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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8월 16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8-16 조회수 : 548

8월 16일 [연중 제19주간 금요일] 
 
여호수아 24,1-13
마태오 19,3-12 
 
< ​겸손과 교만이 주는 시각 차이 > 

한 본당의 청년회장이 본당의 청소년 분과장님과 술자리에서 결혼에 대해 대화하고 있었습니다. 
분과장이 말했습니다. 
 
“청년회장아, 이제 장가갈 나이가 됐는데, 내가 소개시켜 줄 테니까 이상형인 어떤지 말해봐.”
“예, 뭐 얼굴은 귀여우면 좋고요, 몸매도 괜찮았으면 좋겠어요. 요리도 좀 잘 했으면 좋겠고요, 
착하지만 애교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분과장이 잠시 침묵하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럼 넌 평생 결혼 못 하겠다. 
그런 여자가 딱 한 명 있었는데 이미 결혼해버렸거든.”
“그게 누군데요?”
“내 아내지!”
“근데 분과장님 사모님은 뭐 그렇게 ... 아!!!” 
 
그 청년은 그 순간 결혼관이 바뀌었습니다.
내가 교만해지면 상대가 아무리 완벽해도 그 사람에게서 나의 배우자가 되기에 합당하지 못한 것들을 찾아냅니다.  
 
그러나 내가 겸손하면 나와 결혼해 준 것에 감사해서 배우자의 모든 단점들도 아름다워 보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부부관계의 잘못되어가는 원인을 나 자신에게서 찾아야합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내가 아니라 상대에게서 찾으려고 하다 보니 상대에게 원망하고, 결국엔 ‘안 되면 바꾸지 뭐’라는 식이 되어버립니다.
이런 시각을 지닌 바리사이들이 오늘 예수님을 찾아와 결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들은 “무엇이든지 이유만 있으면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라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안 된다고 선을 그으십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다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버려라.’ 하고 명령하였습니까?”라고 되묻습니다. 
모세가 준 율법이 곧 하느님께서 정해주신 선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모세는 너희의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너희가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하였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불륜을 저지른 경우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혼인하는 자는 간음하는 것이다.”
라고 하십니다. 
 
모세가 이렇게 그들의 수준에 맞게 법을 맞춰서 준 이유는 더 높은 수준의 법을 줘봐야 반발심만 생기고 실천하지 않을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기가 젖을 너무 먹고 싶지만 더 먹으면 안 될 때 부모는 공갈젖꼭지를 물려줍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젖도 안 나오는 그것을 빨면서 어느 정도의 만족을 얻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의 법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수준이었을 때 모세가 준 법이 그것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불륜을 저지르는 것 외에는 절대 이혼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을 처음부터 남자와 여자로 만드신 이유는 둘이 결합하여 하나가 되는 
사랑의 신비를 체험하게 하시려는 의도였습니다.  
 
부부는 성부와 성자께서 성령을 통하여 한 몸이 되는 신비를 보여줍니다. 
부부의 결합은 그만큼 신성합니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상대에 대한 원망이 쌓여갑니다.  
 
아담과 하와도 그랬습니다. 서로의 탓을 했습니다. 
그 이유는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상대 때문이 아니라 죄를 지었기 때문에 눈이 멀어버린 것입니다.  
 
부부사이가 안 좋아지는 이유는 상대 때문이 아니라 죄를 지어 교만한 눈으로 상대를 바라보게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교만으로 잃은 눈을 다시 회복시켜 주시기 위함이셨습니다. 
그래서 태생 소경에게 눈을 다시 만들어주시고 실로암에서 씻고 새롭게 보게 해 주셨습니다. 
실로암으로 가는 동안 태생소경이 버린 것은 자존심입니다.  
 
자기 자신의 교만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마음 안의 교만을 없애주시고 당신의 눈으로 보게 하시면 
모든 사람이 사랑스럽게 보입니다.  
 
사랑하는 척이 아니라 사랑스런 눈으로 보기 때문에 자신의 아내가 세상에서 정말로 제일 사랑스러워 보일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예쁜 연예인은 여러 명의 정말 대단한 남성들과 결혼하고 헤어진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연세가 드신 이후 “나와 함께 산 사람 중에 대단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라고 말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참으로 대단한 사람들과 살았는데도 그분의 눈에는 차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자신의 눈을 먼저 바꾸려해야지 
‘내가 왜 저런 사람과 결혼했을까?’라고만 생각하면 바리사이일 수 있습니다.  
 
나의 배우자가 사랑스럽게 보이지 않는다면 더 나은 사람을 찾기 보다는 자신의 마음부터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갖는다면 그렇게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보면 주님께서 맺어주신 배우자만큼 완벽한 사람을 볼 수 없을 것 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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