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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7월 28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7-28 조회수 : 592

7월 28일 [연중 제17주일] 
 
창세기 18,20-32
콜로새 2,12-14
루카 11,1-13 
 
<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 

나는 누구인가?, 기도하십시오. 
2011년 4월, MBC '서프라이즈'에서는 1920년 인도, 2008년 러시아, 2009년 시베리아 등 
1920년 이후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발견된 약 80여 명의 야생 아이들에 대한 비화에 대해 전했습니다.  
 
이 중 하나만 소개하겠습니다. 
1920년 10월, 인도 동부 어느 마을, 저녁이면 가끔씩 근처 개간지에서 동물의 환영 같은 것이 출몰, 그 기괴한 모습에 마을 사람들은 공포에 휩싸이곤 하였습니다. 
 
목사 죠세프 싱은 이 환영이 무엇인지 꼭 알아내야겠다고 결심하고 나무 위에 올라가 잠복하였습니다. 
그는 마을 사람들이 헛것을 보았다고 말하여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해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이윽고 몇 마리의 늑대들이 출현하고 뒤이어 두 환영이 나타났습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 그 환영은 두 여자 아이들이었던 것입니다.  
 
그 아이들은 늑대들과 함께 몇 년 간 굴 속에서 생활하였으며, 늑대들은 아이들을 양녀로 받아들여 지금까지 키웠던 것입니다. 
이 때 한 아이는 2살 정도였으며, 다른 아이는 7살가량 되었습니다.  
 
결국 두 아이는 잡혀서 고아원에 보내졌고, 
이윽고 네 발로 달리거나 늑대처럼 울부짖을 줄 밖에 모르는 이 아이들을 인간으로 되돌리려는 피눈물 나는 노력이 시작되었습니다.  
 
작은 아이에게는 아말라, 큰 아이는 카말라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슬프게도 아말라는 일어서거나 말하는 것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구출된 지 1년 만에 죽고 말았습니다. 
아말라는 자신이 완전한 늑대라고 믿었기 때문에 자신의 종족을 떠난 사람들 속에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현상을 정글북의 모글리를 본따, 모글리 현상이라고 합니다.  
 
모글리 현상이란 인간도 어떻게 키워지느냐에 따라 그 키워질 때의 습성을 간직하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즉 인간은 인간에 의해 키워져야 인간답게 자란다는 것입니다.  
 
다행인지 언니 카말라는 16살까지 10년을 더 살면서 바로 서서 걷기도 하고, 약 30개의 단어를 말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익힌 음식도 좋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동물에 의해 키워진 대부분의 아이들은 10년 이상을 살지 못하고 죽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린 나이임에도 10년에 30개의 단어를 말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자신을 여전히 인간으로 인정하지 못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내가 누구에 의해 키워져야 하는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미운오리새끼’ 동화를 잘 알고 있습니다. 
자신이 오리인줄 알고 미움 받으며 오리 가운데서 컸지만 나중에 백조 가족을 만나 자신이 백조였음을 깨닫게 되고 백조로 살아간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누구라고 믿는 대로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이라고 믿으면 사람처럼, 
늑대라고 믿으면 늑대처럼.
따라서 우리는 인간답게 살기 위해 누구나 한 번쯤은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나는 누구인가?’
자신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어떤 존재인지 알고 싶어 합니다. 
시인이자 철학자였던 니체는“자신을 아는 자는 세상에서 못 해낼 일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자기를 아는 게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내 자신에게 온전한 해답을 주지 않고 그만 그 질문하는 것을 멈추고 맙니다. 
동양의 가장 뛰어난 철학자인 공자님도 죽음에 대해 물어보는 제자에게 “아직 사는 것도 모르는데 죽음을 알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습니다. 
즉 이 세상 사람은 그 누구도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말해 줄 수 없다는 뜻입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다면 나에 대해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늑대아이라고 하더라도 본인이 인간으로부터 왔다는 것만 알았다면 끝까지 늑대로 살려고만 고집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주님의 기도’를 보십시오. 
처음 시작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합니다. 
하늘은 우리가 나온 곳이요 돌아갈 곳입니다. 
또한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하시며,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깨우쳐 주십니다. 
사람이면서도 하느님이란 뜻입니다.  
 
자신이 하느님의 자녀임을 아는 사람은 하느님의 자녀대로 살아가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이 세상의 자녀, 혹은 동물처럼 살아가기도 합니다.  
 
우리는 기도 안에서 하느님 없이는 아무 것도 아니지만 그분과 함께라면 하느님도 될 수 있는 존재라는 우리 정체성을 온전히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가톨릭 뉴스, 2012년 8월 31일자 기사에 타이페이 대교구 주보에 실렸던 타이완 산궈스 바오로 추기경의 편지 전문이 실렸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산궈스 추기경이 마음으로 깨닫고 싶었던 것은 십자가의 비움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비움(필립 2,7)’으로서 
하느님과 더 친밀해지는 신비였습니다. 
그분이 당신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에 입원하셨고, 기도와 묵상 중 죽어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종종 나타났다고 합니다. 
동시에,  
 
“자신을 비워라, 그러면 하느님과의 일치를 위해 자신을 비운 예수와 가깝게 지낼 수 있게 골고타 언덕 꼭대기 까지 오를 수 있을 것이다” 라는 음성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분은 이렇게 회고합니다. 
“이 환영은 나를 깨우쳤다. 
나는 내가 입고 있는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성직자의 장백의, 주교반지와 주교관, 추기경의 진홍색 수단, 이런 것들은 과다로 포장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것들은 원래 자신을 잃게 했다.  
 
하지만 이런 옷들은 내 일상의 하나가 됐고, 이런 옷들을 벗어던지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느님께서 할 수 있으시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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