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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5월 4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5-04 조회수 : 363

5월 4일 [부활 제2주간 토요일] 
 
독서 : 사도행전 6,1-7
복음 : 요한 6,16-21 
 
< 나는 너에게 무엇이냐? > 

제가 잘 아는 한 자매님이 시골 본당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그리고 그 성당에서 전례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한 여성이 느끼는 시골 산골의 칠흑 같은 어두움은 보통 두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새들의 울음소리마저 깜짝깜짝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미사 준비를 가야할 때 처음엔 아무도 없는 성당에 들어가는 것이 
매우 두려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루는 새벽에 성당에 도착하였는데 성당의 문까지가 매우 멀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자신이 서있는 곳에서부터 성당 문 앞까지 땅이 꺼지는 듯싶더니 수많은 사람이 땅 속에서 손으로 그 자매를 잡으려 하는 장면이 보였습니다. 
두려움이 만들어낸 상상속의 장면일 것입니다.  
 
성당 문 앞까지는 외나무다리만이 있었고 그 다리 밑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겁이 나서 성당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성당 유리에 비친 붉은 빛이 있었습니다. 
바로 감실 불이었습니다.  
 
자매는 힘을 얻고 그 두려움의 외나무다리를 건넜습니다. 
그리고 성당 문을 열고 제대를 차렸습니다.
이 일이 있은 이후로는 다시는 그런 두려운 장면은 연출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두려움은 사탄의 무기입니다. 
주님께 가는 것을 막는 무기가 두려움입니다. 
그 두려움은 주님을 모실 때 사라집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예수님을 알아 뵈옵고 두려움의 바다에서 평화의 땅에 닿습니다. 
예수님은 물 위를 걸으시며 당신을 보고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나다(I AM). 두려워하지 마라.”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나다(I AM)”는 탈출기에서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알려주신 당신 이름입니다.
보통은 영어로 “나다.”라고 말할 때, “It’s me.”라고 말합니다. 
“It’s I am.”이라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에서만 특이하게 예수님께서 하느님임을 나타내실 때 항상 “It’s me.”가 아닌 “It’s I AM.”을 사용합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정녕 내가 나임을 믿지 않으면,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다.” (요한 8,24)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내가 나임을”을 직역하면 “내가 ‘있는 나’(I AM)임을”이란 뜻입니다.
또는 당신은 시간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나는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는 나(I AM)’다.”(요한 8,58)라고 하셨습니다. 
 
올리브 동산에서 당신을 잡으러 오셨을 때도 “나다(I AM)”(요한 18,5. 6. 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을 듣자 그분을 잡으러 왔던 이들이 뒷걸음질 치다가 넘어집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당신이 하느님이심을 드러내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받아들인 이들도 ‘있는 나(I AM)’가 됩니다. 
요한복음 9장의 태생소경은 바로 세례를 받는 우리 자신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진흙으로 그에게 눈을 넣어주십니다. 
그러자 그도 “내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요한 9,9) 하고 말합니다. 
이를 직역하면 “내가 바로 있는 나(I AM)입니다.”입니다. 
 
예수님도 당신 안에 하느님께서 함께 하심을 아시고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 
태생소경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분을 받아들이는 우리도 마찬가지여야 합니다.  
 
두려움은 내가 모신 예수님이 하느님임을 믿을 때 사라집니다.
실상 우리는 예수님을 내 안에 모신다고 하면서도 예수님을 그저 한 인간으로 여길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당신에게 예수님은 어떤 사람입니까?”라고 물으니 “친정아버지와 같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친정아버지처럼 든든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친정아버지는 하느님이 아니십니다.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은 전지전능한 하느님이신 것입니다. 
 
얼마 전에 차에서 한 새로운 기능을 발견하였습니다. 
음성으로 전화도 걸고 노래도 틀고 네비게이션의 목적지도 입력할 수 있는 기능입니다. 
핸들에 그 버튼이 있어서 언제나 원하면 눌러볼 수 있었지만 저는 그런 기능까지 되는 줄 모르고 시도해 보지도 않았습니다.  
 
네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적을 때 항상 스크린을 터치해서 입력했습니다. 
이는 내가 몰고 있는 내 차의 성능을 제대로 모르고 있었고 그런 기술이 적용되었을 것이라고는 믿지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항상 나와 함께 계신다고 믿지만 정작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모를 수 있습니다.  
 
성모님께 예수님은 불가능이 없으신 분임을 믿으셨습니다. 
그러니 거침없이 엘리사벳을 찾아보실 수 있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나는 너에게 무엇이냐?”라고 끊임없이 물으십니다. 
세상 살아가는데 예수님 덕분으로 아무 두려움이 없다면 예수님을 올바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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