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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6월 29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6-29 조회수 : 374

6월 29일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대축일] 
 
사도행전 12,1-11
티모테오 2서 4,6-8.17-18
마태오 16,13-19 
 
< 나는 빛으로 나아가는가, 어둠으로 나아가는가? > 

‘왓칭 2’에 저자 김상운에게 찾아온 대학 제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같은 회사에서 사내 커플로 잘 사귀던 남자가 갑자기 이별 통보를 해서 도대체 이해할 수 없어 상담을 하러 온 것입니다.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만나면서 좋은 관계를 유지했는데 언제부턴가 남자가 전화를 안 받거나 문자에 회신을 안 하는 경우가 생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은행직원이었던 남자가 ‘바빠서 그런가보다.’라며 꾹 참았지만 점점 더 연락이 뜸해지는 것이었습니다. 
 
“자기, 나 무시하는 거야? 나 싫어진 거지?”
“요즘 일이 좀 바빴어. 미안해.”
이런 대화가 이어지다 얼마 후 남자가 갑자기 결별을 선언하였던 것입니다. 
그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분노가 치솟았습니다. 계속 전화를 했지만 남자는 받지 않았습니다. 
 
“선생님, 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던 남자가 대체 왜 돌변한 거죠? 제가 뭘 잘못한 거죠?”
“그 남자에게 공간이 필요했던 것 같은데?”
“사랑하는 사이끼리 무슨 공간이 필요해요? 서로 가까이 붙어있고 싶어 해야죠.”
“어, 사랑이란 이유로 상대의 자유까지 침해해서는 안 돼. 
남자는 자신의 자유를 지키고 싶었던 거야.” 
 
사랑하는 사람들은 더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더 사랑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이별하기 직전까지 온 경우가 많습니다.  
 
부부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행복한 부부가 되기를 원치 않는 부부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어느 순간 보면 깊은 대화는 하나도 하지 않는 형식적인 관계만 유지하는 부부가 되어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어느 방향으로 끊임없이 나아가고 있는데 그 방향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빨리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어긋나고 멀어지고 있으면서 자신은 노력하고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를 보면 과정이 어땠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도 인간의 자유를 건들지 않습니다.
에덴동산에서도 죄를 지을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강제로 당신을 믿으라고도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준비가 되었을 때 불러주십니다. 
하느님도 존중해주시는 자유를 사랑이란 이름으로 강제하고 내가 원하는 대로 변화시키려고 한다면 그런 사랑은 오래갈 수 없습니다. 
사랑이 아닌 소유를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입니다. 
교회의 가장 큰 두 기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열두 사도를 뽑으시고 그 중에서 수장으로 베드로를 선택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아버지께서 베드로를 선택하셨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어부였고 다혈질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교회의 수장으로 뽑혔습니다. 
베드로만이 그리스도께 더 합당한 사람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걸어왔던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오로는 교회를 박해하던 인물이었습니다. 
바오로 때문에 죽음에 처해졌던 교인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바오로를 불러 세워 수많은 작은 교회들을 세우게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어부였는데 불러주셨고, 바오로는 원수였는데 불러주셨습니다. 
그러고 보면 정말 누가 부르심을 받을지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여기서도 바오로 사도가 그만한 준비가 되고 있었음을 알아야합니다.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에 하늘에서 빛과 소리를 들었는데 오직 바오로 사도만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다른 이들은 귀가 막혀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다른 이들은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참 사도가 되기 위해 준비되고 있었습니다. 
비록 겉으로는 교회를 박해하는 것 같았지만 교회의 기둥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해 온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도구로 쓰시기 위해 사람을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준비되어 응답하는 이들만 쓰십니다. 
 
히틀러에 의해 수백만 명의 유태인들이 가스실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모두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두려움에 휩싸여 있는 가운데 한 유태인 의사만이 몸과 마음을 단정히 하였습니다.  
 
어느 날 우연히 유리조각 하나를 줍게 되었고 그는 매일 그 유리조각으로 면도를 하고 얼마 안 되는 커피를 옷에 적셔 얼굴을 닦고 양치를 하였습니다. 
그런 사람을 가스실로 보낸다는 것은 나치 군인들에게도 큰 양심의 가책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매번 새파랗고 깔끔하게 면도한 얼굴을 하고 있는 활기찬 젊은 의사를 가스실로 끌고 갈 수는 없었습니다. 
그의 가스실행이 하루 이틀 이렇게 미뤄지다가 드디어 독일이 패망했고 젊은 의사는 기적적으로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무언가의 선물을 받을 준비를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누구는 사도로 불림을 받기 위해 준비하고 있고 누구는 사탄의 소유가 되도록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한발자국씩 어디로 나아가는지 살피지 않으면 내가 무엇을 위한 그릇이 되어 가는지 눈치 채지 못합니다. 
 
우리가 매일 향하는 방향이 ‘빛’이어야 합니다.
빛의 방향일 때 우리는 반드시 더욱 가치 있는 삶으로 주님께서 그때마다 불러주실 것입니다.
더 가치 있는 삶이란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처럼 더 합당한 교회의 일원이 되는 것입니다. 
더 많은 사람을 구원하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 불림을 받는 것입니다.  
 
만약 이전보다 더 많은 사람을 구원하는 사람으로 불림을 받고 있다면 그 사람은 더 큰 사도로 불림을 받는 길로 나아가고 있음이 확실합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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