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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9월 7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9-07 조회수 : 590

9월 7일 [연중 제22주간 토요일] 
 
콜로새 1,21-23
루카 6,1-5 
 
< 작은 일탈이 용납될 수 있는 조건 > 
 
로마로 유학을 갔을 때 한국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힘들어하는 것은 공부가 아니라 언어였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워낙 머리가 좋기 때문에 언어만 되면 공부는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 
 
저는 방학 때 DVD를 빌려 자막을 띄워놓고 영화를 돌려보며 이태리 말을 익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TV 시청이나 영화를 보는 것에는 말을 배우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들리는 말만 들리고 안 들리는 말은 끝까지 안 들렸습니다. 
 
그래서 그런 방법보다는 읽고 쓰는 것에 주력했습니다.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모르는 단어들을 매일 외웠습니다. 
저녁이 되면 어설픈 실력으로 일기를 썼습니다.  
 
일기는 내가 말할 때를 위해 도움이 되었고, 읽기는 들을 때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니 조금은 빨리 이태리어에 익숙해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만화책만 주구장창 보는 신학생이 있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신학생이 성경을 읽어야지 만화책을 보느냐고 판단을 하였습니다. 
몇 년이 지나고 그 신학생이 저보다 말을 더 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적어도 일상에서는 말을 참 잘했습니다.  
 
첫 방학이 되었을 때 저는 신학적인 용어들은 많이 알고 있었으나 
일상에 필요한 말들은 잘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신학생은 처음부터도 아이들과 잘 대화가 통하는 것 같았습니다. 
말을 잘하니 공부도 잘했습니다. 
공부를 잘하니 스트레스가 적어서인지 영성생활도 참 잘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서 어떠한 목적을 위해서는 작은 일탈도 크게 나쁠 것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율법을 어기고 있었습니다. 
안식일에 일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안식일에 일을 하는 것도 큰 죄인데 남의 밀 이삭을 훔쳐 먹으니 
바리사이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율법을 어기는 제자들을 두둔하십니다. 
그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아들이 안식일의 주인이다.” 
 
더 중요한 것을 얻기 위해 작은 잘못을 하는 것은 용납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다윗과 그 일행이 배가 고팠을 때 사제들만 먹을 수 있는 제사 빵을 집어먹은 일을 그 예로 들었습니다. 
 
율법이 존재하는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내 안에 모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조금씩 바뀔 수도 있습니다. 
모세는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했지만 예수님은 그 율법을 바꾸셨습니다. 
 
제가 미사하면서 제대에 성혈을 흘린 적이 있습니다. 
성작을 건드려서 성작이 흔들려 그 안에 있던 성혈이 제대에 흐른 것입니다. 
당시 괴로울 일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부족한 것도 없고 세상에서 더 바랄 것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신자들과 미사를 하고 있던 중이니 주님과 이웃을 위해 좋은 일도 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제대 위에 흐른 성혈을 보며 모든 것이 무너졌습니다. 
 
‘내가 부주의해서 예수님의 성혈을 제대에 뿌렸구나!’
땅바닥이 아닌 것은 다행이었어도 주님의 성체성혈을 조심스럽게 간직하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이 밀려왔습니다. 
그리고 다른 모든 행복한 조건들은 더 이상 저에게 아무 위안도 주지 못했습니다.  
 
만약 지금 죽게 된다면 지금까지 지켜왔던 모든 것은 예수님의 살과 피를 소홀히 여긴 것에 대한 죄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의 주인이십니다. 
안식일은 하늘나라이고 행복입니다. 
행복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면 행복하고 그분을 잃으면 다른 무엇으로도 그 불행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는 것이 행복의 유일한 길로 여겨야합니다. 
 
오늘 복음의 바리사이들처럼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행복해지려 해서는 안 됩니다. 
제자들은 비록 율법을 어기는 것처럼 보였으나 예수님을 모시기 위해 허기를 채우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은 받아들이지 않은 채 율법만으로 하늘나라에 들어가려했습니다. 
 
물론 죄는 예수님을 몰아내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피해야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더 함께 하기 위한 것이라면 작은 일탈은 또한 정당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일주일을 주님 뜻대로 정말 열심히 살았다면 쉬는 날 하루쯤은 늦잠 자고 TV나 영화를 보며 게을러도 될 것입니다. 
모든 것이 예수님에게로만 맞추어져있으면 됩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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