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에는 특히 더 많은 독서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책을 읽으려고 하다 보니 벌써 60권 가까이 책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께서 “신부님, *** 책 읽어보셨죠? 그렇게 책을 많이 읽으시니 이 책은 당연히 읽으셨겠지요.”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이 책을 펼쳐 보기는 했습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극찬을 했던 책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읽다가 포기했습니다. 제 눈에 책의 내용들이 잘 들어오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읽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을 하니, ‘아니 이 책도 읽어보지 않았어? 그러면 무슨 책을 읽는 거야?’라는 표정을 지으십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제일 싫어하는 음식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을 싫어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잘못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마치 상대방이 잘못인 것처럼 판단하는 모습을 보일 때가 너무나도 많은 것 같습니다. 유명한 책을 읽지 않았다고 해서 잘못된 독서를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으며, 나와 취미가 다른 것 역시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필독 서적’이라는 말이 제일 싫습니다. 그 사람의 취양과 수준을 생각하지 않고 책을 읽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만약 초등학생에게 단테의 신곡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과 같은 책을 읽게 한다면 어떨까요? 아마 몇 페이지를 넘기다가 아예 책에 대한 흥미를 잃게 만들 것입니다. 처음에는 아이가 좋아하는 것 그리고 수준에 맞는 책을 읽게 했을 때, 차츰 어렵고 수준 높은 책들도 쉽게 읽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이 좋아하는 모습으로 또한 우리의 수준에 맞춰서 다가오시는 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를 오늘 복음에서도 분명히 볼 수가 있습니다.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고쳐주시기 위한 예수님의 행동과 말씀을 떠올려 보십시오. 먼저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십니다. 그리고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십니다. 그러고 나서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 “에파타!”(열려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제가 어떤 분에게 이렇게 행동한다면 기겁을 할 것입니다. 변태 취급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 귀먹고 말 더듬는 이는 당시에 죄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도 부정한 사람이 될 수 있다면서 손을 대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가까이 하지도 않았습니다. 사람의 손길이 얼마나 그리웠을까요? 이렇게 이 사람에게 딱 맞게 행동을 하셔서 “사랑한다.”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신 것이지요.
주님의 이 모습을 떠올리며 우리 역시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모습, 그 사람이 진정으로 원하는 모습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을 따르는 것이고, 이런 모습을 통해서 점점 우리의 수준도 올라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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