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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5월 6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5-06 조회수 : 422

5월 6일 [부활 제3주간 월요일] 
 
사도행전 6,8-15
요한 6,22-29
전례의 목적 
 
< 코리는 폴란드의 한 아름다운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 
 
그런데 독일 나치에 의해 나라가 점령당하자 유태인을 숨겨준 죄목으로 온 가족이 포로수용소에 잡혀가게 되었습니다. 
코리는 언니 벳시와 함께 감금되어 온갖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신체검사를 받는 도중 한 그리스도인 간호원이 코리에게 “가장 갖고 싶은 것을 말씀하세요.”라고 속삭였고, 코리는 그 간호원을 통해 작은 성경 하나를 얻게 되었습니다. 
코리의 기쁨은 말할 수 없었습니다. 
 
코리는 들키지 않게 갖은 애를 써가며 성경 말씀을 삼키듯이 읽었습니다. 
한마디 한마디가 너무도 소중한 생명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코리에게 데살로니카 전서 5장 18절의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란 말씀이 
가장 깊게 새겨졌습니다. 
 
그런지 얼마 안 되어 코리는 언니 벳시와 함께 감방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옮겨진 감방으로 오자 코리는 도저히 감사할 수 없는 마음이 되고 말았습니다. 
지금까지도 비참한 곳에 있었지만 이곳은 더욱 비참했습니다. 
게다가 벼룩까지 들끓어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라는 말씀은 계속 마음에 남아 있었지만 코리는 도저히 그 말씀에 순종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언니 벳시가 눈을 감고 나지막하게 기도드렸습니다. 
 
“주님 우리에게 벼룩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할 수 없이 코리도 “아멘!”했습니다. 
 
얼마 안가서 코리는 벼룩으로 인하여 감사해야 할 이유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벼룩 때문에 그 감방 주위에는 간수도, 독일 군인도 얼씬하지 않았고 그들은 자유롭게 교제를 나눌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전례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인생에는 반드시 참고 견뎌야 하는 고통이 있게 마련입니다. 
전례는 그 고통스러운 일들을 치워달라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스러운 것들을 감사하게 받아들이기 위한 목적으로 행해져야 합니다.  
 
벳시가 고통스러운 것들을 치워 달라고 기도하지 않고 감사하다고 기도했기 때문에 
그것이 코리에게도 감사한 일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감사가 아니라 무언가 청하러 오기 때문에 전례의 정신이 무뎌지는 것일 수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들 중에는 예수님께서 하느님이심을 믿으려하기보다는 
그저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에 찾아온 이들이 많았습니다. 
믿음을 증가시키러 온 것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필요한 빵을 줄 대상을 만나러 온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고 충고하십니다.  
 
당신 앞에 나올 때 썩어 없어질 세상 것들을 얻으려는 마음으로 오지 말고 천상의 양식을 얻기 위해 오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이 무엇일까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신 뒤에 물 위를 걸으시는 것까지 봅니다. 
그래서 오천 명을 먹이신 것은 예수님께서 물 위도 걸으실 수 있는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은 바로 성체성사의 상징입니다. 
성체성사는 예수님은 하느님이시며 하느님을 영하는 우리도 하느님이 될 수 있음을 믿게 합니다.  
 
내가 하느님이 되는 것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제자들은 그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 만족했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예수님을 통해 배를 불리기 위해 예수님께 나아온 것입니다. 
 
무언가를 청하며 동시에 감사할 수는 없습니다. 
무언가를 청하는 것이 벌써 결핍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미 다 받은 사람처럼 살아야합니다. 
그래야 감사가 나옵니다. 
하느님이 되었는데도 무엇을 청할 수 있을까요? 
 
전례 안에서 내가 하느님이 된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솟지 않는다면 무언가 잘못 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하는 성체의 의미를 모르기 때문에 전례 안에서 무언가를 청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체가 하느님임을 믿는다면 더 이상 청할 것은 아무 것도 없게 됩니다.  
 
성령을 청하고 그 성령 때문에 일어나는 감사만 남을 뿐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소리 높여 찬양할 뿐입니다. 
감사는 이미 받았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청하는 것에 집중하기보다는 이미 받은 것에 감사의 정이 솟아나는 전례가 되어야합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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