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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8월 23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8-23 조회수 : 557
8월 23일 [제20주간 금요일] 
 
롯기 1,1.3-6.14ㄴ-16.22
마태오 22,34-40 
 
<​ 사랑의 계명은 인생의 정북향 > 

2010년 한 여성이 치명적인 자동차 사고를 당해 식물인간이 되었습니다. 
당시 임신 4개월 때였습니다. 
다행히 태아는 건강한 상태였습니다.
이후 그녀는 제왕절개 시술이 가능해질 때까지 5개월간 집에서 남편의 보살핌 속에 누워 있었고, 9개월이 되자 병원으로 옮겨져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산모는 상태가 더 안 좋아졌습니다. 
의사들은 산모는 회복하기 어려우니 준비를 하라고 말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를 지키던 가족들도 다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끝까지 그녀를 지키는 이가 한 명 있었습니다. 
바로 그의 아들이었습니다.  
 
아기는 엄마의 머리맡에 앉아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서툰 말투로 대화도 건네며 단 한 번도 칭얼대지 않았다고 합니다.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는데 이도 제대로 나지 않은 아기가 엄마의 병원음식을 씹어 자신의 입으로 엄마의 입에 넣어주기 시작한 것입니다.  
 
마치 어미 새가 새끼에게 먹이를 먹여주는 것처럼 행동하던 2013년 5월, 아기가 작은 소리로 엄마를 부를 때 엄마가 눈을 떴습니다. 
 
중국 장롱샹 씨의 기적 같은 이야기는 영국의 일간지 ‘데일리 메일’에 기사화 되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인터뷰에서 엄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그때서야 3년의 세월이 지났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제 머리맡에서 미소 짓는 아기가 제 아들이라는 사실도 그제야 알게 됐고요.”
의사들은 의아해했습니다.  
 
혼수상태에 빠진 엄마는 음식을 겨우 삼킬 수만 있었고 씹지 않은 것들은 소화를 시키지 못했습니다. 
아기가 어떻게 이것을 알고 음식을 씹어 엄마의 입속에 넣어주었을까요?
[출처: ‘왓칭 2: 시야를 무한히 넓히려면’, 김상운, 정신세계사] 
 
바다에서 길을 잃고 방향을 모를 때는 정북향에 있는 북극성을 찾는다고 합니다. 
북극성만 놓치지 않으면 한 방향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고 결국엔 육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쪽일 거야, 저쪽일 거야’를 생각하다보면 바다 한가운데서 빙빙 돌다 좌초하기 십상입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란 책으로 유명한 ‘스티븐 코비’ 박사는 강연을 할 때 사람들의 눈을 감아보라고 한 다음 각자가 생각하는 정북향을 손을 들어 가리켜보라고 합니다. 
그리고 눈을 뜨면 웃음바다가 됩니다.  
 
각자 다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번에는 서로 협의를 해서 한 방향을 정하라고 합니다. 
다수결로 한 방향을 정했을 때 코비 박사는 주머니에서 나침반을 꺼내 올바른 방향이 어느 쪽인지 일러줍니다.  
 
그러면 청중은 또 웃습니다. 
정북향은 다수결로 정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나침반이 필요할까요? 
그냥 흐르는 대로 살아가면 되지 않을까요?  
 
어떤 사람은 이렇게 인생을 회고합니다. 
“저는 현 직장에서 목표를 정했고 결국에는 달성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종사하고 있는 전문분야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그 대가로 개인적인 삶과 가정생활을 희생해야 했습니다.  
 
나는 아내와 자녀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합니다.
심지어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조차 알지 못하며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이제 나는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합니다. 
도대체 직장에서의 출세가 그만한 가치가 있었던 것인가를.” 이것이 존재의 이유를 찾지 못한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맞게 될 운명일 것입니다.  
 
존재의 이유는 존재하고 있는 사람들이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존재하게 해 준 이가 정하는 것입니다. 
스마트폰이 스스로 자신의 존재이유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을 만들어준 사람이 정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정한대로 살아야 망가지지 않습니다.
모든 만들기 어려운 것은 다 만들어진 것입니다. 
만들어진 것에는 항상 그 만든 이가 존재합니다. 
집도 만든 이가 있고 스마트폰도 그렇고 더 만들기 어려운 모든 동물과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인간을 만드신 분이 사람이 되셔서 인간을 만드신 이유가 바로 ‘사랑’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미워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용서하고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해 주는 것이 먼저가 되어야지 돈 벌러 나가거나 공부하러 학교에 가는 것이 우선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큰 성공을 했어도 미운 마음이 있다면 결국 실패한 인생입니다. 
방향 먼저 잘 잡아놓고 다음에 다른 일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헛수고만 하다가 인생을 허비합니다. 
 
장롱샹 씨의 아기는 어떻게 이 ‘사랑’의 진리를 알았던 것일까요? 
아마 우리 안에 사랑해야 한다는 진리가 넣어져있는 것 같습니다. 
어린이 때는 잡다한 생각으로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아서 존재의 이유가 보이는데, 
자라면서 세상이 그 진리를 보는 눈을 가리는 것 같습니다.  
 
사랑보단 경쟁을 택하는 것입니다. 
이런 어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후회하지 말라고 또 이렇게 정북향을 말씀해 주십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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