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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6월 9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6-09 조회수 : 400

6월 9일 [성령 강림 대축일] 
 
평화가 너희와 함께! 
복음: 요한 20,19-23 
 
< 성령님은 주님이 주시는 가벼운 멍에 > 
 
강길웅 신부님 강의에서 소록도의 한 천사와 같은 형제님의 이야기가 매우 감동적이었습니다. 
예전에 소록도에서는 억지로라도 결혼을 시키기 위해 마을 주민들이 서로 짜고 우연하게 만나게 해서 둘이 결혼 하도록 밀어붙인다고 합니다.  
 
그렇게 원치 않는 결혼을 했는데 그 자매는 이미 아이가 딸린 상태였고 정신질환까지 앓고 있어서 남편이 매일 때린다고 소문내고 다니며 
그 아들은 며느리와 함께 돈 있는 거 다 내어놓으라며 욕까지 해 댄다고 합니다.  
 
물론 돈도 없는데 아내가 많은 것처럼 아들에게 전화해서 받으러 오라고 하는 것이고 아내를 때린 것이 아니라 아내가 시집올 때 가져온 뒤주를 손바닥으로 치는 것인데 그것이 자신을 치는 것처럼 말하고 다니던 것이었습니다.  
 
강 신부님은 그 말을 듣고는 당장 이혼하라고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서 이젠 혼자 살아도 돈이 충분히 나오는 때가 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형제는 펄쩍 뛰며 하느님이 맺어주셨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고 합니다.  
 
정말 안 좋은 것은 다 갖춰 누구도 함께 살아가기 쉽지 않은 그런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힘을 주시는 분은 누구일까요? 
당연히 주님이시고 주님의 성령께서 힘을 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 형제가 없다면 그 자매는 완전히 망가져버릴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은 그 자매에게도 당신 성령의 은혜를 베풀고 싶으신데 중간에 받아서 전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다만 그 형제만이 그 역할에 합당하여 그 짐을 지어준 것이고 그 짐을 질 힘도 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구해오라는 엄청난 일을 시켜놓고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아무 능력도 주시지 않으셨다면 참으로 부당한 일일 것입니다. 
분명 무거운 짐을 지어주시는 듯 보이지만 그와 함께 그 짐을 질 수 있는 성령도 함께 나누어주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짐이 무겁기만 해서 차라리 짐도 지우시지 말고 짐을 질 능력도 주시지 말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 멍에를 매지 않으면 이전에 매여 있던 멍에는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무게가 아닙니다.  
 
‘조이’라는 영화는 참으로 어려운 가정생활을 꾸려나가던 한 여인이 미국의 커다란 회사의 회장이 되기까지의 실화를 엮은 것입니다.  
 
조이는 어렸을 때까지 만드는 재주가 뛰어났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종이로 집을 만들고 있지만 커서는 실제로 커다란 집을 짓겠다는 꿈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꿈이 깨어진 것은 바로 부모님의 이혼 때문이었습니다. 
그 혼란함 속에 고등학교는 수석으로 졸업할 정도의 머리는 있었지만 생계를 꾸려나가야 해서 대학도 포기해야 했습니다.  
 
또한 가수 지망생이지만 실제로는 그저 실업자에 불과한 한 남자와 사랑에 빠져 
아기까지 둘이나 갖게 되었고 부모와 마찬가지로 이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직장에서는 능력이 없다고 쫓겨났고 이혼한 어머니는 방 밖으로 나오지 않고 드라마만 보는 폐인이 되었으며 아버지는 계속 여자를 바꿔가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에게 힘을 주는 사람이 아직 둘 있었습니다. 
바로 할머니와 어린 딸이었습니다.  
 
할머니는 당신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는 말을 했고, 자신의 딸도 증조할머니의 말씀대로 어머니가 꼭 가정을 일으켜 세울 것이라 믿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난 어느 날 17년 동안 잊어왔던 자신의 삶을 다시 찾기로 마음을 굳히게 됩니다. 
다시 아이디어를 내어 발명품을 내게 되고 
새로 시작되던 TV홈 쇼핑을 통해 대박을 내게 되며 스스로 법을 공부하여 부당한 업체들과 싸워나갔습니다.  
 
