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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8월 29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8-29 조회수 : 606

8월 29일 [성 요한 세례자 수난 기념일] 
 
테살로니카 1서 2,9-13 
마르코 6,17-29 
 
< ​내가 어느 장단에 춤추고 있는지 아는 방법 >
 
경아는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반에서 1등을 놓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1학년 학기말 시험을 앞두고 난데없이 머리가 쪼개질 듯 아프다는 것이었습니다. 
엄마는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경아야, 좀 쉬었다 해봐. 이번 시험 망치면 그동안 애써 쌓아왔던 게 말짱 물거품이 되잖아.” 시험을 보고 온 경아에게 엄마는 “시험은?”이라고 물었습니다. 
 
“엄마, 시험이 나보다 더 중요해? 나 지금도 머리가 쪼개지는 것 같아. 
시험 그냥 백지 내고 왔어.” 
 
엄마는 10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것 같아 그 자리에 주저앉았습니다. 
정밀검진을 했을 때 경아는 중증 우울증으로 나왔습니다. 
자살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니 조심하라는 소견이 나왔습니다. 
 
경아는 방에 틀어박혀 이어폰을 끼고 하루 종일 핸드폰만 했습니다. 
엄마가 말을 걸라치면 죽어버리겠다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엄마도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왓칭의 저자 김상운씨는 이 어머니에게 무조건 아이의 감정에 동의해주고 미안하다, 고맙다, 
용서해 달라는 말만 하고 절대 비난조의 말을 하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엄마는 처음엔 어색했지만 경아보다 공부만 강조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했습니다. 
아이는 엄마의 잡은 손을 뿌리치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냥 평소처럼 해. 이상해.”
엄마는 자신의 처지가 비참하기도 해서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꾹 참았습니다. 
그랬더니 눈물이 주르르 흘렀습니다. 
 
“그래. 경아야. 네 말이 맞아. 엄만 맨날 너를 들볶기만 했어. 
말 한마디 따뜻하게 못했어. 늘 공부하라고만 강요했어.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엄마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경아는 쌀쌀한 말투로 또박또박 말했습니다.
“미안한 짓을 왜 했어? 내가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꼭두각시 노릇 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 
내가 얼마나 힘들고 괴로운지 물어본 적이나 있어?  
 
중학교 1학년 때 기억해? 내가 독감에 걸려 초죽음이 다 됐는데, 엄마는 날 새벽 1시까지 못 자게 했어. 어떻게든 이번 시험에선 1등을 해야 한다며. 그러면서 엄마도 안 마시는 커피까지 마시라고 했지.  
 
1등 하는 게 그렇게 중요해? 
딸의 건강보다 성적이 더 중요하냐고. 
딸의 건강은 망가져도 시험은 망치면 안 되는 거야?” 
 
엄마가 경아의 손을 다시 잡으려했지만 경아는 엄마의 눈을 노려보며 손을 뿌리쳤습니다. 
엄마의 눈에서는 눈물이 주체 없이 흘러내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경아의 손을 잡았습니다.  
 
경아는 이번엔 그대로 있었습니다. 
경아의 눈에도 눈물이 맺혔습니다.
“미안하다. 경아야. 내가 너를 자동차처럼 몰고 다녔어. 
세상에 기댈 사람은 엄마뿐이었는데. 엄마가 참 미련하고 못됐었어. 
미안하다, 용서해줘. 경아야.” 
 
“엄마, 나도 미안해. 다 나 잘 되게 하려고 그랬던 거 나도 알아.”
엄마는 귀를 의심했습니다. 
딸이 처음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한 것입니다. 
엄마는 그 이후로 딸의 감정에 장단을 맞춰줄 뿐 자신의 감정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얼마 후 딸은 우울증에서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어느 날 경아는 엄마의 손을 잡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엄마, 고마워. 다시 옛날 엄마로 돌아간 것 같아서.”
자신의 욕심이 딸을 망치게 했다는 것을 깨달은 엄마는 또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출처: ‘리듬: 상대의 부정적 생각 싹 날려버리기’, 김상운, 정신세계사] 
 
우리는 상대를 위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상대를 죽이며 살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헤로데도 그랬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 같고 위해주는 것 같았지만 결국 요한의 목을 베게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그의 안에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헤로디아의 사랑을 잃을까봐 두려웠고, 그의 딸인 살로메의 사랑을 잃을까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 두려움이 결국 요한보다는 헤로디아를 택하게 하였습니다.
경아의 엄마도 두려웠습니다. 
무엇이 두려웠을까요? 
자신의 딸이 공부 못한다는 말을 듣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물론 실제로는 그런 딸을 두었다는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사람은 두려워하지만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이용합니다. 
심지어 죽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다 널 위해서 그러는 거야!’란 생각으로 자신까지 속여 버립니다.  
 
경아 엄마가 사람들의 시선이 두렵지 않았다면 딸을 그렇게 자살 직전까지 몰고 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사람은 딱 두 장단에 춤을 춥니다.  
 
하나는 자아의 장단이고 하나는 하느님의 장단입니다. 
문제는 자아의 장단에 춤을 추면서도 하느님의 뜻을 따른다고 착각하는 것에 있습니다. 
실제로는 이용하고 죽이고 있는데 그것이 사랑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사랑하는 사람들을 죽이지 않기 위해 어느 장단에 춤을 추고 있는지 자신을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자아의 장단에 춤을 추고 있다면 반드시 지금 ‘두려운 것’이 있게 마련입니다.  
 
뱀은 하와에게 선악과를 따먹지 않으면 무언가 잘못될 것처럼 부추겼습니다. 
그 두려움이 선악과를 따먹게 만든 것입니다. 
 
자아의 장단에 따르는 사람들은 그래서 
‘우리 아이가 공부 못한다는 소리를 들이면 어떡하지?’, 
‘내가 중학교밖에 안 나온 걸 성당 사람들이 알면 어떡하지?’, 
‘남편과의 사이가 안 좋은 걸 친구들이 알면 어떡하지?’ 등의 걱정을 합니다.  
 
이 두려움이 ‘아이가 공부를 더 잘하면 행복할거야.’, 
‘내가 똑똑하게 보이면 행복할거야.’,
‘우리 부부가 다정한 모습으로 미사에 나가는 걸 보면 다들 부러워하겠지?’ 
등의 생각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나의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가까운 사람들을 이용하고 결국 죽게 만듭니다.
하느님의 장단에 춤을 추며 살아가는 이들은 ‘이미’ 행복합니다. 
그래서 늘 감사합니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만약 하와가 감사하고 행복했다면 뱀의 꾐에 넘어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신의 죄책감을 없애기 위해 아담까지 이용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어느 정도씩 사람을 이용하고 죽이거나, 혹은 살리거나 하면서 살아갑니다. 
사람을 죽이는 사람은 지금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고, 사람을 살리는 사람은 지금 있는 것으로 감사한 사람입니다.  
 
아무 것도 바랄 것 없이 그저 주님 때문에 충분히 행복한 사람입니다. 
내가 행복해지려고 무엇을 더 원하게 된다면 그것 때문에 다른 사람이 피해를 입게 됩니다.
나는 생명을 주려다 목이 잘리면서도 감사한 요한의 삶을 살고 싶은가요, 아니면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다른 사람을 이용하거나 생명을 희생시키는 삶을 살고 싶은가요?  
 
생명을 주는 사람이 되기 위해 아무 것도 바라는 것 없이 항상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는 능력부터 먼저 키워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 행복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다 갖추었습니다. 
주님께서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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