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조그마한 옷가게에 손님이 들어왔습니다. 옷들을 보다가 사장에게 “이 옷 얼마에요?”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이 사장은 동업자로 보이는 사람을 향해서 “이 옷 얼마냐?”라고 큰 소리로 물어보는 것입니다. 동업자는 옷을 보더니 “44,000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사장은 잘 못 들었는지 “얼마라고?”라고 다시 묻는 것입니다. 더 큰 목소리로 “44,000원!”이라고 말했지요. 사장님은 손님에게 “22,000원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이런 상황에 처해지면 대부분 얼른 22,000원을 내고 옷을 사간다고 합니다. 사실 이 옷의 판매 가격은 20,000원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동업자가 부른 액수보다 절반 가격으로 살 수 있다는 생각에 큰 이익을 보았다면서 다른 판단을 하지 않고 물건을 산다는 것이지요.
이를 대비효과라고 합니다. 그런 상술을 종종 봅니다. ‘50만 원’이라고 가격이 붙어 있으면 매우 비싸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격표에 100만원이라고 붙여 놓고는 ‘50%’ 할인이라고 붙여 놓으면 사람들은 싸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즉, 잘못된 기준과 대비해서 큰 이익을 보는 것처럼 착각하게 하는 오류에 빠지게 합니다.
어떤 기준에 맞춰야 하는지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 안에서 어떤 기준을 따르고 있나요? 눈에 보이는 이득에만 집중하는 삶, 내 자신의 편함만을 추구하는 삶,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욕심을 만족할 수 있는 삶이 나의 기준은 아닐까요? 이러한 기준들을 통해서는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고향에 내려가십니다. 예수님께서 고향을 방문하십니다. 그런데 그 동네 사람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제까지 봐온 예수님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 저런 놀라운 말씀과 기적을 행할 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이들 역시 과거의 모습이라는 잘못된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잘못된 기준을 가지고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는 그들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몇몇의 병자를 고쳐주시는 것 외에는 어떤 기적도 일으키실 수가 없었습니다.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믿음 없는 곳에서는 기적이 의미를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잘못된 기준이 얼마나 많은 잘못을 가져올 수 있는지를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은혜 받을 사람의 축복을 빼앗을 수도 있으며, 사람의 앞길을 방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함께 하시려는 주님을 거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세상의 잘못된 기준을 따르는 어리석은 우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 순간에는 자신이 지혜로운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유일하고 진실한 기준은 주님뿐입니다. 세상의 잣대가 아니라, 주님을 기준으로 판단하게 될 때 우리의 삶은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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