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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3월 31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3-31 조회수 : 612

3월 31일 [사순 제4주일] 
 
복음:루카 15,1-3.11ㄴ-32 
 
< 회개는 자신의 감정을 잘 살필 때 일어난다 > 
 
남아프리카 지역에 사는 코사족과 졸루족 등 수백 개의 부족들은 자연과 내가 하나라는 근본존재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자연은 공동 소유이며 함께 나누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그래서 아프리카 부족들은 만나면 언제든지 “우분투!”라고 합니다.
‘우분투’란 아프리카 코사어로 ‘네가 있어 내가 있다’ 또는 ‘함께 있어 내가 있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서양의 한 인류학자가 부족의 아이들을 모아놓고 저 나무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자를 매달아 놓고는 누구든지 먼저 뛰어간 사람이 모두 가져도 좋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서로 손을 잡고 천천히 걸어가 함께 과자를 따서 나누어 먹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학자는 물었습니다. 
 
“혼자 빨리 뛰어가면 다 차지할 수 있는데 왜들 뛰어가지 않았니?”
그러자 아이 하나가 말을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슬퍼하는데 어찌 나만 행복할 수 있나요?” 
 
이것은 남아공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자주 사용한 예화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래서 발전을 못하지!’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지금 행복하면서도 선진국인 북유럽 국가들의 교육이 다 이 ‘우분투’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남과 나의 행복은 둘이 아닙니다. 
 
세상은 정확히 두 종류의 행복추구 패턴이 존재합니다. 
이는 다른 생각의 차이가 만들어냅니다.  
 
하나는 세상이 나의 행복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생각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세상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생각입니다.  
 
세상이 나를 행복하게 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되고 내가 남을 행복하게 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은 나중에야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태어나면 본래 이기적입니다. 
나중에 교육을 통해서 이타적이 될 수 있습니다.
위의 아프리카 부족들이 만날 때마다 ‘우분투’로 인사한다면 그 분위기가 아이들의 이기적인 행복패턴을 어렵지 않게 바꾸어주게 됩니다.  
 
우리 식대로 말해 이 과정을 ‘회개’라고 정의합니다. 
하지만 경쟁사회에서는 이 회개가 일어나기 매우 어렵습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세상이 나를 행복하게 해 주어야 하는데 그 반대로 나가니 화가 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의 부모님은 내가 잘 된다고 배 아파하지는 않으십니다. 
오히려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니다.  
 
회개란 행복 추구 패턴을 바꾸는 것인데 그 안에 사랑이 들어왔기 때문에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사랑은 남을 행복하게 해 주어야 나도 행복할 수 있음을 알게 합니다.  
 
나와 남이 한 가족이라 믿으면 남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 됩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들어올 수 없는 이유는 하늘나라는 한 가족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형이 추구하는 행복이 바로 경쟁으로 남보다 우월한 위치에 서서 얻는 행복이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아버지의 뜻을 따랐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따라 죄를 짓지 않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좋지만 그저 비교우위적인 행복을 추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당에서 봉사하더라도 신부님에게 인정받으려 하거나 봉사를 하지 않는 사람을 판단하는 경우가 이런 형과 같은 사람일 것입니다. 
 
남을 도와주더라도 그것이 자신을 특별하거나 우월하게 만드는 선행이라면 그 사람은 아직 회개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 대부분은 남들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것에 대해 슬퍼하거나 화를 냅니다.  
 
오늘 복음에서 형이 아버지가 동생을 대하는 모습을 보고나서는 그렇게 한 것과 같습니다.
남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었다면 동생을 잘 대해주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자신도 기뻐하고 즐겨야 했을 것입니다. 
 
회개를 하려면 자신의 감정을 잘 살펴야합니다.
경쟁에서 이기거나 성공에만 정신이 팔려있으면 자신의 감정을 잘 살피지 못합니다. 
그래서 회개란 것이 일어날 수 없게 됩니다.
다행히 저는 회개란 것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가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습니다. 
통학시간이 하루에 3시간이나 되었습니다. 
그냥 차만 타는 것이 아니라 자전거를 30분 타고 나와서 1시간 승합차를 타고 등하교를 해야 했습니다. 
만약 자전거를 타고 나오는 중에 체인이 빠진다면 봉고차를 놓치고 학교에 지각하여 혼나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새벽 5시 30분이면 집에서 나서야했고 집에 돌아오면 거의 밤 12시가 되었습니다.  
 
다행히 성적은 그리 나쁘지 않은 편이었지만 3학년 2학기가 시작되면서부터 성적이 급격히 떨어졌습니다. 
급기야 학력고사 두 달 남기고는 신경정신과를 다녀야했습니다. 
그때는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만이 행복할 수 있는 길이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때의 성적으로는 원하는 대학에 들어갈 수는 없었습니다. 
공부가 너무나도 지겨워 재수할 생각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기뻤던 단 한 순간이 있었는데 그래도 합격되었다는 통지를 받은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이내 취업에 대한 압박감이 저를 조여 오고 있었습니다.  
 
1년 정도는 어학연수를 다녀와야 할 것 같았지만 가난한 형편에 말도 꺼낼 수 없었습니다.
군대에서 나름 열심히 영어 단어도 외웠지만 군 생활도 그리 평탄치는 못했습니다.  
 
운전병을 했는데 사고를 내서 부족한 형편에 어머니가 합의금을 싸들고 오셔야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는 거의 ‘지옥’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그 지옥의 삶은 경쟁을 추구하는 학교라는 곳에 들어오면서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경쟁이 강한 사회일수록 행복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참으로 다행이었던 것은 저의 머릿속에는 오직 ‘행복’이라는 단어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만약 ‘성공’이라는 단어가 행복을 눌렀다면 저는 지금도 끊임없이 경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할머니의 죽음이 저의 첫 기억이기 때문에 인생을 살면서 행복해야겠다는 생각을 어렸을 때부터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내 감정은 행복한지?’에 민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이런 삶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또 다행이었던 것은 대학을 다니기 시작할 때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를 읽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10권에 달하는 책을 매일 아주 조금씩 5년 동안 읽게 되었고 저에게도 회개라는 것이 찾아왔습니다.  
 
제가 달리는 이 길이 시궁창이었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대로 이웃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이 더 큰 행복임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특별히 그 책 속에서 모든 것을 버리고 결국에는 목숨까지 바치지만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너무 행복하게 보였습니다. 
 
더 감사한 것은 어머니께서 제 7살 생일 때 너의 인생은 너의 것이니 마음대로 살라고 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대로 대학을 자퇴하고 신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아버지가 특히 많이 반대하셨지만 저는 저의 단 한 번뿐인 인생의 주인공으로서 부모님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제가 사제가 되고는 아버지도 행복해하셨습니다. 
행복 추구 패턴이 바뀌니 인생도 바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이후로 조금씩 행복해졌고 지금 다시는 세상에서 추구하는 행복패턴으로 가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우리나라 교육시스템 안에서는 경쟁이 아닌 그와 반대로 나아가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자신들의 감정을 살피지 못하고 경쟁에 휘둘리다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지금 교육이 많이 변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 행복지수가 최하위이며 아이들 자살률이 또한 세계에서 가장 높습니다.  
 
선진국들은 앞 다투어 경쟁이 아닌 행복을 지향하는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성공해야 행복한 것이 아니라 지금 행복하면 성공한다고 가르칩니다.
행복은 감정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아버지는 첫째에게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도 먼저 행복해야 한다고, 아이들 때의 그 웃음을 되찾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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