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1일 [연중 제6주간 목요일]
마르코 8,27-33
< 누가 사탄인가? >
제가 어렸을 때 물에 빠져 죽을 뻔 한 적이 있었습니다.
자그마한 저수지였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 곳에서 친구들과 물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수영도 못하고 또 초등학교 때부터 키가 작은 편이라 깊은 곳에는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키 큰 친구가 저를 업고 깊은 곳까지 들어갔다 나오겠다고 했습니다.
그 아이도 머리까지 잠기는 깊이였는데 잘도 걸어갔다 잘도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끝까지 마다하다 허락했습니다.
저를 업고 거의 목이 차는 곳까지 들어갔습니다.
그 아이의 머리가 물에 잠겨가자 저는 손을 휘 저으며 수영하는 흉내를 내 보았습니다.
왠지 수영이 되는 듯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 등을 박차고 물장구를 치며 조금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돌아가는 방법을 알지 못했습니다.
제가 멈춰 섰을 때는 이미 발이 닿지 않는 깊이여서 다시 차고 오를 수가 없었습니다.
발이 닿기는 했지만 물은 제 머리 한 뼘 더 높이 있었습니다.
겁이 덜컥 났고 힘껏 땅을 차고 위로 솟구쳤지만, 간신히 숨을 쉴 수 있는 높이까지밖에는 몸이 떠오르지 않았고, 숨을 쉴 때는 주위의 물까지 함께 입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몇 번을 그러다보니 힘도 빠지고 배에 물이 차서 ‘이젠 죽는구나!’ 싶었고, 죽기 전에 보게 된다는 인생의 단편들이 그 짧은 시간에 필름처럼 다 스쳐 지나갔습니다.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죽기 전에 하느님께서 회개할 기회를 마지막으로 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 때 저를 업고 들어왔던 친구가 물 밑으로 들어와 제 허리를 잡아 위로 올려주었습니다.
그 친구는 그런 채로 걸어서 제가 발이 닿는 곳까지 나왔습니다.
저는 그 친구를 평생 생명의 은인으로 삼고 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자신은 물에 잠겨가면서까지 저를 위로 들어 올려 주어 살려주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죽기 직적까지 가게 된 이유는 등에 업혀 수영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수영을 할 수 있다고 자만했기 때문입니다.
영성에서는 이 교만이 바로 자신의 영혼을 죽이는 가장 크고 깊은 죄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은 베드로를 ‘사탄’이라고 부르십니다.
베드로 위에다 교회를 세우시고 교회의 수장으로 뽑으시려고 하신 이유는 그가 잘나서가 아니라 아버지께서 뽑아주시고 은총을 내려주셨기 때문인데 베드로는 자신의 능력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순간적으로 착각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셔야 한다고 할 때 베드로는 적극적으로 반대합니다.
베드로는 자신에게 오는 은총이 어디서부터 오는지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셔서 피와 물을 흘리시지 않으면 베드로와 교회에 죄의 사함과 성령님을 내려주실 수가 없습니다.
베드로도 그 덕에 교회의 수장이 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돌아가실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피와 물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도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물 속에 들어가 베드로를 올려 주시지 않으면 그는 숨을 쉴 수조차 없는 존재임을 망각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나 없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포도나무에서 흘러나오는 수액이 필요 없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가지가
바로 사탄인 것입니다.
베드로도 한 때 물 위를 걸었습니다.
물 위를 걷다보니 멀리서 거센 바람이 커다란 파도를 일으키며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자 겁을 먹었습니다.
그랬더니 물속으로 빠져들어 가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않고 주위를 살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않은 이유는 물 위를 자신의 힘으로 걷고 있다고 착각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힘으로 걷고 있다고 착각했기 때문에 주위에 신경을 더 써야 했던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사탄의 모습입니다.
사탄은 하느님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여 스스로 심연 속으로 가라앉고 만 피조물입니다.
우리 인간도 스스로 무언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사탄이 되어갑니다.
스스로 사랑할 수 있다든가, 스스로 기쁘고 평화롭고 믿을 수 있고 절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사탄이 되어가는 길입니다.
인간은 ‘사랑해요!’라고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만이 사랑이시고 하느님만이 스스로 사랑할 수 있는 분입니다.
사랑이나 기쁨, 평화, 절제, 믿음 등은 다 성령님의 열매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셔야만 갖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느님의 은총 없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이 떠받혀 주지 않으면 가라앉는 것이 우리 운명입니다.
스스로 헤엄칠 수 있다고 착각하지 맙시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지 않으면 말라 죽게 되어있습니다.
우리는 “당신 없이 저는 아무 것도, 정말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라고 자주 고백하며 절대로 사탄이 되지 맙시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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