기술이 있어야합니다. 
 
전북 전주의 한 교회에서 “하느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이란 푯말을 붙인 상자를 만들고 신자들로 하여금 그 안에 그 같은 물품들을 넣게 했습니다. 
그러자 엄청난 내용물이 수집됐습니다.  
 
고급 양주에서부터 외설테이프, 추잡한 액세서리, 불량서적 등이 쌓였습니다. 
교회에서는 이것들을 매월 정기적으로 불에 태워버리고 각자 새 생활을 다짐하도록 했습니다.  
 
이것은 경건하고 건전한 가정생활의 전기를 마련했습니다. 
이 운동 덕분으로 교회가 크게 부흥했다고 합니다.
우리도 각자의 “하느님께서 싫어하시는 통”을 만들어야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잊게 만드는 통”도 만들어야합니다.  
 
내가 다른 행복에 빠져 하느님을 잊게 만드는 것들이 있다면 그것들도 내어주기 힘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통들에 내 것을 넣으면 죄가 사라지고 광야라는 곳에 머물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으시고 40일을 버티셨습니다. 
이 능력이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가난과 고독과 지루함, 겉보기는 고통스럽겠지만 친해지면 평화로워지고 있는 것들에 감사하게 됩니다. 적게 가질수록 가진 것에 더 감사하게 된다고 합니다. 
 
하루에 1시간이라도 기도하기 위해 성체 앞에서 밀려오는 지루함과 싸워봅시다. 
혹은 집에서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성경을 1시간만이라도 필사해봅시다. 
그러면 사람들과 왁자지껄 노는 것보다 평화로워진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야 시간이든, 재물이든 나누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딱 15가지의 물건만으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도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수천 가지의 물건을 쌓아놓고 삽니다. 없으면 불편할 것 같아서입니다. 
불편해도 괜찮을 수 있다면, 부족해도 괜찮을 수 있다면, 아무 오락거리가 없어도 괜찮을 수 있다면 참으로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자기를 죽일 수 있는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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