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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4월 19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4-19 조회수 : 468

4월 19일 [성주간 금요일] 
 
이사야 52,13―53,12
히브리 4,14-16; 5,7-9
요한 18,1―19,42 
 
< 십자가가 나에게 묻는 질문 > 

어떤 유명한 스님의 강의를 듣다가 ‘이것이 불교의 한계이구나!’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행복에 대해 “행복은 다른 게 아니라 고통이 없는 게 행복입니다. 
결혼해서 고통스러울 거 같으면 안 하면 됩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과연 고통이 없는 것이 행복일까요? 
 
우리 입장에서 그 스님의 주장을 극단적으로 말하면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어 고통을 당하는 것보다 배부른 돼지가 되라는 말과 같을 수도 있습니다.  
 
늑대에게 자란 아이는 늑대처럼 사는 것이 행복인 줄 압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발견이 되면 새로운 고통이 시작됩니다. 
사람들이 자신들처럼 두 발로 걷고 말도 하도록 강요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된 행복을 느끼고 싶다면 그 아이는 반드시 자신의 늑대 본성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합니다.  
 
그러니 십자가 없는 행복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고통이 없는 게 행복이 아니라 고통이 있어야만 행복할 수 있습니다. 
 
구세군 창시자의 꿈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구세군을 창설한 윌리암 부스는 처음에는 별 생각 없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매주 교회에 나가며 누구에게나 “나는 크리스천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루는 신비로운 꿈을 꾸었습니다. 
그가 언덕길을 지나가다가 큰 십자가에 한 사람이 달려 있는 것을 본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십자가에 달려 있는 사람의 손에 큰 망치로 못을 박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십자가에 달려 있는 분은 예수님이셨습니다. 
 
그 순간 그가 외쳤습니다.
“야 이놈! 이 나쁜 놈!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 한 번 못 박히신 것만 해도 마음이 아픈데, 어디서 또 못을 박고 있어? 이 못된 놈! 당장 내려오지 못해? 
내가 너를 죽여 버리고 말겠다.” 
 
그 소리에 망치질하던 사람이 얼굴을 돌렸습니다. 
윌리암 부스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바로 윌리암 부스 자신이었던 것입니다. 
 
“아니! 너는 누구냐? 너는 내가 아니냐?”
“그래, 나는 너다.” 
 
“이놈아, 너는 나와 똑같이 생겼지만 나는 네가 아니야. 나는 우리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아.”
“네 말과 생각, 네가 살고 있는 생활은 이렇게 예수님을 계속 못 박고 있어.” 
 
윌리암부스는 꿈에서 깨어났고 예수님이 자신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계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 그는 새사람이 되었고 구세군을 창설하여 가난한 이들에게 좋은 일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십자가에 달려계신 분은 누구이신가요? 
예수님은 세상에 오셨을 때 끊임없이 당신은 “사람의 아들”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느님이 인간이 되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이 됨을 넘어서서 죄 지은 우리들 자신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죄를 안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예수님은 끝까지 죄지은 우리가 되기를 자청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너는 누구냐?”
그러면 우리는 무엇이라 대답해야할까요?
“저는 그냥 전데요?” 
 
그러면 이렇게 대답하실 것입니다.
“아니야, 내가 너야. 내가 네가 되어서 십자가에 못 박힌 거야. 그래야 네 죄가 없어지거든. 네가 바라보는 십자가의 나는 바로 너야. 그러면 너는 누구냐?” 
 
그러면 우리는 이렇게 대답해야합니다.
“저는 당신입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제가 당신이 되게 하기 위해 당신이 제가 되신 거군요!” 
 
십자가의 고통은 누군가를 새로 태어나게 만드는 신비한 공간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고통을 통감하는 사람만 새로 태어날 수 있습니다. 
십자가는 예수님이 나의 죄가 되신 장소입니다.
그러니 내가 예수님이 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십자가를 보며 나도 예수님처럼 십자가의 길로 가려고 하지 않는다면 십자가는 나에게 어떤 은총도 되지 못합니다.  
 
내가 예수가 되었다면 나 역시 십자가의 길을 가고 있어야합니다. 
십자가에서 내가 죽었으니 이제 내가 예수님이 된 것입니다. 
이 믿음만이 우리를 새로 태어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새로 태어난 행복은 이전의 나로 살 때의 행복과 비교도 되지 않습니다. 
고통이 없는 것이 행복이 아닙니다. 
십자가 없이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부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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