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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8월 10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8-10 조회수 : 605

8월 10일 [성 라우렌시오 부제 축일] 
 
코린토 2서 9,6ㄴ-10
요한 12,24-26 
 
< 가장 마지막에 남는 것 > 
 
영화 ‘붉은 가족’(2012)은 행복하게 위장한 겉모습과는 달리, 위험한 비밀 활동으로 하루하루 죽음의 공포 속에 살아가는 고정간첩 가족 ‘진달래’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입니다. 
 
이 간첩 가족은 돈 타령이나 하며 서로 싸우기 바쁜 옆집 가족을 보며 자본주의 사회의 병폐를 비판합니다. 
옆집 가족은 화목하고 단란해 보이는 위장 간첩 가족을 동경합니다. 
 
콩가루 집안이지만 가족이라는 믿음을 지니고 살아가는 남한 가족과, 겉으로는 단란한 가족이지만 계급으로 무장된 지령에 의해 조직된 간첩 가족과 우리는 
어느 가족을 희망해야 할까요? 
 
결론적으로 고정간첩 진달래 가족은 위계질서가 아닌 피로 맺어진 옆집 가족을 동경하게 됩니다. 
북조선의 명령으로 맺어진 가족은 그만큼 결속력이 부족했던 것입니다. 
진달래 가족은 당의 지령을 따르는 만족도가 콩가루 집안의 만족도보다 떨어진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내가 뜻하지도 않게 태어나면서 가족이라는 공동체에 속하게 됩니다. 
내가 정한 것이 아니고 하느님이 정하신 것입니다. 
부모님도 나와 같은 아이를 낳으려는 의도는 없으셨습니다.  
 
하느님이 정하신 공동체가 가족인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공동체는 그 공동체의 결속을 주는 계명들이 존재합니다.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고 자녀는 부모를 사랑해야합니다.  
 
이것도 하나의 계명입니다. 
이 계명은 그 공동체를 만들어주신 하느님의 뜻입니다. 
공동체와 그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는 계명은 하나입니다. 
그래서 아이가 부모에게 대든다든가 부모가 자녀를 키우는 것을 포기한다면 그 공동체는 결속력을 잃게 됩니다.  
 
그러면 가족에게서 오는 행복도 잃습니다.
인간의 삶은 어떤 사람이나 공동체에 속하기 위한 목적이 강합니다. 
학교에 속하고 직장, 새로운 사람과 만드는 가족에 속하기 위해 삶을 살아갑니다. 
결국 그 속하기 위한 준비를 잘 해 왔다면 그 공동체에 속할 수 있습니다.  
 
서울대 공동체에 속하고 싶은데 놀기만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인간이 그러다 죽으면 어떻게 될까요? 
하느님 나라의 공동체에 속하지 못하게 되면 다 지옥으로 떨어집니다. 
지옥에 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지옥의 계명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가족이 되기 위해 끝까지 포기해서는 안 되는 계명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기쁘게 내어주라”는 계명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하십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가 가난한 이들에게 아낌없이 내주니 그의 의로움이 영원히 존속하리라”고도 말합니다.
의로움이란 어떠한 공동체에 속할 자격을 말합니다. 
빚을 떼어먹은 사람은 의롭지 못하여 그 돈을 빌려준 가족 공동체에 속할 수 없게 됩니다.  
 
하느님 나라에 속하기 위해 가져야 하는 의로움은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셨듯이 우리도 이웃에게 기쁘게 내어주는 계명입니다.
죽음에 이른 사람은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습니다.  
 
그래도 주님께서 “너는 무엇을 가지고 있니?”라고 물을 때 우리는 무엇이라 대답해야할까요? 
그냥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다고 솔직하게 말해야할까요?  
 
아닙니다. 
우리는 반드시 “저는 기쁘게 내어주고 싶은 마음을 가졌습니다.”라고 말해야합니다. 
주님 앞에 빈손으로 나아가서는 안 됩니다.
오늘은 성 라우렌시오 부제 축일입니다. 
라우렌시오 부제는 교회의 재산을 담당하는 성직자였습니다.  
 
로마 황제에게 그 재산을 바치느니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을 택했습니다. 
그 덕에 석쇠에 구워지기는 하였지만 그 뜻을 기꺼이 지켰기에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분이 하느님 앞에 가지고 간 것은 내어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 마음이 하느님 마음이고 그 마음을 간직했다면 하느님 마음을 간직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어주는 것이 즐거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지고 있는 것을 ‘미워해야’ 합니다. 
미워해야 한다는 말은 오물처럼 더럽게 여기라는 말이 아닙니다.  
 
오물을 어떻게 남에게 줄 수 있겠습니까? 
그 가치를 알기는 하지만 남에게 주는 것이 더 낫다고 여길 때 미워하는 것입니다. 
돈의 가치를 알지만 남에게 흘러갈 때 더 유익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 미워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영원한 생명은 생명을 끊임없이 받는 것입니다. 
생명을 끊임없이 받으려면 나의 생명을 끊임없이 이웃을 위해 내어주고 있어야합니다.  
 
이런 의미로 예수님께서는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고 죽으려고 하면 살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복수하고 싶은 마음으로 죽고, 어떤 사람은 성공하지 못한 아쉬움으로 죽고, 어떤 사람은 후회의 눈물을 흘리며 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쁘게 내어주려는 마음”만 남기고 죽어야합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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