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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2월 10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2-10 조회수 : 405

2월 10일 [연중 제5주일] 
 
복음: 루카 5,1-11 
 
< 어부는 물고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 
 
단국대 의대 서민 교수는 외모가 남들에 비해 뒤떨어지는 열등감을 지니고 살았다고 합니다.
외모의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공부를 선택했고 그렇게 의대 교수까지 되었습니다.
그것으로 모자랐는지 지금은 글을 써서 더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그가 글쓰기를 어떻게 잘 하게 되었는지 한 유튜브 채널에 소개한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봅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얼굴을 만회하자.’ 이런 생각을 하고 공부를 열심히 시작하면서 제 인생이 조금 더 나아진 것 같아요. 
자신과 무언가 약속을 하고 그것을 지켜나가는 과정에서 열등감이 조금 해소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제가 인정을 받은 최초의 일은 ‘글쓰기’를 통해서인 것 같습니다. 
 
제가 2009년에 어떤 신문에 칼럼을 쓰면서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뿌듯하고 그랬었는데, 그 인정을 받기까지 글쓰기로 굉장히 많이 실패를 경험했었습니다.  
 
제가 생각해 봤을 때, 저에게 있어 재주가 남들보다 글을 좀 잘 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왜냐면 제가 반성문 같은 걸 쓰면서 칭찬을 많이 받았거든요. 
그래서 책을 내고 여기저기 글을 쓰면서 무수히 많은 시도를 했는데 그것들이 전부다 실패를 하고 책을 낼 때마다 다 망했습니다. 
 
소설 마테우스라는 거의 쓰레기 같은 제 책이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잘 모르고 훌륭한 책이라고 생각해서 냈는데 나중에 보니까 정말 한심한 책이었습니다. 
다행히 그 책이 별로 안 팔렸고 저랑 어머니랑 다 사서 절판을 시켰습니다.  
 
그 책을 지금도 갖고 있는 사람들이 가끔 협박전화하고 그래요. 
출판사 사장님 같은 경우는 제 책 때문에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제 책 두 권 내고 도망가셨어요. 
문 닫고. 그런 걸 보면서 미안하고 그랬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로 뜨겠다.’ 이 마음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끝까지 글쓰기 연습을 했어요.  
 
제가 ‘하루에 두 개 세 개씩 글을 쓰겠다, 일 년에 백 권씩 책을 읽자’는 결심을 하고 이 두 개를 거의 지키면서 살았던 것 같습니다. 
십년 이상. 십 몇 년 되니까 글을 잘 쓰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모 신문에 칼럼을 쓰게 됐어요.
칼럼을 쓰다가 처절히 실패했죠. 
욕도 되게 많이 먹고 결국 잘렸는데, 거기서 포기하지 않고 또 4년 동안 더 열심히 지옥훈련을 하였습니다.  
 
2009년 그때가 글쓰기 시작한지가 14년, 15년 될 때거든요. 
그때가 되니까 제게 느낌이 오더라고요. 
글을 대충 휙 써도 거의 예술 같은, 남들이 감동하는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칼럼을 쓰게 되었고 그렇게 세상에 제 이름을 알렸습니다.  
 
저 자신과 약속을 해서 어떤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이루어나가는 과정에서 열등감이 극복된 것 같아요.” 
 
[출처: ‘성장문답: 열등감을 극복하고 싶은 당신이 반드시 들어야 할 대답’, 유튜브] 
 
사람은 훌륭한 사람, 훌륭하지 않은 사람으로 정해져 태어나지 않습니다. 
훌륭해지려면 누구에게나 많은 연습이 필요한데 그 연습을 견디어 낼 수 있는 사람,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나눠질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뽑으실 때에도 이미 훌륭한 사람을 뽑으시는 것이 아니라 훌륭하게 되는데 거쳐야 하는 훈련을 견뎌낼 수 있는 사람을 찾으셨습니다.  
 
