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3일 [부활 제4주간 월요일]
독서 : 사도행전 11,1-18
복음 : 요한 10,1-10
< 관계의 탐험정신을 잃지 말라 >
영국이 아프리카를 탐험할 때 일입니다.
당시 두 영국인의 행동이 크게 대비된 바 있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은 황금전쟁을 일으켜 아프리카 원주민을 학살하고 엄청난 금과 다이아몬드를 영국에 들여왔습니다.
그는 국민들로부터 영국을 진정 사랑하는 애국자이며 영웅으로 칭송받았습니다.
또 다른 한 사람은 영국의 침략정책과 노예제도를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모두 하느님 앞에서 평등하고 존귀한 존재임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영국인들로부터 반역자요 배신자로 비난받았습니다.
전자는 로드(Cecil Rhodes), 후자는 리빙스턴(David Livingstone)입니다.
세월이 흐른 지금 로드의 무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리빙스턴은 영국 국립묘지에 안장돼 세계인의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왜 전혀 다른 평가를 받았을까요?
그것은 바로 믿음의 차이 때문입니다.
즉 리빙스턴은 하느님(God)을 믿었고 로드는 황금(Gold)을 믿었습니다.
그 믿음이 두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갈라놓았던 것입니다.
내가 어떤 믿음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어떤 문을 통과하느냐가 결정됩니다.
그리고 모든 문 뒤엔 또한 각자의 세상이 펼쳐져있습니다.
믿음은 사람으로부터 오기 때문에 어떤 사람을 믿느냐에 따라 각자가 만나게 될 세상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내가 믿는 사람은 나의 문이 되고 그 문을 통해 그 사람이 초대하는 세상에서 살게 됩니다.
각자는 각자가 행복이라고 믿는 문을 선택하고 그 속에서 각자의 결말을 맞이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문’이라고 소개하십니다.
예수님을 통해 들어가면 푸른 풀밭이 있고 생명이 흘러넘칩니다.
곧 하느님 나라가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 모두도 문입니다.
각자가 믿는 대로 각자의 세상을 만들고 살기 때문입니다.
나와 만나는 사람들은 내가 창조한 세상 안에서 살게 됩니다.
내가 창조한 세상이 천국이라면 나를 믿는 사람들은 나와 만날 때 천국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내 마음이 지옥이라면 나를 믿는 사람들은 나와 만나서 지옥에서 살게 됩니다.
학교에서 이것을 배우지 않아도 우리는 누군가를 믿는 것이 커다란 모험인 것을
경험을 통해 잘 압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누군가를 만나고 누군가를 믿어야 하는지에 대해 매우 신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사람 등 뒤에 어떤 세상이 있는지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은 사람들은 처음부터 두려워하며 사람을 거부하고 피하기도 합니다.
이 두려움이 친밀한 관계를 저해하는 요소입니다.
맞아들이고 그 사람의 세상 안으로 들어가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죽으셔서 지옥까지도 들어가셨습니다.
혹시 당신 세상으로 건너올 이가 없나 해서 죽음의 세상까지 내려간 것입니다.
그러나 지옥에는 아무도 다른 사람의 세상 안으로 건너가기를 원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없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세상에 묶여서 타인과의 교류를 끊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면서 지금 세상이 제일 좋다고 말합니다.
지옥에서 살면서도 말입니다.
그들은 더 좋은 세상을 맛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것이 전부인줄 압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양들이 아니기 때문에 예수님의 목소리를 알아들으려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믿어야하고 그 사람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다가 예수님도 거부하게 됩니다.
시도해보고 아니면 다시 나오면 됩니다.
아무도 붙잡지 않습니다.
십일조를 내면 다른 세상이 있습니다.
주일에 쉬며 기도해도 다른 세상이 있습니다.
원수가 잘 되도록 기도해 주어도 다른 세상이 펼쳐집니다.
오른 뺨을 맞았을 때 왼 뺨을 내어주어도 다른 세상이 있습니다.
꾸어 달라는 사람에게 꾸어주고, 겉옷을 달라는 사람에게 속옷까지 내어주어도 다른 세상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초대하시는 세상이 이런 세상입니다.
지옥에 사는 사람들은 이들 중 하나도 시도해보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사는 세상이 천국이라 믿기 때문에 다른 세상을 탐험할 용기가 없는 것입니다.
그럴 용기가 없기 때문에 영원히 지옥에 살게 됩니다.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에서 동굴은 이 세상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다 자신들이 태어나 자란 세상이 전부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이 보는 세상은 그냥 불빛에 비친 그림자일 뿐이고 진실이 아니며 허상입니다.
한 사람이 그 곳에서 풀려나 빛을 향해 걸어갑니다.
동굴 밖으로 나온 그는 찬란한 참 세상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빨리 뛰어 들어가 동굴에 사는 사람들에게 밖으로 나오라고 초대합니다.
그러나 동굴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바보 취급하는 그 사람을 잡아서 죽입니다.
그냥 확인이라도 하면 되는데 사람들은 그것마저도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겁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도 믿으려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세상에 갇혀 영원히 어두움 속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우리는 조금씩 예수님께서 초대하시는 세상을 탐험할 용기를 냅시다.
손해 볼 것이 없습니다.
아니면 그냥 나오면 됩니다.
실패의 경험도 성장의 기회입니다.
다만 탐험가 정신을 버려서는 안 됩니다.
내가 믿는 세상이 전부라고 믿어서는 안 됩니다.
베드로처럼 물 위로 뛰어내릴 용기를 내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는 분명 탐험가 정신을 잃지 않은 사람들의 것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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