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법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선 책을 읽을 때 70~80%를 쉽게 이해가 되면 나머지 모르는 20~30%는 뇌 속에서 저절로 유추가 가능하므로 학습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절반만 이해가 되면 정보 부족으로 나머지 유추가 불가능하여 아무것도 머리에 남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거의 이해되지 않는 자기 수준 밖의 책을 읽는 것은 시간 낭비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학습법에 대한 또 한 가지의 이론은 유의미한 상호작용이라는 이론입니다. 단순 암기만으로는 내 것이 되지 않고 이를 써먹어야 내 것이 된다는 이론입니다. 강의를 위해서 많은 준비를 합니다. 책을 보고 또 여러 가지 자료를 준비하면서 강의록을 외웁니다. 이 과정 안에서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강의를 하면서 이 부분이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강의를 통해 완벽히 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주님에 대해서도 이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제 막 영세 받은 사람에게 어려운 교부들의 주석서나 신학 책들을 권하면 주님에 대해서 잘 알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에 대한 이해가 점점 힘들어지면서 주님으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먼저 쉬운 책, 그리고 쉽게 설명해주는 누군가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그러면 이해의 폭이 점점 넓어집니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기억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일상 삶 안에서 써 먹어야 합니다. 사랑을 이론적으로 기억해봐야 내 것이 되지 않습니다. 사랑해야 한다는 기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몸으로 직접 실천하는 사랑이 될 때, 진정한 내 것이 됩니다.
주님께서는 항상 눈높이에 맞추셨습니다. 그래서 일상 삶 안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비유 말씀을 통해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전해주셨던 것이지요. 그렇다면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단순히 기억만 하면 금세 잊어버리고 맙니다. 실천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사랑에 대한 말씀을 해주십니다. 그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 지, 말씀을 하시기 전에 이렇게 먼저 말씀하시지요.
“이제 내 말을 듣는 사람들아, 잘 들어라.”
그리고 나서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는 남이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어라. 비판하지 마라. 단죄하지 마라. 용서하여라. 남에게 주어라.' 등의 말씀을 줄줄이 하십니다. 물론 이 말씀을 실천한다는 것이 정말로 힘들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 어쩌면 불가능한 말씀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그런 사랑은 내가 아니라, 아주 훌륭한 사람들의 몫으로만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힘주어서 말씀해주십니다.
“이제 내 말을 듣는 사람들아, 잘 들어라. 너희는 사랑하여라.”
사실 원수를 사랑한다는 것. 정말로 불편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런 사랑의 실천만이 주님의 사랑이 진짜 나의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