예수님께 선택되려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의 소유자여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의 이 정신을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평생 어부로 살았기에 갈릴래아 호수 위에서는 그에게 명령을 내릴 자가 감히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명령을 내리십니다.  
 
베드로는 밤새 물고기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예수님께서 깊은 곳으로 저어가 그물을 내리라고 명령을 내리시는 것입니다. 
 
혹자는 베드로가 이미 예수님의 정체를 믿고 있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온전한 메시아로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은 상태였습니다. 
왜냐하면 정말 물고기가 많이 잡히자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물고기가 잡히고 나서야 그분이 범상치 않으신 분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스승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스승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라고 말한 베드로의 자존심을 버린 순종이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란 예수님의 응답을 이끌어낸 것입니다. 
 
베드로가 한 젊은 목수의 말을 듣고 창피를 당하는 것을 두려워했다면 그런 시도는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밤새 실패했기 때문에 한 번 더 실패하는 것쯤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이 힘을 우리는 ‘자존감’이라고 합니다.  
 
자존감이 없는 사람들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어떤 시도도 하지 않습니다. 
실패한 자신의 모습을 감당할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실패는 자존감을 낮춥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자존감이 강한 사람이 아니면 그런 오랜 실패를 견뎌내지 못합니다. 
김연아 선수가 자존감이 낮은 선수였다면 수천 번 넘어지고 허리까지 다쳤을 때 “난 여기까지.”라며 포기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은 거기에서 멈출 사람이 아니라는 자존감이 그 수많은 실패를 견뎌내게 만든 것입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게 만드는 이 자존감만 있다면 무엇을 해도 결국엔 성공하게 됩니다.  
 
아기가 넘어짐 없이 한 번에 걷는 것을 성공하는 경우는 없는 것처럼, 우리도 수천 번 실패하지 않고서는 무언가의 전문가가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자존감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바로 ‘믿음’입니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실패해도 나는 가정에서 사랑받는 자녀라는 믿음이 있다면 인간관계를 잘 하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부모도 나를 사랑해주지 않기 때문에 친구와의 관계가 실패하면 끝장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영원히 친구를 사귀지 못합니다. 
친구를 잃으면 다 잃는다는 두려움 때문에 친구를 부담스럽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약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했더라도 하느님께로부터 사랑받는 사람임을 믿는다면 자존감은 하늘로 치솟습니다. 
그것을 믿으라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신 것입니다.  
 
개신교의 고구마 선교왕 김기동 목사의 강의를 유튜브로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길거리에서 서성이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다가가서 예수님을 믿으라고 말합니다. 
대부분은 미친 사람 취급을 합니다. 
그래도 아무나 그렇게 초대하다보면 일 년에도 수백 명씩 세례를 받겠다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가 선교의 두려움을 느낄 때 사람들을 ‘고구마’로 생각하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사람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자신이 선교하는 대상을 한 번 찔러보고 아니면 더 익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고구마처럼 생각하면 상대가 자신에게 주는 상처를 잘 참아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구마가 익지 않아 내가 찌르는 젓가락이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다고 나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되겠습니까? 
그렇게 실패를 주저하지 않게 만드는 자존감이 곧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물고기에 비유하셨습니다.
물고기에게 상처받을 수는 없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자존감입니다. 
 
주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으면 나는 어부가 되고 내가 구하려는 사람들은 물고기가 됩니다. 
이것이 부르심 받은 이들이 갖는 자존감입니다. 
물고기가 그물에 걸렸다가 기어이 빠져나간다고 해서 어부가 상처받는 일은 없습니다. 
그런 실패를 통해 더 완벽한 어부로 성장합니다. 
이는 내가 주님께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사람 낚는 어부라는 믿음에서 나옵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람 낚는 어부요, 하느님의 아들딸로 불러주셨습니다. 
이 믿음에서 오는 자존감만 있다면 실패나 세상 사람들로부터 상처받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로 부르심 받았음을 믿는 우리는 
이 모든 교육을 견뎌낼 준비가 되었습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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