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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7월 23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7-23 조회수 : 426

7월 23일 [연중 제16주간 화요일] 
 
탈출기 14,21―15,1ㄴ
마태오 12,46-50 
 
​‘뜻’이 결정하는 ‘집’ 
  
조선 말기 힘든 시절에 조선 땅에서 승승장구한 조선의 한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이완용입니다. 
그는 항상 성공했고 자녀에게 성공하는 법도 알려주었습니다.  
 
가장 강한 나라를 섬기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완용은 과거에 합격하기 전에 벌써 영어를 배웠던 사람입니다. 
그는 미국이 우리와 가까이 지낼 때 친미파의 주동인물이 되었고, 세상이 변하여 러시아의 발언권이 강해지자 어느새 러시아어를 구사하며 
친러파의 중심인물이 되더니, 러일 전쟁으로 일본이 승리하자 이번엔 유창한 일어를 앞세워 친일파의 거두가 되고 이어서 국무총리까지 역임합니다.  
 
그 후 우리나라가 일본의 손으로 넘어갈 때 그는 서슴없이 일본인이 되어 그 나라 귀족으로 둔갑했고 마침내 후작이라는 작위까지 받습니다.
조선 땅에서 당시 가장 성공했던 이완용을 지금 누구도 자랑스럽게 우리나라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조선의 피가 흐르지만 그는 일본사람이고 러시아 사람이며, 미국 사람입니다. 
피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 피 안에 흐르는 뜻이 더 중요합니다. 
누구의 뜻을 따르느냐가 누구에게 속하느냐를 결정합니다. 
가족임을 증명하는 것은 그 가족에 흐르는 피가 아니라 그 가족에 흐르는 뜻입니다. 
 
‘뜻’은 ‘본성’과 같은 말입니다. 
그리고 누구나 자신이 선택하는 뜻에 갇혀 살아갑니다. 
내가 육체의 뜻을 선택했다면 그 육체로부터 오는 ‘땅’에 갇혀 살아가고, 내가 하늘의 뜻을 택했다면 ‘하늘’에 살게 됩니다.  
 
육체는 지옥의 본성이고 영은 하늘의 본성입니다. 
하느님의 본성에 살게 되느냐, 사탄의 본성 안에서 살게 되느냐는 내가 선택하는 뜻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인 사랑을 실천했다면 하느님 나라에 있는 것이고, 육체의 욕망을 선택했다면 이미 지옥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육체의 욕망에 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때 주님이 이런 사소한 죄들은 용서해 주실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합니다. 
그러나 그 어떤 죄도 주님의 뜻이 아닙니다. 
죄인 줄 알면서 그것을 선택한다면 그 순간은 지옥에 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따르는 뜻이 천국과 지옥, 둘 중의 하나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육체의 뜻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자주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물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잠자기 전에 다음 날 해야 할 일들을 적어보는 것입니다.  
 
그 일들을 순서대로, 시간의 흐름대로 적되, 그 일들이 주님의 뜻이기를 기도하며 적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 날 그렇게 적힌 시간표대로 살았다면 그 사람은 천국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한 아버지가 네 살 된 아들과 맥도널드에 갔습니다. 
아들은 버거, 콜라, 튀김 등 맥도날드 대표 음식을 시켰습니다. 
아버지는 몸 생각을 해서 드레싱을 곁들인 따분한 샐러드를 시켰습니다.  
 
아들이 먹는 것을 보고 입에 군침이 돌아 “아빠가 튀김 하나 먹어도 되지?”라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때 네 살 된 아이는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싫어요!”
아들은 자신이 먹는 음식이 어디에서 나온 줄 모르는 것일까요? 
이런 소리를 듣고 아버지가 또 사주고 싶으실까요?  
 
주님의 뜻대로 십일조도 내지 못하고 봉헌을 하더라도 아주 아까운 듯이 하면 하느님도 그런 섭섭한 마음이 드실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 모든 것을 봉헌하신 분이 있습니다. 
바로 성모 마리아이십니다.  
 
성모 마리아는 아브라함이 외아들을 바치려 했던 것보다 더 바쳤습니다. 
당신 자신을 봉헌하셨기 때문입니다. 
당신 자신을 아버지의 뜻에 봉헌하셨고 그렇게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의 길을 가셔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 모습이 하느님 나라에 사는 사람이 본받아야 할 모범이 되었습니다.
삼손은 들릴라라는 여인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은 삼손의 뜻이 아니라 필리스티아인들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몸은 삼손과 같이 있었지만 뜻은 필리스티아인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결국 들릴라를 자신의 편으로 생각했던 삼손은 눈이 뽑히고 머리카락이 잘리는 수모와 고통을 당해야했습니다.
하느님을 따른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육체의 욕망을 따르는 사람은 이렇게 내 안에 머무시려 하시는 하느님의 눈을 뽑고 사탄의 소굴로 집어넣는 행위와 같습니다.  
 
나는 두 뜻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라고 하실 때, 성모님은 오히려 칭찬으로 들으셨을 것입니다.  
 
성모님도 당신만큼 주님의 뜻 안에서 살아온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오직 ‘뜻’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들만이 예수님께서 핏줄을 배신한다고 여겼습니다. 
마지막 때에 하느님께서 “내 뜻만을 따른 이들만 내 나라에 들어와라!”라고 명하실 때, 주저함 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우리들이 됩시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하느님의 뜻밖에 없습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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