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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7월 11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7-11 조회수 : 500

7월 11일 [성 베네딕토 아빠스 기념일] 
 
창세기 44,18-21.23ㄴ-29; 45,1-5
마태오 10,7-15 
 
< 일하고 기도만 해도 행복할 수 있는가? > 

어떤 무신론자가 봉쇄 수도원에 와서 수도자들이 사는 모습을 안타까워하며 수도원장에게 물었습니다. 
 
“만약 하느님이 없다면, 이렇게 사는 삶이 후회스럽지 않을까요?”
그러자 수도원장이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당신에게는 이 사람들이 억지로 갇혀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이 사람들은 이 삶이 행복하여 스스로 머무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계시지 않더라도 이 삶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하느님이 계시다면 마지막 때에 진짜 후회하게 될 분은 당신일 것입니다.” 
 
무신론자들은 하느님이 없다고 믿고 사는 것이 행복이고, 하느님을 믿는 삶은 고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죄를 지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도 사제로 사는 삶이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저는 결혼해서 사는 것도 절대 쉬워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각자가 행복하다고 믿는 삶을 선택해서 사는 것입니다. 
 
오늘은 성 베네딕토 아빠스 기념일입니다. 
서양 수도회의 기틀을 세우신 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분의 수도원 규칙은 “기도하고, 일하라!”입니다. 
기도하고 일만하라고 하는데도 신앙생활이 재미있을까요? 
그래서 2차 주회도 있고 뒤풀이도 생기는 것입니다.  
 
저도 아직은 기도하고 일만 하라고 하면 자신이 없습니다.
베네딕토 수도회는 마치 작은 하느님 나라처럼 수도원 안에서 의식주를 해결합니다. 
이 세상에 하늘나라를 재현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잠자고 밥 먹는 데 8시간, 일하는 데 8시간, 기도하는 데 8시간을 잡아놨습니다. 
놀 시간이 없습니다. 
 
그러니 세상 사람들이 볼 때 따분해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수도회에 들어오라면 아무도 안 들어올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수도회가 건재하는 것을 보면 그런 삶이 행복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복음을 전하는 이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가져가는 것은 ‘평화!’입니다. 
이 평화가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라고 선포하는 것이나, “평화를 빕니다!”라고 인사하는 것은 결국 같은 뜻입니다. 
그러나 그 인사를 받는 사람이 “전 평화로운데요?”라고 말한다면 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어른들은 게임에 중독되다시피 공부는 안 하고 게임만 하는 아이가 한심스럽게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겐 게임 외에 행복한 것이 없습니다. 
그들을 게임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는 그 게임이 행복을 오히려 해치는 것이었음을 알게 하는 방법뿐입니다.  
 
그 방법이란 계속 그것만 하게 만들어서 질리게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돌아온 탕자의 비유에서 유산을 달라고 하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원하는 대로 주시는 것입니다. 
죄를 지어볼 만큼 지어보고 아니다 싶으면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제가 대학교 들어가자 본당 수녀님들이 당신들의 수도회에 저를 보내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쓰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사제가 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수도회는 더욱 말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교구 사제는 자유롭기라도 한데, 수도회 들어가면 갇혀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교구 사제로 살아보니, 가끔은 수도회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수도회는 그 규칙이 있어서 일정 시간까지는 들어와야 하고 세상 많은 유혹으로부터 공동생활을 하면서 보호를 받기 때문입니다.  
 
교구사제로 마음대로 살다보니 그것이 힘들어 나를 잡아줄 수도회와 같은 삶이 그리워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만약 지금 교구사제냐, 수도회냐를 다시 선택하라고 한다면 조금은 망설일 것입니다. 
 
고구마를 억지로 빨리 익게 할 수 없습니다. 
안 익었으면 기다려야합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까요?  
 
내가 초대하는 삶이 행복하게 보일 때까지입니다. 
내가 전하는 평화를 받아들일 때까지입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거든, 그 집이나 그 고을을 떠날 때에 너희 발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고 말씀하십니다.  
 
평화를 선물하는데 이미 평화롭다고 한다면 그 평화를 실컷 즐기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상책입니다. 
그러나 끝내 자신들의 평화가 곧 두려움이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심판 때 그들은 소돔과 고모라보다 더 큰 벌을 받게 됩니다. 
 
복음은 기쁜 소식입니다. 
행복을 전하는 일이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도 행복하다 믿는 이들은 그대로 놓아두는 것이 낫습니다.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하고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는 것은 “기도하고 일하기만 해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란 뜻입니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주 가끔만 다시 와서 찔러보고 지금은 그냥 죄를 짓게 내버려두십시오. 
우리도 일하고 기도만 하는데도 행복할 수 있음을 아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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