엄청난 파산의 위기가 여러 번 찾아왔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커다란 회사를 경영하는 자수성가한 여성의 대명사가 된 것입니다.  
 
할머니와 딸이 지워주는 멍에는 실로 무겁기만 한 것이었습니다. 
그저 엄마처럼 방안에 갇혀 드라마만 보며 인생을 허비하는 것이 편안할 수도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 그런 삶이 훨씬 더 의미 없고 고통스러운 삶입니다. 
비록 온 세상과 싸워야 할지라도 의미 있는 도전을 하도록 만드시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그 성령님이 지워주는 멍에는 이전의 패배자의 멍에를 벗어버리게 하고 도전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지금도 예수님께서는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은 다 나에게로 오너라. 내가 편히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의 영혼이 안식을 얻을 것이다.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 11,28-30)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과연 주님의 짐인 성령은 우리의 삶을 가볍게 만들어줍니다. 
전에도 말씀드렸던 한 교구 봉사자는 부모로부터 사랑받지 못하여 피폐된 생활을 했고 결혼한 남자도 자신보다 상태가 더 안 좋았습니다.  
 
이렇듯 사랑을 받지 못한 이들은 항상 억울한 마음이 있어서 자신은 사랑을 더 받아야한다고 믿기 때문에 이웃에게로 마음이 향할 수 없습니다. 
항상 불만족하고 항상 우울합니다.  
 
반면 사랑이신 성령은 그 사람을 기쁨으로 초대합니다. 
우연히 반모임에 나가서 오천 명을 먹이시는 기적의 복음을 읽을 때 예수님께서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으시며 “그들이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라는 성경구절이 곧 자신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들리게 하셨습니다.  
 
그 사랑에 하염없는 눈물이 흐르게 하였습니다. 
처음 느껴보는 사랑이었고 이젠 부족하던 사랑이 흘러넘치게 되었습니다.  
 
누군가에게 그 사랑을 전해주고 싶어서 신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교구 견진팀 봉사자로 활동하게 된 것입니다.  
 
성령님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님께서 내려오시는 곳에 머물러야합니다. 
그 자매님이 계속 성당에 나오지 않으셨다면 영원히 성령님을 받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당시에 세상은 넓었지만 성령님께서 내리신 곳은 마르코의 다락방뿐이었습니다. 
비를 맞고 싶으면 사막에서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비가 내리는 교회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파견 받은 이들입니다. 
이웃에게 복음을 전할 마음이 없는 이들은 아무리 미사를 많이 하고 기도를 해도 성령께서 스며들 틈이 없습니다. 
이웃을 향한 마음이 있어야 내가 은총의 통로로서 은총으로 가득 차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멍에는 이전의 피폐한 생활을 벗어버리게 하여 기쁨에 찬 삶으로 바꾸어놓습니다. 
이것이 성령의 역할입니다. 
영국의 템스 강변에서 한 거지노인이 낡은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습니다.  
 
그때 웬 낯선 외국인이 그를 측은히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지금 제게 돈은 없습니다. 그러나 저도 바이올린을 좀 다룰 줄 아는데 대신 몇 곡만 연주해 드리면 안 되겠습니까?”
거지노인은 바이올린을 건네주었습니다. 
 
그가 활을 당기자 놀랍도록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왔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거지노인의 모자에는 순식간에 돈이 쌓이게 되었습니다. 
연주가 끝나자 사람들이 뜨거운 박수를 쳤습니다. 그때 누군가가 외쳤습니다.  
 
“저 사람은 바로 파가니니다!” 
 
그는 바이올린의 명연주자로서 런던에 연수차 왔다가 잠시 산책하던 길이었습니다.
우리는 노인이고 우리 삶은 낡은 바이올린과 같습니다. 
그것을 잠시 주님께 맡기면 주님은 그것으로 손쉽게 연주를 하여 나의 삶을 바꾸어놓을 수 있습니다.  
 
이는 마치 무언가를 기다려야 할 때 혼자 무료하게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기다리는 것과 같습니다. 
오히려 더 늦게 와서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더 오래 갖고 싶어 하는 마음이 들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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