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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8월 31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8-31 조회수 : 545

8월 31일 [연중 제21주간 토요일] 
 
테살로니카 1서 4,1-8 
마태오 25,1-13 
 
< 감사하는 사람이 성공한다 > 
 
‘니모를 찾아서’와 ‘토이 스토리’를 제작한 픽사(3D 애니메이션 업체)의 에드 캐트멀 회장은 픽사가 다른 회사에 인수되었을 때 직원을 해고해야만 하는 상황을 맞았습니다.  
 
상사가 그를 불러 다음 날 아침까지 해고해야 하는 두 사람의 이름을 가져오라고 명령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그는 상사의 사무실로 가서 말했습니다. 
 
“여기 두 사람 이름이 있습니다.”
그러곤 자기 이름과 다른 고위직의 이름을 댔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해고될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당신이 누군가를 해고하고 싶다면 나를 해고하세요.” 
 
이렇게 다른 사람보다 자기가 먼저 해고되기를 바랐던 인물은 그 회사의 회장이 되었습니다.
29세 때 와튼 스쿨 최연소 종신교수가 된 애덤 그랜트의 ‘Give and Take’에 소개된 이야기입니다.  
 
그는 베풀 줄만 아는 사람이 실패도 많이 하지만 최고의 자리에 있는 많은 이들이 또한 잘 베풀 줄 아는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베푸는 자가 더 성공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요즘 시대는 협업을 해야 하는 시대인데 베풀 줄 아는 사람들이 좋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맺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베풀지 않으면 혼자가 되고, 그래서 혼자 노력해서 성공하지 못하면 실패자가 되는 것입니다. 
더욱더 기분 좋게 베푸는 사람들이 성공하는 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장 실패의 인생을 사는 사람들도 너무 베푸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기쁘게 베푸는 이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두려움 때문에 베풉니다. 
종교의 신념 때문에, 혹은 다른 사람의 평가 때문에 베풉니다.  
 
두려움 때문에 베푸는 사람은 진정 베푸는 사람이 아닙니다. 
성공하는 베푸는 사람들은 기쁘게 베풉니다. 보답이 돌아오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그냥 베푸는 게 좋아서 베푸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오늘 땅에 한 탈렌트를 묻어둔 게으른 종은 하느님을 무서운 분으로 여겼습니다. 
 
“주인님, 저는 주인님께서 모진 분이시어서,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려운 나머지 물러가서 주인님의 탈렌트를 땅에 숨겨 두었습니다.” 
 
이 말은 다른 두 종들은 하느님을 무섭게 여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한 탈렌트는 6천 데나리온, 그러니까 하루 품삯을 10만원이라고 한다면 6억 원 정도 됩니다.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다른 종들에겐 더 주는 것 같으니 하느님을 미워하게 된 것입니다. 
미워한 결과는 하느님을 위해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주인의 돈을 잃게 될까봐 두려웠다는 핑계로.
하지만 나머지 두 종들은 주인의 돈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것쯤 잃어도 주인은 야단치지 않을 것을 아니까 맘대로 장사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두려움은 창의력을 갉아먹습니다.
감사하는 종들은 베풀 줄 아는 종들입니다. 
장사를 하다 잃어도 주인이 크게 노하지 않을 것을 압니다. 
하느님을 무한히 자비하신 분으로 보는 이들입니다.  
 
그러나 게으르고 못된 종은 하느님을 무자비한 분으로 보기 때문에 자신도 무자비한 사람이 됩니다. 
그 돈을 잃지 않으려고 땅에 묻어둡니다. 
혹 장사를 하다 잃으면 주인에게 혼날까봐 그런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절대 자비로울 수 없고 절대 성공하지 못합니다.
이 세상에서도 많은 업적을 내는 사람들은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까짓거 다 잃어도 아무도 나에게 뭐라 할 사람이 없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이순신 장군 같은 경우는 배 열 두 척을 가지고 3백 척과 맞서 싸우러 나가는 것입니다. 
 
다 잃어도 됩니다. 
어차피 하느님이 나의 아버지이십니다. 
아버지는 자녀가 밖에서 돈을 다 쓰고 들어와도 나무라지 않습니다. 
그것이 자녀에게 좋은 경험이 되는 줄 알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두려워하니까 잃는 것이 두려워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무자비하게 보는 이유는 자신이 무자비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분들은 하느님도 무섭고 이웃도 무섭기 때문에 경직된 삶을 살게 됩니다. 
정글 속에서 두려운 마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살아남아야하기 때문에 무언가를 남에게 줄 여유가 없습니다. 
그렇게 홀로 남겨져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이 됩니다. 
실패가 두려워 시도도 못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느님께 덜 받았다는 불평불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반면 현명하고 착한 종들은 하느님께서 주신 것에 감사해합니다. 
감사가 하느님께서 자비로운 분이심을 믿는 증거입니다. 
감사해야 가진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여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려고 노력합니다. 
 
종은 딱 두 부류로 나뉩니다. 
감사하는 종과 그렇지 못한 종입니다. 
재능을 진정으로 발휘하고 싶거든 항상 감사하는 사람이 되면 됩니다. 
그러면 재능을 땅에 묻어놓는 종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감사한 사람만이 진정으로 기쁘게 자비로울 수 있고 자신의 능력을 백분 발휘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성공합니다. 
자비롭기 때문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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