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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8월 18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8-18 조회수 : 617

8월 18일 [연중 제20주일] 
 
예레미야 38,4-6.8-10
히브리 12,1-4
루카 12,49-53 
 
<​ 성령의 불 옮겨 붙이는 법 > 
 
한 사람이 7개월 동안 700명을 입교시킨 분이 계십니다. 
1998년 공덕동 본당 신자인 채충석씨는 이 공로로 서울 대교구장으로부터 선교 대상을 받았습니다. 
 
선교왕이 된 이후에도 그는 꾸준히 선교하여 10여 년 동안 무려 3000여명 이상을 입교시켰다고 합니다.
이분은 선교를 하다가 거절을 당하더라도 좋지 않은 기분으로 헤어져서는 안 된다고 하십니다.  
 
인디언이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는 것처럼, 대상자가 입교할 때까지 꾸준히 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분의 말씀대로 선교하면 이런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개신교의 한 할머니의 이야기이지만 가톨릭 식으로 바꾸어보겠습니다. 
 
한 성당의 전교 왕 할머니가 계셨습니다. 
그분은 1년에 백 명도 선교한 적도 있습니다. 
어느 지방 도시에 규모가 큰 성당이 있는데, 그 성당에서 1년에 100명을 전도한 연세 많으신 할머니의 선교 이야기입니다. 
 
할머니는 선교를 계획하면 일단 마을을 돌아다니시면서 선교 대상자를 먼저 찾습니다.
찾으면 그를 위하여 오랫동안 기도를 합니다. 
때로는 단식기도도 합니다. 
그리고 그 가정으로 선교하러 가십니다. 
 
한번은 선교 대상자를 결정하여 놓고 오랜 시간을 기도한 후 그 가정을 찾아갔습니다.
“계십니까? 저는 00 성당에서 왔습니다. 예수님 믿고 천국 갑시다.”
할머니의 선교 내용은 간단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집주인의 대답도 간단하였습니다.
“우리는 성당에 안가요!”
그때 할머니는 아주 평온하게 그리고 따뜻하게 “아! 그래요. 안녕히 계십시오.” 하고 돌아왔습니다.
한 주간 뒤에 그 집을 다시 방문하였습니다.
“계십니까? 예수님 믿고 천국 갑시다.”
그 집주인은 첫 번째보다 약간 언성이 높았습니다. 
 
“성당 안 간다는데 왜 왔어?” 
 
그때도 할머니는 아주 기쁘게 “아! 그래요. 안녕히 계십시오.”  하고 깊은 절을 하면서 물러나왔습니다. 
할머니는 계속해서 열심히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주일 다시 방문하였습니다. 
 
“계십니까? 예수님 믿고 천국 갑시다." 
 
그때 안에서 주인이 나오더니 “저 할마시(할머니의 경상도 사투리로 약간 하대해서 하는 말) 성당 안 간다는데 왜 또 왔어.” 
하면서 이번에는 할머님의 얼굴에 침을 뱉었습니다. 
 
그때 할머니는 아주 기쁜 얼굴로 “아! 그래요” 하면서 친절히 절을 하고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면서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면서 생각하니 할머니는 너무 기뻤습니다. 
예수님도 얼굴에 침 뱉음을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할머니는 계속해서 열심히 기도하고 그 다음 주일 네 번째 그 집을 또 방문하였습니다.
“계십니까? 예수님 믿고 천국 갑시다.” 
 
그 때 그 집주인은 침을 뱉어도 찾아오는 그 할머니에게 “지난 번 일이 죄송해서 나 오늘 한 번만 성당에 가 줄 테니 다시는 오지 마시오.”
“아 그러지요.” 
 
할머니는 이미 기도를 많이 해 둔 상태라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그날 그 사람은 신부님의 강론에 크게 감동을 받아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또 동료들에게 선교하여 많은 사람들을 구원으로 인도하였습니다. 
 
선교 왕들은 왜 그렇게 선교에 매달리는 것일까요? 
억지로 하라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분명 마음 안에 어떤 열정이 타올랐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열정은 성령께서 불러일으키십니다. 
성령을 받으면 그 뜨거움으로 스스로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라고 말씀하시며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라고도 말씀하십니다. 
억지로 분열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불이 분열이 일어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분열은 사람들과 일어나기 이전에 자기 자신 안에서 일어납니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 싸움이 성령께서 들어오셨다는 증거입니다. 
 
예수님께서 붙이시려는 불은 싸우지 않으면 평화로워지지 않는 마음입니다. 
만약 방 안에 뱀이 들어왔다면 그것을 잡지 않고서는 평화로울 수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는 우리 안을 밝히시어 자아의 실체를 보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자아와 싸우지 않으면 절대 평화를 갖지 못하게 만드십니다.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죄에 맞서 싸우면서 아직 피를 흘리며 죽는 데까지 이르지는 않았습니다.” 
 
죄에 맞서 피 흘리며 죽기까지 싸우고 있다면 그것은 분명 그 안에 성령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성령의 불은 나의 피를 통해 이웃에게 옮아 붙습니다. 
위 예에서 할머니는 당신이 침을 뱉어도 기쁠 때까지 선교하였습니다. 
침뱉음을 당하는데도 아무렇지도 않다면 죽은 것이 분명합니다. 
그 죽으면 나오는 피가 선교하는 것입니다. 이웃의 가슴에도 불을 붙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 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의 불을 붙이셨듯이 그 불이 나를 죽여 흐르는 피가 이웃에게 불을 옮겨지게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아말렉군과 싸우고 있었습니다. 
모세가 산에서 양 팔로 지팡이를 머리 위로 들고 있으면 이스라엘이 이겼고 힘이 들어 아래로 쳐지면 아말렉군이 이겼습니다. 
그래서 모세의 양 옆에서 아론과 후르가 양 팔을 받쳐주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이 승리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양 팔을 십자가에 높이 들고 계십니다. 
거기서 흘러내리는 성령이 우리에게 옵니다. 
그 성령의 힘은 싸우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양 팔을 높이 들고 계신데도 싸우지 않는다면 이스라엘 백성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우리 자신이고 모세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싸우라고 십자가에 달려 계신 것입니다. 
 
자기 자신과 싸우고 있습니까? 그러면 성령께서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영혼 구원을 위해 내가 죽어도 상관없습니까? 그러면 성령의 불이 타는 중입니다.  
 
성령의 불을 끄지 맙시다. 
그러면 내가 침 뱉음을 당하여도 기쁘고 그러면 그 침 뱉은 사람에게도 성령의 불이 옮아 붙습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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