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9일 [부활 제6주간 수요일]
독서 : 사도행전 17,15.22─18,1
복음 : 요한 16,12-15
< 누군가를 영광스럽게 하는 법 >
제가 고속도로에서 수녀님들을 태우고 운전을 하고 가고 있었습니다.
대화를 한참 하던 터라 뒤에서 오는 차를 보지 못하고 차선을 바꾸었던 것 같습니다.
분명히 백미러에는 차가 없었는데 갑자기 “빵 ~~~” 그러며 한 차가 제가 빠졌던 차선으로 차를 붙이며 창문을 내렸습니다.
본래 추월하려면 2차선에서 1차선으로 추월해야 하는데 저는 1차선에서 2차선으로 빠지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니까 그 차는 아마 2차선으로 추월하려다가 제 차가 갑자기 2차선으로 들어서니 급브레이크를 밟았던 것 같습니다.
저도 창문을 내렸습니다.
그랬더니 그쪽에서 운전자 아주머니가 “운전을 어떻게 하는 거예요?”라고 쏘아붙였습니다.
저도 “추월하려면 1차선으로 해야지, 비켜주는 나한테 왜 그래요?”라고 쏘아붙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말싸움을 하면 수녀님들이 불편해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냥 속은 부글부글 끓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차를 보내버렸습니다.
그 사람도 제 차 안의 수녀님들의 복장을 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와 함께 있는 누군가의 체면을 살려주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원하는 말만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만약 이런 일이 나와 하느님 사이에서 일어난다면 이것이 예언자직입니다.
나 자신이 할 말을 하지 않고 타인이 원하는 말과 행동을 하게 되면 타인을 영광스럽게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당신께서 세상에 보내시는 성령께서 그것을 받는 사람을 통하여 당신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 그분께서 나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요한 16,13-14)
예수님도 스스로 한 말씀도 하시지 않으셨고, 성령께서도 스스로 한 말씀도 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당신들을 파견하신 분으로부터 받은 말씀을 그대로 전해주실 뿐이십니다.
이렇듯 예언자직은 나를 죽이는 것입니다. 나의 말을 참아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은 예언자직이 아닙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참아내는 것이 예언자직입니다.
예수님도 이 예언자직을 수행하기 위해 목숨을 바치셔야 했습니다.
성령을 받는 이들은 모두 예언자들이 되는데 그 이유는 자기 뜻대로는 한 마디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결국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주는 길이 됩니다.
한번은 또 고속도로에서 차에 소리가 나서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 찾다가 앞 트럭을 살짝 박은 적이 있습니다.
그 차가 1톤 트럭이어서 제 차는 그 차 밑으로 들어가 보닛이 다 휘어질 정도로 피해가 컸지만
그 차는 멀쩡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처럼 보이는 두 남자가 목을 잡고 내렸습니다.
아들은 인상을 쓰고 있었습니다.
누가 봐도 피해가 없는데 무언가 받아내려는 속샘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때 기도를 하면서 가는 중이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빨리 내려서 “괜찮으십니까? 정말 죄송합니다.”를 고개를 깊이 숙이며 연발했습니다.
조금 화가 난 표정이었던 젊은 사람이 갑자기 조금 당황해하더니 얼굴이 누그러졌습니다.
그러더니 “어이구, 아저씨 차 많이 망가졌네요. 잘 고치세요.” 라고 하며 다시 차에 타고 가버렸습니다.
그래서 빠르게 해결이 될 수 있었습니다.
예언자직은 나를 죽이는 행위이지만 또한 나를 살리는 행위입니다.
내가 하는 말들이 사실은 나를 죽이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나를 살리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매순간 하느님께서 나에게 어떤 말을 하기를 원하시는지 들어보아야 합니다.
저도 살면서 제 마음대로 말하다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고 실수를 하며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후회가 되어 항상 마음이 아픕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일 때는 후회가 없습니다.
예언자직은 내가 하고 싶어 하는 말이 아니라 주님께서 하고 싶어 하는 말을 하여 나를 죽이고 다시 부활하는 직무입니다.
이것이 나도 살리고 이웃도 살립니다.
하느님께서도 서로서로를 위해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은 하나도 하지 않고 상대의 말만을 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겠습니다.
하느님께서도 서로 순종하시는데 우리야 얼마나 하느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살아야겠습니까?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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