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일 [부활 제6주간 토요일]
독서 : 사도행전 18,23-28
복음 : 요한 16,23ㄴ-28
<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시는 이유 >
한 부잣집 아들이 시력을 잃게 되어 절망에 빠졌습니다.
책을 읽어주려고 고용된 여자들에게 손찌검을 하고 물건을 집어던졌습니다.
그런 그에게 삶의 빛을 줄 한 여자가 나타납니다.
그녀는 백색증 환자로 할머니처럼 백발로 태어났고 허옇게 뜬 얼굴도 못생겨
처음부터 부모로부터 학대를 받으며 자랐습니다.
얼굴과 몸에는 상처투성이였기 때문에 사람들 앞에서도 얼굴을 가리고 다녀야했습니다.
그녀만이 성질 더러운 부잣집 도련님을 제압할 수 있었고 책을 읽어줄 수 있었고, 더 나아가 촉각과 청각, 후각 등을 이용하는 법을 알려줄 수 있었습니다.
루벤은 자신에게 새로운 삶을 선사한 마리를 사랑하게 됩니다.
마리도 어차피 자신의 외모를 보지 못하는 루벤에게 생전 처음으로 아름답다는 말을 듣고는 그를 사랑하게 됩니다.
수술하여 눈을 뜰 수 있게 되었다는 소식은 루벤에게는 기쁨이었지만 마리에게는 절망이 되었습니다.
젊고 잘생기고 부잣집 외아들인 그가 늙고 못생긴 자신의 얼굴을 보고 계속 사랑할 리가 없을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편지 한 통을 써 놓고 루벤을 떠납니다.
새 눈을 갖게 된 루벤은 가장 먼저 마리를 보고 싶었지만 마리는 이미 그 집을 떠난 상태였습니다.
끊임없이 마리를 찾던 중 우연히 도서관에서 그녀를 만나게 됩니다.
마리는 어차피 자신을 못 알아볼 것이라 여겨 그의 곁을 스쳐가지만 그녀의 체취를 알고 있었던 루벤은 단번에 그녀를 알아봅니다.
그리고 여전히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집으로 함께 가자는 루벤의 말에 마리는 버려지는 고통을 감내할 수 없어 그를 또 떠납니다.
루벤은 마리가 무엇을 두려워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사람들의 시선이었습니다.
눈을 가진 어떤 사람도 자신을 아름답게 보아준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사람들 앞에 나설 용기도 없었던 그녀가 루벤의 시선을 감당할 수는 더더욱 없었던 것입니다.
루벤은 자신에게 마리가 다가오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자신의 눈 때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루벤은 정원에서 차가운 고드름을 발견합니다.
고드름 두 개를 잘라 자신의 눈에 박습니다.
그리고 기뻐합니다.
이젠 마리가 돌아올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젠 마리가 더 잘 보이기 때문입니다.
영화 ‘블라인드(2007)’의 줄거리입니다.
현실의 고달픔 속에 살아온 마리는 동화 같은 사랑의 이야기는 있을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루벤은 자신의 눈을 스스로 잃게 만듦으로써 동화가 현실이 되게 했습니다.
누군가의 동화 같은 희생으로 생긴 믿음이
현실에서 이루어질 것 같지 않은 사랑이 실현되게 합니다.
하느님께서 죄의 부끄러움으로 괴로워하는 인간을 위해 당신의 눈인 아드님을
십자가에 죽이셨습니다.
당신 스스로 장님이 되어 인간도 하느님과 한 집에서 살 수 있음을 믿게 하신 것입니다.
창세기의 이사악이 장님이 되어 자신을 에사우라고 믿게 된 야곱에게 상속권을 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자신이 상속권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말하면 더 이상 야곱은 신분상승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이사악은 야곱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 에사우를 자신의 눈에서 빼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의 사랑을 믿는 이들에게 자신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자녀는 부모의 모든 재산에 대한 상속권을 가집니다.
모르는 사람이나 하인이 청하면 들어주지 않을지라도 자녀가 청하면 들어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지금까지 너희는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청하지 않았다. 청하여라. 받을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다.”(요한 16,24)
당신 이름으로 청하라는 말은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라고 말하며 청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자격을 얻을 수 있게 하기 위해 하느님의 눈과 같은 분이셨던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이젠 나의 어떠한 부족함도 보지 않겠다고 하느님께서 심판의 눈을 버리신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내가 그리스도라 믿으며 아버지께 청하면 모든 것을 받게 되고 그러면 기쁨에 넘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하느님은 나의 모든 죄와 나의 인간적인 본성을 눈감아주려고 당신 눈을 못 박으셨습니다.
이제 믿기만 하고 청합시다.
그러면 무엇이든 주실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이런 믿음 없이 청하니 아무 것도 받아낼 수 없었고 삶이 우울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요한 16,23)라고 하신 말씀의 뜻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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