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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4월 12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4-12 조회수 : 530

4월 12일 [사순 제5주간 금요일] 
 
예레미야 20,10-13
복음: 요한 10,31-42 
 
<​ 그분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을 보라 > 

과달루페 성모님은 후안 디에고라는 인디언에게 1531년 12월에 발현하셨습니다. 
후안 디에고의 망토에 발현 당시 성모님의 모습이 새겨져 있었는데 지금도 과달루페 대성당 제대 위에 그 망토가 걸려있습니다.  
 
선인장 섬유로 만든 것이기에 길어야 15년 정도 유지될 수 있는 망토지만 500년 가까이 지났는데도 그 형태가 그대로 유지되어 있고 그 색감도 전혀 퇴색함이 없습니다.  
 
과달루페 성모님 그림은 그 자체로 기적 덩어리입니다.
한 번은 호세 아스테 돈스만 박사가 성모님의 눈을 확대시켜 보다가 여러 사람이 성모님의 눈 속에 비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왼쪽 눈에는 성모님께서 후안 디에고에게 발현하실 당시 후안디에고가 성모님을 바라보는 모습이 비춰져 있고 다른 쪽 눈에는 후안 디에고가 주교에게 이 사실을 말할 당시의 모습이 비춰져 있습니다.  
 
그 망토에 새겨진 살아계신 성모님처럼 성모님께서는 망토에 새겨지고서도 매 순간의 모습들을 바라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누군가가 무엇을 바라볼 때 눈에는 앞에 바라보는 것의 상이 맺힙니다. 
이것을 바라보는 자신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 대상은 자신을 보고 있는 사람의 눈을 가만히 살피면 자신의 모습을 그 눈 속에서 찾아낼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참으로 신기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한국의 한 사진작가는 많은 나라를 여행하며 아이들의 사진들을 찍고 다녔습니다. 
어느 날 한 코흘리개 여자 아이의 눈이 너무 맑아서 그 아이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런데 사진을 현상하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 아이의 맑은 눈에 사진 찍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비춰진 것입니다. 
아마도 좋은 일을 많이 하고 다니는 사람이기에 사랑 가득한 자신의 모습을 아이의 눈 속에서 보았을 것입니다. 
 
저는 이와 반대의 경험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여행 가서 우연히 전에 가이드를 했던 한 형제를 만났습니다. 
그분이 먼저 다가와서 인사를 건넸습니다.  
 
저는 그분이 누구인지 기억해내려 하고 있었습니다. 
악수하려고 두 손을 내밀기에 저도 악수를 해 드렸습니다.  
 
이 장면을 누군가 스마트폰으로 찍었고 그 모습을 제가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저보다 나이가 많으신 분이 허리 숙여 두 손으로 제 손을 잡고 있는데 저는 뻣뻣이 서서 한 손은 주머니에 넣고 한 손으로만 그분과 악수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 이것이 주님 눈에 비친 내 모습이구나!’ 
 
나의 본래 모습은 내가 상상하는 것과 아주 다를 수 있습니다. 
스스로는 자신의 모습을 온전히 바라볼 수 없습니다. 
나를 가장 객관적으로 보려면 제3자가 되어서 바라봐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좋은 것은 예수님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을 발견해내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내 안에 사신다면 예수님은 나를 바라보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그분의 눈을 바라보면 됩니다.
그러면 나의 객관적인 모습을 예수님의 눈을 통해 발견해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삼위일체 신비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당신을 돌려 치려는 이들에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일들을 하고 있지 않다면 나를 믿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내가 그 일들을 하고 있다면, 나를 믿지 않더라도 그 일들은 믿어라. 
그러면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너희가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당신이 “있는 나”라고 하시며 하느님이심을 자처하셨습니다. 
그러니 유다인들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 안에 하느님이 계시고 하느님께서 일하시는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고 계신 듯 말씀하십니다.  
 
당신 자신을 아버지께 맡겨드리고 아버지 눈에 비친 당신 모습을 보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분은 당신을 하느님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유다인들은 자신을 하느님으로 자처하는 것이 교만이라고 여겨 예수님께 돌을 던지려 한 것입니다. 
 
이 장면에서 실제로 자기 자신을 온전히 보지 못하는 이들은 유다인들이었습니다. 
성경에 “내가 이르건대 너희는 신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이 신이 되게 하시기 위해 하느님이 사람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이 사람 안에 들어와 그 사람을 차지하면 그 사람은 신이 됩니다. 
신은 그 사람 안에서 당신 일을 하십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자신 안에 계신 하느님의 눈으로 하느님의 일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바라보게 됩니다.  
 
이렇게 당신을 바라보시는 분이 예수님이셨습니다. 
유다인들은 자신들이 하는 행동을 알지 못했습니다. 
하느님을 바라보지 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상을 망치로 훼손한 조각가가 있습니다. 
그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상을 보며 자신의 못난 실력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질투가 나서 피에타 상을 없애고 싶었던 것입니다.  
 
처음엔 스스로는 대단한 조각가라 생각했을 수 있지만 더 완전한 사람 앞에서 비로소 자신의 처지가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유다인들이 이런 모습일 수 있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하느님이라 믿는 사람이 더 겸손합니다. 
하느님의 눈에 비친 자신의 비참한 모습을 보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는 이렇게 서로를 사랑으로 마주보며 서로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상대를 내 안에 모신 것 같지만 실제로는 또 내가 상대의 눈 안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 삶도 이 삼위일체의 신비로 살아본다면 커다란 발전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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