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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8월 2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8-02 조회수 : 510

8월 2일 [연중 제17주간 금요일] 
 
레위기 23,1.4-11.15-16.27.34ㄴ-37
마태오 13,54-58 
 
< 나는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을까? > 
   
이번 여행을 가던 중 고속도로에서 저희 차 앞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자세한 것은 보지 못하고 그저 보이는 것만으로는 트럭 두 대가 고속도로를 막아 그 앞에 서있는 사고 차량들을 보호해 주려는 것 같았습니다. 
 
기다리는 것이 지루하여 내려서 도로 위에 떨어진 잔해들을 조금 치우던 중 사고 난 차량에서 스마트폰도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것을 집어 주인에게 전해주는데, 뒤에서 앞에 트럭을 박은 차량 주인 것이었습니다. 
그 두 대의 트럭이 사고가 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스마트폰을 받는 분은 아파하는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앞의 차 운전자는 이리저리 걸으며 전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전화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저는 앞의 트럭운전자에게 혹시 신고를 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분도 당황하여 아직 신고를 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5분 정도는 지난 것 같았는데 모두가 그저 구경만 하는 상태였던 것입니다. 
뒤의 차 운전자는 차에 발이 끼인 것 같았습니다. 
 
저는 핸드폰이 있는 제 차로 다시 돌아와 119에 신고를 했습니다. 
그리고 뒤에 차들이 잔해가 치워진 두 트럭 사이로 빠져서 앞으로 가는 틈에 저도 앞으로 운전을 해서 그 트럭 두 대를 빠져나왔습니다.  
 
마음은 갓길에 다시 세우고 구조대가 도착하는 것을 기다리고 싶었지만 ‘신고까지 해 주었으면 됐겠지!’라는 생각이 들어 남들처럼 사고 난 두 차량을 뒤에 놓아두고 제 갈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가는 도중에 경찰서, 소방서, 119 구조대, 앰뷸런스 등에서 전화가 계속 오는 것이었습니다. 
거의 10분이 다 되어가는 데도 전화가 오는 것을 보니 그 차에 끼인 사람은 계속 그렇게 있었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차에 끼어봐서 아는데, 그때는 아프기보다는 외로웠습니다. 
사고를 내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막막하고 혼자만 차에 끼여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인 그분을 두고 그냥 떠나버린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습니다. 
바쁜 일도 없었고 놀러가는 중이었는데 뭐가 급하다고 휩쓸려 가버린 것일까요?  
 
맨날 착한 사마리아인에 대해 강의를 하며 사람이 물이 빠져있는데 어떻게 구하지 않겠느냐고 말하면서, 정작 그런 처지가 되니 제 자신도 사제나 레위인이었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나자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몰라보고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신 것도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저 예수님께서 자라실 때 본 것만 기억하고 자신들이 아는 것 안에 갇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전혀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왜 그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을까요? 
그 이유는 그들이 성령을 받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성령을 받았다면 그들이 메시아가 되었을 것입니다.  
 
메시아, 곧 그리스도란 뜻은 성령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뜻합니다. 
평범한 인간의 수준만으로는 그리스도를 알아볼 수 없고 그리스도가 되어야 그분을 메시아로 알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물 위를 걸었던 베드로는 자신도 예수님처럼 물 위를 걸어보려 했습니다. 
이는 그 자신이 물 위를 걸을 수 있는 메시아가 되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알아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이 예수님이니 예수님이 하신다면 자신도 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준에 가까웠기 때문에 가장 예수님을 잘 알아본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베드로가 교회의 반석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교회는 자신이 예수가 되어 예수님을 알아보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개 눈에는 개만 보이고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는 말이 맞습니다. 
애벌레 눈에는 모든 애벌레들이 자기 수준으로 보이겠지만, 애벌레가 나비가 되면 나비는 다른 애벌레를 볼 때 자신처럼 나비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존재로 봅니다.  
 
인간이 그리스도가 되면 그래서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가 될 수 있는 존재로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실 수 있었던 이유는 모든 사람을 당신 아버지의 수준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당신도 아버지와 하나가 될 수 있다면 모든 사람들도 당신과 같은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아셨던 것입니다. 
 
애가는 부모님을 보면서 네 발로 걷고 짐승처럼 먹고 싸기만 하는 존재지만 그 안에서 자신보다 더 위대해질 미래를 봅니다.  
 
그래서 아기들이 짐승처럼 보인다고 해서 그 행동하는 대로 대접하지 못합니다. 
부모가 이미 인간으로 새로 태어났기 때문에 아기 안에서도 자신들을 발견하는 것이고 그렇게 대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로 새로 태어난 이들도 모든 인간을 자신보다 더 나은 그리스도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예수님에 대해 많이 안다고 생각했지만 하루를 지나고 보면 ‘저 분이 예수님이라면 내가 그렇게 대할 수 있었을까?’를 생각하면 그러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훨씬 많음을 깨닫게 됩니다.  
 
교통사고를 당해 차에 끼여 있는 사람을 두고 그냥 떠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분이 그리스도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려면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모든 이들이 예수님으로 보이기 때문에 저절로 착한 사마리아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모든 사람들을 예수님처럼 보지 못한다면 그것은 내가 예수님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지금 나타나셔도 나자렛 사람들처럼 인정하려 들지 않을 것입니다. 
마더 데레사는 성소에 대한 갈등을 느끼던 중 기차 역에 쓰러져 “목마르다!”라고 말을 하는 한 행려자를 보고 그가 예수님임을 알아보았습니다. 
마더 데레사도 그 순간 예수님이 된 것입니다. 
 
아기는 부모처럼 말하려고 수만 번의 옹알이를 하고 걷기 위해 수천 번을 넘어집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예수님이 되려는 노력은 어떤 것이 되어야할까요? 
바로 오늘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을 예수님으로 보고 그렇게 대하는 노력이어야 할 것입니다.  
 
수천 번, 수만 번 그렇게 하다보면 언젠가 나도 완전한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있을 것입니다. 
또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믿을 때 이미 예수님으로 새로 태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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