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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2월 24일 _ [복음단상] 김창해 요한 세례자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2-24 조회수 : 358

방 한 칸 내줄 수 있으세요?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에서 여주인공은 사랑하는 남주인공이 어머니와 화해하기를 바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용서라는 건 어려운 게 아니야.

용서는 미움에게 방 한 칸만 내주면 되는거래.”

과연 우리는 나에게 깊은 상처와 해를 입힌 사람에게 ‘용서’라는 이름의 방 한 칸을 선뜻 내줄 수 있을까요?

오히려 몇 배의 고통으로 갚아주고 싶은 것은 아닐까요?

그렇게 해도 시원치 않을 판이라며 한 칸의 방은 고사하고 차라리 평생 안 보는 것을 선택할지도 모릅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두 가지가 있는데 바로 ‘사랑하는 일’과 ‘용서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오늘 복음 말씀의 주된 내용은 ‘원수를 사랑하라.’입니다.

예수님은 때로 우리가 느끼기에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시기도 하고, 현실 밖에 계시는 분처럼 말씀하실 때도 있습니다.

어찌 이렇게 쉽게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한편으로는, 예수님이라고 원수 같은 사람들이 없었을까도 싶습니다.

어린 시절 자신을 죽이려 했던 헤로데 임금과 그의 사신들, 불신 가득한 고향 사람들, 복음 선포 내내 걸림돌이었던 바리사이 사람들과 율법 학자들, 거짓 고발과 사형선고 그리고 십자가 죽음까지, 그분의 생애가 누군가의 표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마지막 숨을 거두시면서 그들에게 보여주신 것은 다름 아닌 ‘용서’였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루카 23,34).

왜 예수님은 그토록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을까요?

용서는 사랑을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목이기 때문입니다.

가만 보면 ‘원수지간’은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과 결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나와 가까운 사람들 곧 가족, 친구, 동료, 이웃들이 물질, 재산, 말, 의심, 몰이해, 선입견, 섣부른 판단으로 원수가 됩니다.

애초에 마음의 거리가 먼 사람들은 그냥 안 보면 그만입니다.

원수가 될 가능성이 없습니다.

하느님은, 한때 사랑의 관계였던 우리가 서로 미움의 악순환을 끊고 다시 사랑의 관계를 회복하길 바라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랑하는 길, 즉 용서하는 것밖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하느님을 간절히 바라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그분의 사랑을 닮는 것은 최고의 영예일 것입니다.

그토록 실행하기 어려운 원수 사랑을 싫으나 좋으나 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그분을 사랑하기 때문이며, 하느님께서는 은혜를 모르는 자들과 악한 자들에게도 똑같이 자비로우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자비로우신 것처럼 우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은 명령이기도 하지만, 그분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유 의지로 선택해야 하는 믿음의 자세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의지를 거슬러야 할 수 있는 그 힘든 용서와 사랑, 내 힘만으로는 어렵습니다.

하느님의 힘이 필요합니다.


글. 김창해 요한 세례자 신부(수원교구 사회복음화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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