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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8월 21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8-21 조회수 : 464

8월 21일 [연중 제20주간 수요일] 
 
판관기 9,6-15
마태오 20,1-16 
 
<​ 첫째가 꼴찌 되는 이유 >
 
입으로 그림을 그리는 김준호씨의 자서전에 있는 내용입니다. 
그는 대학 2학년 때 기술병으로 군대 입대했습니다. 
그런데 커다란 불행이 그에게 덮쳐오게 되었습니다. 
 
탱크 위에서 작업을 하다가 그만 미끄러져서 거꾸로 땅에 떨어져 목을 다치게 된 것입니다.
그 때문에 그는 전신마비가 되었습니다. 
손발을 조금도 움직일 수 없는 그는 식사는 물론 일거수일투족을 남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는 부산 육군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다시 육군통합병원에 가서 치료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희망이라고는 조금도 찾아 볼 수 없게 되자 결국 원호병원으로 이송되었습니다. 
 
한참 활동할 20대의 젊은 나이에 그는 몸밖에 움직일 수 없는 처절한 상황 속에서 매일을 절망과 슬픔으로 지내야 했습니다. 
또한 너무 오래 누워 있어야 했기에 엉덩이와 어깨 죽지 부분이 썩어 들어가는 욕창으로 피부 이식 수술까지 받아야했습니다.


목 아래부터 발가락 끝까지 전혀 감각이 없었기 때문에 마취하지 않아도 아무런 아픔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아침부터 캄캄한 저녁을 맞기까지 오직 천장만 쳐다보면서 자신을 저주하고 자살할 생각만 했습니다. 
그러나 손 발 하나 움직일 수 없는 그였기에 자살도 불가능했습니다. 
자살조차 할 수 없는 신세, 그는 늘 이런 자학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휠체어를 탄 여 전도사 두 분이 찾아와 예수님을 믿기를 권했습니다. 
그들의 눈물어린 기도로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모셔 들였습니다. 
그리고 입에 젓가락을 물고 책장을 넘기며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러자 칠흑처럼 어두운 그의 마음속에 형언할 수 없는 평안의 빛 생명의 빛이 비춰오기 시작했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희열이 솟아올랐습니다.
그때부터 그의 부정적인 마음이 긍정적인 마음으로 바뀌고 탄식과 눈물이 기쁨과 웃음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행복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곧 그는 원호병원에서 아리따운 간호 실습생 아가씨를 만나 사랑하게 되었고 부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입에 붓을 물고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입에 붓을 물고 그림을 그리자니 입술이 부르터서 몇 번이나 좌절하고 포기하려 했지만 아내의 격려와 설득으로 그는 다시 붓을 물게 되었고 조금씩 남들이 감탄할 수밖에 없는 예술의 경지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그린 동양화와 서예 수십 점을 모아 그는 세종문화회관에서 전시회를 열어서 모든 사람들에게 충격적인 감동을 안겨 주었습니다.
[참조: ‘구필화가 김준호씨’, 꿈을 짜는 세례, 다음 블로그]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혜는 같은 성령님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 은혜에 감사하고 또 어떤 사람은 불평합니다. 
이 감사의 정도가 하늘나라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게 만드는지를 결정합니다.  
 
우리는 하늘나라에서 꼴찌가 아니라 첫째가 되도록 감사의 마음을 최고조로 끌어올릴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는 자기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들을 사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밭 임자와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늘나라’는 주인이 일꾼들에게 일자리를 주는 포도밭이 아니라 그 포도밭으로 일꾼들을 불러드리는 ‘포도밭 주인’입니다. 
포도밭 주인은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이 곧 하늘나라인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행복입니다. 
행복은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입니다. 
비가 새는 집에 새우잠을 자도 사랑하는 임과 함께 있으면 그 곳이 천국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늘나라는 하느님과의 관계입니다.
아무리 최고급 호텔에서 식사를 한다고 해도 같이 먹는 사람이 미운 사람이거나 두려운 사람이면 그 자리는 행복한 곳이 못 됩니다.
천국은 하느님과 함께 있는 것이 행복한 이들이 사는 곳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과의 친밀도는 어떻게 측정이 될까요? 
‘감사의 정도’로 측정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일찍 와서 일한 사람들은 감사의 마음이 없습니다. 
한 시간 일 한 사람에게 한 데나리온을 주었으니 아홉 시간 일한 자신들에겐 더 주겠거니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한 데나리온 받기로 약속했지만 다른 이들에 비해 주인에게 더 해 주었다고 믿는 것입니다. 
이 교만함이 감사한 마음이 생기지 않게 하고 결국 하늘나라에 들어가더라도 꼴찌가 되게 합니다. 
 
반면 한 시간 일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보다 한 것이 없는데 아홉 시간 일한 사람만큼의 돈을 받으니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포도밭 주인과의 관계가 좋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며 첫째와 꼴찌는 주님의 은혜에 얼마나 감사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을 알려주고 계십니다. 
 
어떤 사람은 같은 성체를 영하면서도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고 다만 감사한 마음뿐인가 하면, 어떤 사람은 성체를 영하면서도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듯 다른 무언가를 청합니다. 
자신은 그것 이상으로 이 세상 것도 더 받아야하는 사람이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그 사람은 하늘나라와 멀리 있게 됩니다. 
 
포도밭 주인이 주는 한 데나리온은 그 포도밭 주인만 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만으로 무한 감사를 드릴 필요가 있습니다.  
 
한 데나리온은 예수님의 살과 피입니다.
하느님은 아드님을 내어주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힘으로 이웃을 사랑하라는 일을 시키십니다. 
 
이런 은총으로 불러주신 하느님께 모든 것을 다 잃어도 감사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이 하늘나라에서 첫째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주시는 것에 대해 너무 감사해서 아무 것도 청할 수 없는 상태, 다만 찬미만 올릴 수 있는 마음, 그 마음으로 나아가야겠습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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