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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2월 8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2-08 조회수 : 443
2월 8일 [연중 제4주간 금요일] 
 
"당장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저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 헤로데의 우유부단함 >

어떤 분이 “죄를 계속 지으면서 고해성사를 계속 봐야 하는가요? 
또 죄를 지을 텐데요. 당분간 성당을 쉬면서 죄를 짓고 나중에 나오면 안 될까요?” 라고 질문하셨습니다.  
 
고해성사는 물론 미래에 또 죄를 짓더라도 지금은 그러지 않겠다는 ‘결단’입니다. 
머리로 자꾸 생각하다보면 안 좋은 결론에 이르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매우 논리적이고 신중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매사에 신속한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칸트는 한 여인과 사귀고 있었는데 도무지 구혼을 하지 않았습니다. 
여인은 견디다 못해 칸트에게 청혼했습니다. 
 
“저와 결혼해주세요” 
칸트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칸트는 그때부터 결혼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도서관에 가서 결혼에 관한 자료를 수집했습니다. 
결혼에 대한 찬성과 반대의 글을 읽으며 연구에 몰입했습니다. 
그리고 여인과 결혼하기로 최종결론을 내렸습니다. 
칸트는 여인의 집에 찾아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때 여인의 아버지가 나와 말했습니다. 
 
“너무 늦었소. 내 딸은 이미 세 아이의 어머니가 됐다오.” 
 
사람들은 종종 가슴으로 느낄 것을 머리로 인식하려 합니다. 
가슴은 결단을 내리지만 머리는 숙고합니다. 
그러나 사랑은 숙고가 아니라 마음의 결단입니다. 
사랑은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의지로 결심하는 것입니다. 
 
헤로데가 그의 이복동생 필립보의 아내 헤로디아를 왕비로 맞아들이자 요한은 그래서는 안 된다고 충고합니다. 
헤로데는 헤로디아와 살고 싶기도 하고 요한의 말을 따르기도 싶습니다. 
마음의 결단이 없는 우유부단한 사람입니다.  
 
또 자신의 생일 때 헤로디아의 딸 살로메가 춤을 잘 추어 그에게 청하는 대로 주겠다고 말합니다. 
어머니의 조언을 받은 살로메는 요한의 머리를 청합니다. 
헤로데는 매우 고통스럽습니다. 
마음은 그래서는 안 되는 줄 알지만, 머리는 약속을 지켜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고통스럽지만’ 요한의 머리를 베어오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나 고통스러운 결정이었다고 세례자 요한의 순교에 헤로데의 책임은 없을까요? 
아무리 요한을 지켜줄 마음이 있었다 하더라도 결정적인 명령을 내린 것은 헤로데 자신입니다.  
 
우유부단함이 자신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경감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 결단이 없었었던 것에서는 핑계를 댈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결단을 내리는 것은 다른 누구도 할 수 없고 오직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했으니 자신의 책임인 것입니다. 

삼국통일을 달성한 김유신이 청년시절 기녀인 천관을 만나서 서로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유신이 천관에게 마음을 빼앗겨 학업을 게을리 하자 이를 걱정한 어머니가 꾸짖으매, 김유신은 다시는 천관의 집에 가지 않겠다고 맹세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활쏘기 연습에 지쳐 말 등에서 꾸벅꾸벅 졸던 김유신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말이 천관녀의 집 앞에 서있는 것을 보자 화가 솟구쳐 그만 칼을 빼어들고 말의 목을 쳐버려 두 동강을 내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유신의 모습을 보고 반갑게 뛰어나오던 천관은 그만 피가 낭자한 말의 목을 보자 혼절하였고 다시는 유신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겠노라고 맹세하여 스스로 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올바른 행위만이 자신을 증명합니다. 
핑계 없는 무덤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무슨 핑계를 대던지 다 죽은 것만은 확실한 것입니다. 
신앙은 결단입니다.  
 
아브라함이 살던 곳을 떠나 새로운 땅으로 가는 것도 결단이고,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사막으로 나아가는 것도 결단이요, 성모님께서 가브리엘 천사에게 ‘아멘!’ 하신 것도 결단이고, 예수님께서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 뜻대로’ 하시라고 기도한 것도 결단이고, 바오로가 교회를 박해하다가 다시 교회를 위해 일하게 된 것도 그의 결단입니다.  
 
결단 앞에서는 주저함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우유부단함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핑계가 있을 수 없습니다. 
믿기로 했다면 세상과 죄를 완전히 끊기로 결심합시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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