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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2월 18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2-18 조회수 : 577

2월 18일 [연중 제6주간 월요일] 
 
독서: 창세기 4,1-15.25 
 
< 카인이 자기 아우 아벨에게 덤벼들어 그를 죽였다. >

메릴 스트립,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주연의 ‘다우트(Doubt: 의심)’란 영화는 ‘의심을 왜 하게 되는가’, 또 ‘사람을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나는 누구의 말을 믿을 것인가’, ‘의심한다는 것은 또한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가’ 등의 질문에 답을 제시하려 합니다.  
 
한 학교의 엄한 원장 수녀님이 그 학교에 파견된 신부님이 흑인 아이를 사제관에 불러 들였다는 사실 하나로 끊임없이 의심하여 그 아이와 신부님을 결국 쫓아내게 된다는 줄거리를 담고 있습니다.  
 
이 줄거리를 신부님은 강론 하나로 다 설명해 냅니다.  
 
“배가 난파되었습니다. 
다행히 한 사람만 살아남았습니다. 
구조보트에 탄 그 사람은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별자리를 보고 노를 열심히 저어서 집에 들어와 편안히 잘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노를 젓다가 ‘이 방향이 맞나?’라는 의심이 든다면 그는 그 혼란 속에서 바다를 헤매다 죽고 말 것입니다. 
이것을 ‘의심’이라 부르는데, 여러분 가운데 이 믿음의 위기를 겪고 있는 이가 있습니다.” 
 
이는 분명히 수녀님이 들으라고 하는 소리였겠지만 수녀님은 신부님의 강론보다는 졸거나 떠드는 아이들을 혼내려 다니는 것에 온 정신을 쏟습니다.  
 
물론 수녀님이 의심하는 것에 근거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신부님을 만난 아이는 유일하게 흑인이기 때문에 신부님의 특별한 관심을 받고 있었고, 신부님의 방에 다녀온 후로 학교에서 조금 이상할 정도의 행동을 보였고, 평상시에 신부님은 만년필 대신 볼펜을 쓰는 개혁적인 사람이어서 아이들에게 ‘꼬마 눈사람’과 같은 교회 밖의 노래를 부르게 했고, 자신이 이런 이야기를 할 때 설탕을 세 스푼씩이나 커피에 넣는 이상한 행동들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수녀님의 의심을 꺾지 못했고 그래서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학교를 떠났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그 수녀님의 말을 믿어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주교님조차도 그럴 신부님이 아니라며 더 큰 성당으로 발령을 냅니다.  
 
이런 모습을 보며 원장 수녀님은 자신의 의심을 정당화하기 위해 있지도 않은 근거를 거짓으로 꾸며 보고하기도 했습니다. 
하느님의 일을 위해서는 그 정도 빗나가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수녀님의 마지막 대사는 매우 고통스런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며 하는 이런 고백이었습니다. 
 
“내 안에 의심이 있어요. 
내안에 엄청난 의심이 있어요.”  
 
의심은 바로 자신 안에 있는 뱀이 주는 것입니다. 
뱀은 자아입니다. 
뱀은 하느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여기게 합니다.  
 
이 ‘뱀’이 오늘 독서에서는 ‘카인’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즉, 하느님은 오늘 독서를 통해 뱀을 어떻게 내쫓을 수 있는지를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뱀을 내쫓은 유일한 방법은 그 뱀이 얼마나 나쁜지를 스스로 깨닫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그 뱀이 죽인 누군가의 피가 우리 마음에 떨어져야만 합니다.  
 
뱀이 죽인 희생자를 보아야만 뱀의 정체를 비로소 깨닫게 되고 나쁜 것으로 여기게 되기 때문입니다.  
 
카인이 죽인 것은 아벨이었습니다. 
아벨의 피는 그 땅 위에서 부르짖습니다.  
 
하느님은 카인을 내어 쫓습니다. 그러나 죽이지는 않습니다.
카인은 죽을 수 없습니다. 
카인이 죽으면 인간에게 자유가 없어진다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카인이 쫓겨나면 그 자신 안에는 아벨에 대한 사랑만이 남습니다.  
 
위 영화에서 의심으로 사제를 쫓아낸 수녀님은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도 자신의 의심이 너무 강해서 죄도 없는 신부님을 모함하여 쫓아냈을 수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 수녀님이 자신의 의심 때문에 아무 죄도 없는 신부님이 그렇게 보이지 않는 피를 흘리게 되었다는 것을 마음으로 느낀다면 앞으로는 더 겸손해 질 것입니다. 
의심을 쫓아내고야 말 것입니다. 
아니면 끊임없이 의심으로 죄 없는 이들을 죽일 것입니다.  
 
바로 내가 죄 없는 그리스도를, 또 죄 없는 다른 이들을 죽였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면 내 안의 카인은 절대 죽지 않습니다. 
내 안의 땅이 하느님께 제발 카인을 내쫓아 달라고 부르짖어야만 합니다.  
 
이미 우리 땅에는 그리스도의 피와 내가 상처 입힌 많은 이들의 피가 뿌려졌습니다. 
그 피의 책임이 바로 나에게 있었음을 마음으로 고백하기만 하면 겸손한 땅이 되게 됩니다.  
 
다시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받아들을 에덴동산이 되는 것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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