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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4월 23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4-23 조회수 : 490

4월 23일 [부활 팔일 축제 화요일] 
 
사도행전2,36-41
복음: 요한 20,11-18 
 
< 지성이면 감천 > 
   
한 전기기사가 건물의 전기시설을 점검하다 감전되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간신히 목숨은 건졌지만 두 팔과 발가락 두 개를 절단해야 했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 29세였습니다.  
 
아내와 두 아이가 있는 젊은 가장은 무엇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의수 갈고리에 연필을 끼우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내도 응원해 주었습니다.  
 
제대로 그림을 배워보려 했으나 어떤 학원에서도 양 팔이 없는 사람을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한 대학교수를 찾아갔는데 “그러면 포기할 때까지만 같이 해 봅시다.”라며 받아주었습니다. 
 
그는 목숨을 걸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하루 10시간 이상을 꼼짝없이 앉아서 연습했습니다. 
허리가 빠질 것 같은 고통을 이겼고 며칠씩 몸살을 앓아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러며 전국 그림대회에서 입상하는 일도 잦아졌습니다.  
 
한 중학교 미술 교과서에 그가 그린 ‘세종대왕’이 실리기도 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장애인이란 꼬리표는 죽을 때까지 안 떨어진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모든 생각을 몽땅 털어버리고 오로지 그림만 생각하기로 결심했더니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이 사람이 세계최초 팔 없는 화가 석창우 화백입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다’란 말이 있습니다. 
정성이 지극하면 하늘도 감동한다는 뜻입니다.
하늘은 인간의 정성만큼 축복을 줍니다. 
우리가 축복을 받지 못한다면 하늘을 감동시키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가장 먼저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부활하신 당신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만이 다른 누구보다도 하늘을 감동시켰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아직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칠 준비가 되어있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을 위해서는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는 인물이었습니다.
골고타 언덕까지 올라갔던 여인인 것입니다.  
 
한때 몸을 파는 여인으로 취급되던 여자가 그것도 십자가에 매달리는 한 사람을 위해 골고타까지 올라가려면 얼마나 많은 멸시와 비웃음을 받아야 했을까요?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집으로 돌아간 뒤에도 그녀는 남아서 혼자 울고 있습니다. 
막달레나는 동굴 속에 있는 천사 둘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여인아, 왜 우느냐?”라는 질문에 그냥 “누가 저의 주님을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십자가에 달려 반역죄로 사형을 당한 사람을 아직도 ‘주님!’이라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천사들이 경비병들이었다고 한다면 그 여인은 어떻게 되었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더군다나 예수님께서 나타나셔도 “선생님, 선생님께서 그분을 옮겨 가셨으면 어디에 모셨는지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모셔 가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진짜 시신 도둑이라면 또한 그녀의 운명은 온전하지 못할 것입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의 시신만 찾을 수 있다면 목숨도 아깝지 않은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한 여인이 여섯 살 때 유모의 손을 잡고 미끄럼틀에 올라갔다가 거꾸로 떨어져 척추가 부러졌습니다. 
그 후유증으로 그녀는 가슴과 등이 휘어버렸고 키가 140센티미터에서 멈춰버렸습니다.  
 
어머니는 등이 부러진 딸을 업고서 자신이 아는 경기민요를 들려주었습니다.
“노래가 제 친구였어요. 밖에 나가면 아이들이 놀려서 늘 집에 틀어박혀 노래를 불렀죠.” 
 
30세가 되던 해 민요를 제대로 배워볼 양으로 서울에 올라왔습니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그녀를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경기민요 기능 보유자인 이은주 선생은 그녀를 받아주었습니다. 
모든 시간을 노래에 투자했지만 그는 좀처럼 무대에 오를 수 없었습니다.  
 
마침내 2004년 56세가 되었을 때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인 경기민요 전수자가 됩니다. 
무형문화재 박공숙 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회전무대가 있는 야외 공연장 하나 만드는 게 소원이에요. 
왜 회전무대냐고요? 
소리하면서 춤출 때 제 등을 관객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어서요.” 
 
[참조: ‘마음을 비우면 얻어지는 것들’, 김상운, 21세기 북스] 
 
지성이 지극한 만큼 보상이 주어지는 것은 하늘의 법칙입니다. 
기쁨과 행복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엔 이유가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는 사람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바랐기 때문입니다. 
바라는 만큼 투자했기 때문입니다. 
마치 밭에 묻힌 보물을 위해서 자기 전 재산을 바칠 수 있어야 그 보물을 차지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원하지도 않고, 시간도 투자하지 않는데 주님께서 그 사람에게 부활의 기쁨을 주실 리가 없습니다.      
나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위해 얼마만큼 시간과 재물을 투자하고 있는지 살펴야합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오시기 위해 당신의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을 만나기 위해 무엇을 버리고 있나요?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을 “스승님!”이라 불렀습니다. 
그만큼 그분을 알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치려는 여인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알기 위해 투자하는 시간과 에너지만큼 그분은 우리에게 부활의 기쁨으로 화답하실 것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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